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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잡이 낭만주의자 <장고: 분노의 추적자>
장영엽 2013-03-20

타란티노의 ‘역사 놀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을 통해 나치군에 피의 복수를 함으로써 유럽 역사를 재구성한 타란티노가 미국 노예제 역사에 메스를 들이댄 <장고: 분노의 추적자>(이하 <장고>)를 내놓았다. 영화명을 빌려온 세르지오 코르부치의 1966년작 <장고>처럼 흑인 노예 장고(제이미 폭스)가 주인공이긴 한데, 이 노예가 쇠고랑을 벗는 건 한순간이다. 장고는 착한 사마리아인 같은 독일인 현금사냥꾼 닥터 킹(크리스토프 왈츠)의 도움을 받아 금세 멋진 말을 타고 미국 평원을 달리며 헤어진 아내 브룸힐다를 찾아다니는 총잡이 낭만주의자로 변신한다. 말하자면 얼굴색만 다를 뿐 영락없는 미국 서부극의 주인공이다. 그는 브룸힐다가 미시시피에서 가장 악독한 농장 캔디랜드의 노예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농장주 캔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찾아간다.

“(<장고>는) 사랑하는 여인을 구하기 위해 지옥의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남자의 이야기”라고 타란티노는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브룸힐다가 마침내 등장하는 시점을 고려했을 때, 타란티노의 관심은 (사실 당연하다) 낭만적인 서부극의 주인공보다 미국 국적을 지닌 백인들에게 받은 만큼 되돌려주는 미국 흑인 영웅의 복수담에 머물러 있는 듯 보인다. 피와 총알, 폭탄이 난무하며 대개 장고가 승리자인 이 영화에서 그의 유일한 우군이 미국인 백인이 아니라 독일인이라는 점이 그 증거다. 가장 백인적인 장르인 서부극 안으로 들어가 백인들에게 총알 세례를 퍼붓는 두명의 배우를 통해 타란티노는 1970년대 블랙스플로이테이션영화가 선사했던 오락적인 즐거움을 <장고>에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타이밍의 즐거움, 크레딧이 화려한 사운드트랙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음은 물론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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