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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관통하다 <일대종사>

대부분의 쿵후영화들이 무술(武術)의 속도와 힘을 얼마나 현란하게 담아낼 것인가에 집중한다면 <일대종사>는 삶 전체를 관통하는 무예(武藝)의 경지를 보여주기 위해 오히려 움직임을 절제하는 듯 보인다. 이 영화가 집중하고 있는 무예의 정수는 바로 ‘정중동’(靜中動)인데, 빠르게 움직이는 몸을 포착하기보다 소리도 속도도 없이 움직이는 마음을 담아내는 데 더 공을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이 이 작품이 액션 장면을 소홀히 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주인공으로 하여금 더 강한 적을 만나면서 성장하게 하는, 혹은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원하는 관객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액션의 강도를 높여가는 일반적인 쿵후영화의 공식과는 전혀 다른 길을 선택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영화가 시작하면 엽문(양조위)은 말한다. “쿵후는 두 단어로 말할 수 있다. 수평과 수직! 최후에 수직으로 서 있는 자가 승리하는 것이다.” 이 문장은 두번 반복되며 영화를 열고 닫는 문(門) 역할을 한다. 무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가 아니라 자신이 최후까지 수직으로 설 수 있는지의 문제라는 것이다. 엽문과 무술로 교감했던 궁이(장쯔이)는 ‘무술의 첫 번째 단계는 자신을 보는 것이고, 그다음은 천지, 마지막으로 중생을 보는 것’이라는 아버지의 말을 통해 이 말의 의미를 확장해준다. 무술은 상대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세우는 것이되 무엇을 보고 어떻게 세울 것인가를 통해 궁극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왕가위가 말없는 주인공들의 심리를 표현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물 이미지이다. 장대비는 인물의 동선을 더 파워풀하고 아름답게 보필해주고 우레와 같은 박수로 합의 종결을 마무리한다. 명성과 부를 위해 종파를 배신하는 이의 태도는 고드름과 같이 날카롭지만 일격에 부서질 듯 위태롭다. 복수의 칼날을 품은 여인의 마음은 혹한의 눈발처럼 차갑지만 ‘잎사귀 아래 숨겨진 꽃’(궁이)의 가장 아름다웠던 유년 시절 기억 속에서는 그 무엇보다 풍성하고 아름답게 흩날리기도 한다. 또 엽문이 사랑했던 아내 장영성(송혜교)을 회상할 때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 위로 흘러내리는 빗물은 그의 눈물을 대신한다.

이 영화가 지루하게 느껴진다면 독백에 가까운 서사적 구성 때문일 것이다. 각각의 인물은 사랑하거나 교감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결국은 늘 혼자 남는다. 엽문의 생애나 영춘권보다는 인간 보편의 실존적 고독을 무술을 화두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떠돌이 무사의 외로움을 담아냈던 <동사서독>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그림 같은 화면이 인물의 심사를 포착하고 아포리즘 같은 대사들이 인생을 관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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