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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유령 <코스모폴리스>

세계 금융의 중심지 월가를 호령하는 젊은 재벌 에릭 패커(로버트 패틴슨)는 초호화 리무진을 타고 뉴욕을 가로지르는 중이다. 도심은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시위대로 들끓고 있고 그들 중 누군가는 패커를 모욕하거나 죽이고 싶어 하지만 그는 어딘지 자기만의 고민에 빠져 있다. 그는 엉뚱하게도 머리를 깎고 싶을 뿐이고 유년 시절의 추억이 담긴 그 허름한 이발소에 가고 싶을 뿐이다. 패커와 관련된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차 안으로 초대되어 대화를 나누거나 섹스를 나눈다. 패커의 회사 부하 직원들, 경제이론가, 사회학자, 경호원 등등. 그러는 사이 패커는 자신의 투자가 대실패했음을 알게 된다.

<코스모폴리스>는 미국의 유명 작가 돈 드릴로가 쓴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캐나다의 거장 감독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는 영화화하기 까다로워 보이는 소설의 내용을 단 며칠 만에 각본으로 탄생시켰고 그 결과 시종일관 기괴함이 흐르는 영화 한편이 태어났다. 기괴함의 진원지는 의외로 이런 것들이다. 시종일관 어눌하고 어둡고 무심하게 이어지며 도저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무료함을 전하는 그 표정과 장광설. 그에 반해 점점 더 과격하고 무섭게 달아올라 용광로처럼 변해가는 도심의 지옥 같은 분위기. 고요함으로 가득한 리무진의 내부, 하지만 도발과 아우성으로 가득한 리무진의 외부, 그 안과 밖의 극단적 대비. 크로넨버그는 그러한 것들로 이 영화를 칠하여 묵시록적인 도시 괴담을 그려낸다. 한편,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로버트 패틴슨이 주인공 패커 역을 연기하는데 그는 비로소 이 영화를 통해 연기를 할 줄 아는 배우라는 걸 보여준다. 헐벗고 지친 그의 표정과 몸짓과 목소리가 전에 없이 압도적이다. 크로넨버그는 패커라는 이 인물을 통해 마르크스의 그 유명한 문구를 뒤집은 다음 그 뒤집힌 비유가 분위기로 표현되기를 바란 것 같다. 말하자면 <코스모폴리스>에는 ‘패커라는 자본주의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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