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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하고 내러티브가 뚜렷한 작품 <엉클분미>
김용언 2010-09-15

“유령은 공간이 아니라 사람과 생물에 깃들어요.” 죽음을 앞둔 분미가 사후에는 어디로 가게 되느냐고 묻자, 아내의 유령은 답한다. 그건 자연의 거대한 유기체 구조로 편입된다는 뜻일 것이며, 결국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그리 뚜렷하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가 살던 그곳에 그대로 맴돌게 되는 영혼의 여정은 물리적으로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극 중 분미는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전생의 기억이 또렷하게 되살아나는 경험을 한다(심지어 자신이 언젠가 태어났던 동굴마저 기억해낸다). 삶과 죽음, 혹은 이전의 삶 사이의 경계는 우리가 의식하기만 한다면 언제든 무너져내린다. 그 기억을 떠올릴 수 있게 되자 거의 즉시 죽은 아내의 유령과 털북숭이 유인원의 모습을 한 죽은 아들이 분미의 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분미의 죽음을 옆에서 지켜본 두 인물 젠과 통이 영화의 말미에 경험하는 (마치 분미에게 감염되듯) 어떤 특별한 사건은, 우리 주변에 떠돌고 있는 신비로운 힘이 불현듯 물질화되어 드러나는 순간의 지층의 단면을 뚝 잘라 보여준다.

<열대병>이나 <징후와 세기> 등을 보았다면 아핏차퐁의 영화에 약간의 선입견과 두려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엉클 분미>는 어쩌면 아핏차퐁의 필모그래피 중에서 가장 친절하고 내러티브가 뚜렷한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CG의 힘을 빌린 증강현실을 말 그대로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당신이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을 보고 놀라운 상상력이라 감탄했다면, <엉클 분미>는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영화적 사건일 것이다. 우리가 앙리 베르그송의 책을 펼치고서야 아핏차퐁의 비전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들을 더듬어낼 수 있는 것과 달리, 아핏차퐁을 비롯한 타이 사람들에게는 이 신비로운 세계가 그저 자연스럽게 체득된 믿음의 체계라는 점이 부럽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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