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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젊은 감독들의 시선 <간증, 집, 심도>
김용언 2011-03-16

<간증>

지난 3년 동안 가장 용감한 데뷔작을 만들어온 집단이 있다.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장편제작연구과정’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해 2기 작품들(<나는 곤경에 처했다!> <너와 나의 21세기> <여자 없는 세상> <로망은 없다>)을 돌이켜보면 사적인 시공간을 통해 이른바 ‘88만원 세대’라 불리는 동세대의 분위기를 담아내는, 거칠게 말해 1인칭 시점의 경향이 두드러졌다. 올해 작품들은 가장 첨예한 사회적 이슈들을 날카롭게 응시하는 3인칭 시점에 가깝다. 게다가 공통적으로 이 작품들에는 ‘해피엔딩’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젊은 감독들의 시선이 절망과 모호한 비극에 이끌릴 수밖에 없다는 건 그만큼 슬픈 현실이기도 하다.

박수민 감독의 <간증>은 맹목적인 도그마를 다룬다. 전직 고문기술자 박덕준(권혁풍)은 신앙을 가져보려 애쓰지만 고통스런 과거는 그에게 기도조차 허락지 않는다. 유일한 말벗 이 권사(이화시)의 간청에 못 이겨 교회 간증회에 간 덕준은 충격에 휩싸인다. 간증을 행하는 임광한(이대연) 장로는 과거 덕준과 함께 일했던 고문경찰이었다. 여기에 스스로 신에게 선택받은 자라고 믿는 소년 경호(이주승)가 등장한다. 구원받았다고 자신하는 두 사람, 광한과 경호는 실상 신의 형상 위에 스스로 믿고 싶은 이상적인 자아를 투영하고 있다. 신이 인간을 버린 게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를 저버렸다는 걸 직시하지 못하는 그들의 맹신이야말로 우리를 점점 지옥으로 끌고 간다. 과거 국가권력이 자행한 고문기술자를 이제는 천민자본주의의 아이콘 같은 폭력조직에서 여전히 유용하게 부린다는 설정은 다소 도식적이지만 한국사회를 떠받치는 국가권력과 종교권력과 자본권력이라는 삼위일체를 거시적으로 조망하려는 감독의 야심이 엿보인다.

박미선, 박은영, 반주영, 이현진, 이재호 등 다섯 감독이 완성한 애니메이션 <>은 재개발 이슈를 다룬다. 가영(김꽃비)은 재개발을 앞둔 희망상가의 허름한 옥탑방에서 친구 희주와 함께 산다. 어느 날 길고양이가 떨어뜨린 방울목걸이를 줍고 나서부터 가영의 눈에는 집집마다 한명씩 들어선 ‘집신(神)’들이 눈에 보인다. 집신은 집 그 자체다. 집이라는 형체가 생기고 나서부터 그곳에 깃들어 거기 사는 사람들의 행복을 빌어주는 존재들이다. 재개발 혹은 아파트를 향한 지상 최대의 욕망을 전면적으로 내세우면서도 판타지적 설정을 끌고 들어옴으로써 그 무게를 완화시킨 선택은 현명했다. 도시의 또 다른 방랑자인 고양이를 ‘지신(神)’으로 형상화한 상상력도 재미있다. 미니어처 세트제작과 실사촬영, 2D 드로잉 캐릭터 합성이 빚어내는 공간감은 주목할 만하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심도>는 한국영화아카데미와 도쿄예술대 영상대학원의 협력으로 이뤄진 한·일 합작 장편영화다. 사진작가 배환(김민준)은 일본에서 그라비아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옛 친구 길수(박소희)의 결혼식에 참석한다. 그러나 식을 마친 뒤 신부 유카는 누군가와 함께 도망쳐버리고, 그때부터 배환은 한국에서의 일상과 완전히 어긋난 공기 속에 빨려든다. 특히 그의 카메라 앞에 갑자기 뛰어든, 기묘한 매력을 지닌 콜보이 청년 류(이시다 호시)의 존재감은 절대적이다. 시작부터 어긋나버린 결혼, 야쿠자의 우연한 죽음, 남창의 세계 등의 설정이 다소 산만하게 배치된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자신이 보고 싶은 대상에게만 초점을 맞추며 주변을 뭉개버리는, 즉 그럼으로써 심도가 깊어지는 순간에 대한 묘사는 낯선 상대방을 이해하기 앞서 더 빨리 매혹되어버리는 아슬아슬한 관계를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이시다 호시의 도전적인 매력이 차례로 그에게 매혹되는 영화 속 남자들처럼 관객에게도 어필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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