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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 마이크 리에게 경배를!

올해의 외국영화 베스트5

베스트1. <세상의 모든 계절>

인생의 모든 행복과 불안을 그리다 지질학자 톰과 심리 상담사 제리 부부 이야기가 올해의 외국영화 1위에 올랐다. 마이크 리의 <세상의 모든 계절>이다. 평범한 노부부의 이야기 한 토막이 이렇게 따스하면서도 서늘하게 가슴을 어루만질 줄 얼마나 많은 이들이 예상했을까. <해피 고 럭키> <비밀과 거짓말> 등을 연출한 마이크 리의 영화이기에 감동을 예감하긴 했으나 결과는 그 이상이었던 것 같다. <세상의 모든 계절>은 많은 이들에게 골고루 지지를 받았다. 일상적인 삶과 관계 속에서 종종 드러났다가도 은연중 묻혀버리거나 사그라지는 미묘한 문제에서부터 언젠가는 결국 마주쳐야 하는 인생의 피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까지, 마이크 리는 현자의 시선으로 그 모든 행복과 잔인함과 소란들을 포용한다. 영화는 어느 한 배우도 흠잡기 어려운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는데, 그 연기력과 그걸 끌어낸 감독의 조화가 이 영화의 감동을 배가한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일년 사계를 네개의 막으로 나누고 톰과 제리 부부를, 그리고 그들 곁을 찾아오는 인물과 사건들을 다룰 때 이 영화는 말 그대로 삶의 다양한 면모를 생각하게 한다. 예컨대 삶의 잔인함과 자애로움. 평자들도 그 속에서 다양한 걸 느꼈다. “이 영화는 불균등한 행복과 교양있는 이웃의 한계를 동시에 드러내며, 윤리에 대해 반문한다”(황진미)며 영화의 윤리적 질문의 자세에 주목하기도 했고, “일상의 표층을 헤집지 않고서도 그 표층 밑에 잠재해 있는 불안과 고통을 드러내는 솜씨. 마이크 리의 직관과 재능이 정말 부럽다”(김효선)는 미학적 찬탄을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세상의 모든 존재에 대한 연민이 돋보인다. 마지막 겨울 부분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잔인함 같은 걸 느끼게 한다”(한창호)는 말에는 결국 무릎을 치며 공감할 수밖에 없다.

베스트2. <르 아브르>

“올해 나온 영화 중 사람의 마음을 가장 행복하게 해주는 작품.”(듀나) 사실은 이 말이면 족하다. 우리 시대의 가장 급진적이고 활발한 영화의 넝마주이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여기저기서 주워다 붙여놓은 장면과 인상과 기술을 이용하되 신기하게도 자신만의 작품을 탄생시키는 비기를 지녔다. 그의 영화에서 희극적 인물들은 종종 등장하였으나 해피엔딩은 신중하게 도래하거나 판단 유보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르 아브르>, 프랑스의 작은 항구 도시에 떠밀려 들어온 밀입국자 흑인 소년과 아마도 그 도시에서 가장 가난한 자에 속할 구두닦이 노인의 우정에 관한 이 이야기는, 작정하고 해피엔딩이다. 그러니까 “노동력의 전 지구적 이동에 관한 슬픈 현실을 동화적 감수성으로 힘껏 포옹하고 있는 눈물나게 가슴 따뜻한 이야기”(김지미)다.

베스트3. <블랙스완> (공동)

“스크린을 녹일 듯한 광기에 대책없이 빨려들어간다”(김종철), “빠르게, 빠르게, 점점 빠르게 휘몰아치는 정념의 폭주. 도플갱어에 대한 가장 환시적이고 가장 우아하며 가장 미니멀한 접근”(송효정). <블랙스완> 지지자들의 의견을 모으면 이 영화의 장점이 한눈에 보인다. 백조의 영화에 익숙해 있던 우리에게 흑조의 이야기로 이토록 호소할 수 있었던 건 역시나 감독 대런 애로노프스키의 상상력과 기술력 덕분일 것이다. 선한 백조가 아닌 욕망의 흑조를 그리기 위해 동원된 이 영화의 강렬한 표현력에 특히 혀를 내두르게 된다. <블랙스완>은 발레를 찬미하는 영화가 아니라 발레리나의 강박증을 경유하여 카오스의 세계를 표현해보고 싶어 한 영화인데, 마침내 그 카오스의 완성도를 인정받은 것이다.

베스트3. <아이 엠 러브> (공동)

쟁쟁한 거장 감독들의 작품을 물리치고 신인에 속하는 루카 구아다그니노의 <아이 엠 러브>가 공동 3위를 차지한 것은 올해의 흥미로운 이변이다. 밀라노 상류층 재벌 가문의 어머니이자 며느리로 살아가는 중년 여인의 권태와 열망에 관한 이 드라마는 많은 이들보다는 소수의 열혈 지지자들에게 추대되었다. “우아하고 감각적이고 기품있게 마감된 화면들. 그 밑에 일렁거리는 삶과 열정의 에너지. 일차원적으로 아름답다. 그 화면에 매혹되어 몰입하다보면 그다지 특별할 것 없던 이야기가 매력적으로 변모한다”(송경원), “영화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잠들어 있던 세포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면서 기립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이동진)는 평을 얻었다. <아이 엠 러브>가 매력적인 스타일로 신선한 감흥을 전했음을 확인해주는 평들이다.

베스트5. <사랑을 카피하다>

2000년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자기 실험에 몰두했다. 그의 실험이란 들리는 것과 보이는 것을 최소한으로 제한한 뒤 영화적 결정체를 캐내보는 것이었다. 키아로스타미가 그렇게 2000년대를 보낸 다음 <사랑을 카피하다>로 돌아왔을 때 그의 영화는 고국인 이란이 아니라 이탈리아에서 촬영되었고 줄리엣 비노쉬라는 걸출한 여배우도 동참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을 배경으로 완성된 이 영화에는 그간에 그가 집중했던 영화적 문제들이 유연한 방식으로 재등장하고 있다. 말하자면 “감독이 이전의 연출 스타일을 고스란히 살리면서 동시에 가장 현대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낸 작품”(이지현)이며 동시에 “스토리의 현실과 허구의 혼재는 물론이고, 현실인지 허구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아름답게 잡은 공간도 매력적”(한창호)이다. 키아로스타미의 새로운 전환점이 환대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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