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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의 쾌감에 결합된 부성애와 모성애 신파 <카운트다운>

지난 몇년간 ‘추격’의 쾌감에 승부수를 건 흥행작들이 많았다. 물론 손쉬운 설정만을 가져와 예고편 이상의 에너지를 발산하지 못한 실패작들도 많았다. <카운트다운>이 그중 어느 쪽이 될지 점치긴 이르다. 그래도 추격담의 얼개가 이 영화를 이끄는 중심축임은 확실하다. 사태는 어떤 채무자의 빚도 다 받아내고야 마는 일등 채권추심원 태건호(정재영)가 간암 말기 판정을 받으며 시작된다. 말도 표정도 없는 사내는 채무자를 뒤쫓던 실력으로 죽은 아들의 심장을 이식받은 차하연(전도연)을 찾아낸다. 그녀는 운 좋게도 사기죄로 ‘빵집’에 들어가 있었다. 수일 내로 출소한다니 일이 쉽게 풀릴 것 같다.

문제는 그녀의 출소를 기다리는 자가 또 있다는 사실. “동포의 눈에 빨대를 꽂아 쪽쪽 빨아낸” 5억원을 통째로 사기당한 옌볜 흑사파 두목 스와이(오만석)가 눈을 부라리며 교도소 앞을 지키고 있다. 차하연은 깔깔이, 몸뻬, 고무장화도 당당히 소화하는 변장술로 스와이를 따돌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산한 지방 국도 위에서 조촐한 카체이스 액션이 벌어진다. 구형 그랜저와 SM5는 이어 비좁은 시장 골목으로 들어선다. 총도 없다. 토종씨암탉과 연탄재 정도가 날릴 뿐이다. 소박하고 알뜰해 보이는 첫 번째 추격전이다. 나머지 액션은 백화점, 항구에서 더 큰 규모로, 표준적으로 찍었다. 하지만 평범한 로케이션에 박진감도 아쉬운 편이다.

태건호, 차하연, 스와이의 삼파전은 차하연을 배신한 원조 사기꾼 조명석(이경영)의 개입으로 더 복잡해진다. 그리고 더 재밌어진다. <카운트다운>은 맛깔스러운 조연 덕을 톡톡히 본다. 먼저 스와이. 비슷한 배경을 가진 <황해>의 면정학(김윤석)이 비극적 냉혈한이라면 <카운트다운>의 스와이는 희극적 다혈질이다. 스와이가 연신 내뱉는 ‘갓난쟁이’란 욕은 계속 듣다보면 그냥 좀 익살스런 사투리처럼 들린다. 차하연의 간을 찾는 태건호의 절박함도 이 영화의 가장 웃기는 스와이의 대사 한마디에 무색해진다. 그는 관성적 플롯에 숨통을 틔워주는 골계미 책임자다. 한편 부산에서 족보 없는 다단계 사업을 구실로 ‘먹튀’를 준비 중인 조명석은 천박함을 담당한다. 다단계 아이템이라고 내놓은 것이 변태(變態)한 헬스기구 같은 섹스 체위 보조 기구다. 공직자를 매수할 땐 접대 테이블에 머리를 처박아 만든 폭탄주, 이름하여 ‘인사주’에 1천만원짜리 수표를 감아준다. 그런 캐릭터를 만나 이경영은 <모비딕>의 장 선생이나 <푸른 소금>의 최 고문 같은 인물의 가면을 벗긴다. 결국 여기서 실속을 챙긴 배우는 오만석과 이경영이다.

진짜 노림수는 추격담도, 캐릭터도 아닌 신파다. <카운트다운>으로 결정되기 전까지 이 영화의 가제는 ‘마이 썬’(My Son)이었다고 한다. 부성애와 모성애를 전면에 내세우려 했다는 얘기다. 액션 위주의 중반부와 달리 도입부와 결말부는 드라마에 몰두한다. 5년 전 아들을 잃은 태건호는 아들이 죽은 날을 기억하지 못한다. 의사는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심인성 기억상실증이라 설명한다. 하지만 곧 죽을 수도 있는 처지가 된 그는 억지로라도 아들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려 한다. 그러다 예전에 살던 집에서 카세트테이프를 발견한다. 이 영화가 가장 공들인 부분이 바로 아들이 남긴 카세트테이프의 비밀이다. 플래시백을 통해 비밀이 밝혀지고 기억이 회복되면 비로소 태건호의 부성애도 되찾아진다.

물론 모성애 드라마는 차하연의 몫이다. 그녀는 열일곱에 딸을 낳자마자 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다 큰 딸에게 ‘언니’라고 부르라 한다. 하지만 조명덕이 딸을 납치하자 태도가 달라진다. 불한당으로부터 딸을 구해내고 엄마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차하연의 성공한 구조담은 태건호의 실패한 구조담과 교차하면서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울리겠다고 작정한 영화는 마지막 30분 동안 신파로 정면승부를 건다.

부성애와 모성애는 신파를 요리하기 위한 고전적 레시피다. 눈물에 후할 관객도 인색할 관객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왕 신파와 액션을 섞으려 했다면 소재 선택에 더 신중했다면 좋았겠다. 다운증후군을 앓던 아들의 죽음이라는 트라우마는 강력하지만 드라마의 활력을 위축시키기 십상이다. 거기서 빚어진 갈등에는 출구가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카운트다운이라는 제목에 걸맞은 분초의 다툼은 빛을 바랜다. “시간이 없다”는 대사가 힘없는 주문처럼 들리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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