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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자본, 사회 시스템에 대한 실험적 다큐멘터리 <보라>

<보라>는 통증을 느끼는 육신과 노동의 문제로 시작한다. 영화는 초반 피아노 공장, 마네킹 공장, 채석장 등 다양한 산업현장에서 이루어지는 현장보건관리를 통해 노동자들의 노동환경과 그들이 겪는 산업재해의 현황을 보여준다. 초반부의 특징은 관찰과 집요함이다. 카메라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높은 곳에 고정되어 있다. 다큐멘터리의 목소리나 발언은 배제되어 있으며 지극히 건조하다. 산업재해에 관한 다큐멘터리라고 생각되던 영화는 평생 농사일을 해온 할머니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노동과 자본의 문제로 범위를 확장하고 후반부 들어 이 사회를 움직이는 시스템에 대한 문제와 그 시스템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이미지와 재현의 문제로 마무리한다.

자연물인 질료와 인간의 합리성을 기반으로 한 기술을 결합한 것이 영화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대상, 즉 재료라고 가정하면 모든 재료 속에는 재료 자체가 가고자 하는 운동성이 내재되어 있다. 모든 영화에서 재료의 운동성은 중요하지만 극영화보다 다큐멘터리에서 더 중요하고 특히나 실험영화에서는 더더욱 중요하게 작용한다. 전승된 기술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재료의 운동성과 보편의 힘은 중요하다. 작품 형식의 내적인 파열성이 극대화되는 작품에서라도 실험이 단순한 자위행위에 그치지 않고 작품이 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다. <보라>가 한국영화의 현주소에서 우리가 지켜보고 주시해야 할 작품인 것은 맞지만 <보라>가 보여준 시도나 실험이 작품을 평가하는 유일한 잣대가 될 수는 없다. 후반부 들어 더 강해지는 자의식과 작품을 통제하지 못하는 감독의 욕심은 영화의 완성도를 떨어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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