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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밀하게 그려낸 추악한 정치의 세계 <킹메이커>
이영진 2012-04-18

영원한 적도, 평생의 아군도 없다. 정치는 배신을 허용하는 유일한 영역이다. 정치를 그래서 추잡한 술수라고 부른다. 또한 정치는 흥미진진한 게임이다. 배신이라는 조커가 없었다면? 정치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자리놀음에 불과했을 것이다. <킹메이커>의 원제는 ‘The Ides of March’(3월15일)다. 이 말은 기원전 44년, 로마의 장군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황제가 되지 못하고 심복 마르쿠스 브루투스가 휘두른 배신의 칼에 쓰러진 날에서 유래됐다. 조지 클루니의 4번째 연출작이자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던 <킹메이커>는 배신이라는 키워드로 권력의 순환도를 꿰맞춘 정치영화다.

스티븐 메이어스(라이언 고슬링)는 전도유망한 정치 신인이다. 유력한 ‘민주당 차기 대선후보’인 마이크 모리스(조지 클루니) 선거캠프의 홍보담당관으로 일하는 그는 뛰어난 연설문 작성 능력과 예민한 정세분석 실력을 갖추고 있다. 민주당 대선 후보를 결정할 중요한 예비선거를 앞두고 상대 후보 진영의 톰 더피(폴 지아 매티)가 스티븐에게 접근한다. 스티븐은 톰의 스카우트 제안을 단박에 거절하지만 이 만남 자체만으로 스티븐의 상관 폴 자라(필립 세이무어 호프먼)는 곤경에 빠지고, 급기야 경선에서 앞서고 있던 마이크의 지지율까지 급전직하한다. 한편, 스티븐은 선거캠프에서 일하는 몰리(에반 레이첼 우드)와 하룻밤을 보내던 중에 마이크의 부정을 알아차린다. 선거를 좌지우지할 충격적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스티븐은 혼자서 동분서주하지만 외려 마이크와 폴은 그를 해고한다.

네거티브 공세가 난무하고, 갖가지 스캔들로 얼룩진 현실정치의 이면을 <킹메이커>는 꼼꼼하게 묘사한다. 상대 후보의 신체적 약점을 공격하는 건 기본이다. 루머를 사실로 확정하는 건 상식이다. 지지율을 제멋대로 부풀려 언론에 퍼트린다고 문제될 건 없다. 때론 정적에게 요직을 떼주고 지지를 호소해야 한다. 어떻게든 이기면 된다. 원작자인 보 윌먼은 극중 스티븐처럼 2004년 민주당 대선 후보 중 한명이었던 하워드 딘의 선거캠프에서 홍보담당관으로 일했고, 그때 지켜봤던 정치인들의 책략과 술책을 연극 <Farragut North>로 옮겼다. <킹메이커>가 협잡이 판치는 추악한 정치의 세계를 세밀하게 드러낼 수 있었던 건 원작 덕분일 것이다. <킹메이커>에 따르면 정치는 터부다. 터부는 신성한 동시에 절대로 손대선 안될 악마적인 것을 뜻한다. 스티븐은 정치를 숭고한 것이라고 여기는 것과 달리 폴과 톰은 스티븐의 이러한 신념을 순진하다고 비웃는다. 두 사람에게 정치는 불결하고 기피해야 할 금제의 영역이다. 극중 인물간의 배신이 거듭되는 후반부는 숨가쁘다. 전반부와 다른 양상의 대립이 펼쳐져서다. 전반부의 갈등이 마이크-폴-스티븐 vs 톰의 구도였다면 후반부의 갈등은 스티븐 vs 폴-톰-마이크의 모양새다. 궁지에 몰린 스티븐은 그제야 깨닫는다. 자신은 지금껏 그저 이용당해왔던 애송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터부를 범하면 그 범한 자가 터부가 된다.” 스티븐이 마이크를 향한 복수의 칼을 빼들었을 때, 그제야 마이크는 스티븐을 진짜 ‘킹메이커’로 인정한다.

<킹메이커>가 배신의 드라마를 생생하게 써내려갈 수 있었던 건 쟁쟁한 배우들의 힘이 크다. 점점 괴물로 변해가는 라이언 고슬링과 정치인의 위선적인 제스처를 생생하게 보여준 조지 클루니가 맨 먼저 눈에 띄겠지만, 정치에 대한 환멸과 인간에 대한 두려움을 주저없이 표현해낸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과 폴 지아매티의 냉랭한 표정도 오랫동안 잔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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