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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유머와 텍스트가 범상치 않은 슈퍼히어로물 <토르: 천둥의 신>
장영엽 2011-04-27

미국 코믹스의 양대 산맥 DC와 마블의 캐릭터가 맞붙는다면? 언제나 은연중에는 DC가 우세할 거라고 믿어왔다. 우주로부터 지구인들을 굽어내려보는 슈퍼맨을, 고작해야 지구에서 치고받을 뿐인 스파이더맨과 헐크 따위가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토르의 등장으로 판세는 바뀌었다.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신으로 천둥과 번개를 몰고 다니며 전능한 망치로 하늘과 땅을 가르는 이 마블 코믹스의 영웅은, 클래식이라는 수식어를 DC코믹스로부터 빼앗아올 정도로 굉장한 위력을 발휘한다.

토르(크리스 헴스워즈)는 아홉 세계를 관장하는 신의 왕국 아스가르드의 후계자다. 우주의 힘을 담은 망치 묠니르를 손에 쥔 그의 미래는 아스가르드 왕국처럼 찬란한 황금빛이다. 그런데 토르의 오만하고 독선적인 성격이 그를 파멸로 이끈다. 아스가르드에 적국 요튼하임의 스파이들이 침략하자 토르는 아버지 오딘(앤서니 홉킨스)의 명령을 무시하고 요튼하임에 잔인한 보복을 가한다. 분노한 오딘은 토르에게서 모든 권한을 빼앗고 ‘지구’라 불리는 미스가르드로 아들을 추방한다. 자격을 갖춘 자만이 묠니르를 다시 손에 얻을 수 있다는 예언과 함께. 한편 토르가 사라진 아스가르드에서는 그의 동생 로키(톰 히들스턴)가 왕이 되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

당대 최고의 셰익스피어 연출가 케네스 브래너는 코믹스 시절에도 큰 호응을 얻지 못했던 이 어둡고 고색창연한 작품을 고전 문학 스타일의 유머를 빌려 매력적인 이야기로 탈바꿈시켰다. 모든 힘을 잃고 뉴멕시코 황야 한복판에 떨어진 신의 아들은 지구인들에게 일개 광인 취급을 받는다. 애견숍에 들어가 자신이 탈 말을 찾고, ‘무지개 다리를 건너 신의 왕국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토르의 모습은 영락없는 돈키호테다. 토르와 함께 황야 한복판에 떨어진 묠니르를 바위에서 뽑아내기 위해 힘깨나 쓰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설정은 엑스칼리버의 전설을 연상시킨다. 위대한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애를 쓰는 두 아들의 경쟁 구도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헨리 4세>를 떠올리게 한다. 이처럼 해석의 여지가 풍부한 텍스트와 적재적소에 배치한 유머가 <토르: 천둥의 신>을 범상치 않은 슈퍼히어로물로 만들었다. 3D장면도 기대 이상이다. 북유럽 고대 건축물을 참고했다는 황금빛 아스가르드 신전의 위용과 SF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웜홀 너머 요튼하임에서 벌어지는 영화 초반부의 전투 묘사는 보는 이의 눈을 홀리기에 충분하다.

토르와 지구에서 짧은 로맨스를 나누는 과학자 제인(내털리 포트먼)은 신화의 존재를 믿지 않는 동료에게 위대한 SF소설가 아서 클라크의 명언을 전한다. ‘마법은 증명 안된 과학’이라고. <토르: 천둥의 신>은 3D라는 과학기술과 신화적 스토리텔링의 마법 같은 화학 작용이다. 토르의 동료로 등장하는 훌륭한 배우 아사노 다다노부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점, 초반 전투신에 비해 힘이 빠지는 최후의 결전 등은 다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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