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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기를 든 부부 최성원. 남진아 이야기 (2)
2002-03-02

빛과 그림자, 그 하나를 위한 이중주

마침내 그들은 헤어졌다, 현장에서 제작자가 조명협회를 의식해 비회원을 잘 쓰지 않던 시절이었지만, 97년에만 <오디션> <미스터 콘돔> 등 3편을 했으니 두 사람의 운이 나쁜 편은 아니었다. 98년 <남자 이야기>를 찍으면서 결혼하고, <퇴마록>을 끝으로 남진아씨는 최성원씨와 “헤어졌다”. “더이상 배울 게 없다고 그러더라.” “조명 퍼스트 초반, 조명에 대해 좀 알 것 같은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때였지, 뭐.” 농담으로 돌아보지만, 막내 시절부터 최고의 선배이자 남편인 최성원씨가 남진아씨에게는 늘 든든한 후광인 동시에 부담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오랫동안의 촬영장 동거를 청산한 것도, 최성원 감독의 스타일에 너무 익숙하다는 것 외에 입봉을 생각하는 입장에서 남편 덕본다는 말을 듣기 싫은 자존심 탓이 크다. 최성원씨가 98년의 <>에서 99년의 <간첩 리철진>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거짓말>까지 내달리는 동안, 남진아씨는 박종환 조명감독 팀에 퍼스트로 들어가 <만날 때까지>와 <이재수의 난>으로 ‘비패밀리’ 현장을 경험했다. 시대극인 <이재수의 난>은 광원이 전기가 아닌 촛불이나 호롱불이라 새로운 질감의 빛을 고민하면서도 재밌는 도전이었지만, 조수 두명을 잃은 사고로 가슴을 후벼판 작업이기도 했다. 사기가 바닥인 팀을 어떻게든 꾸려보고자 악다구니를 쓰면서도, 그렇게 엉망진창인 마음으로도 영화를 찍어야 한다는 것에 하루에도 몇번씩 때려치우고 싶은 심정이었다. 남편의 드러나지 않는 외조 몸도 마음도 상처투성이 패잔병이 되어 <이재수의 난>을 마친 남진아씨는 2년여를 쉬었고, 그 사이 아들 미르를 얻었다. 여성조명감독 1호 후보라고 여기저기서 기대를 받아온 터라, 결혼할 때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그냥 주저앉는 것 아니냐는 주위의 우려가 들려오기도 했다. 일을 그만둘 생각은 없었지만, 공백이 길어지면서 감을 잃었을까 두려웠다는 남진아씨는 의 갑작스런 제의에 선뜻 응할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신참인데, 시간이 너무 없었다. 그게 변명이 될 순 없기 때문에 해서 죽 쑤는 것 아닌가 망설여졌다.” 세트 촬영 3일 전에 시나리오를 받고 망설이는 아내의 등을 힘껏 두드려준 것은 최성원 감독이다. <이재수의 난> 때도 제주도에서 5개월에 한번 집에 올까말까한 아내를 불만스러워하지 않았던 그는, “하고 싶은 일은 끝까지 하자”던 처음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까 되레 걱정이었다고. 쉽진 않지만 규모가 크고 선이 굵은 영화라 입봉한 뒤에도 여성조명감독에게 드물게 올지 모를 작품으로 시작하는 것이 오히려 좋다며 적극적으로 권했다. 남진아씨가 일단 를 하겠다고 맘먹자, 마침 <하면 된다> 이후 쉬고 있던 최성원씨는 기꺼이 ‘로드매니저’가 됐다. “차라리 부부가 아닌 선후배 관계였으면 오히려 편했을 텐데”, 죽어도 남편이 뒤에서 봐줬단 말은 듣기 싫다며 가능한 한 현장에 들어오지 말라고 당부하는 아내를 위해 주차장 차 안에서 촬영이 끝나길 기다리기가 일쑤. 그래도 잘하는지 어쩌는지 걱정을 안 할 순 없어서 조명 세팅이 끝났다 싶으면 슬쩍 들어가서 몰래 모니터를 보곤 했다. “조수 때랑 많이 다르다. 보는 눈이 달라야 한다.” ‘대장’이 만들어놓은 걸 보고 어떻게 하면 낫겠다는 판단은 어렵지 않았는데, “아무것도 없는 데에서 만든다는 게” 그렇게 힘들더라면서, 남진아씨는 새삼 그동안 미처 다 헤아리지 못했을 최성원씨의 속내를 좀더 이해할 것 같았다. 구체적인 세팅에 대한 조언은 일체 피했지만, 필요한 기재는 빌려서라도 물량을 맞춰주고, 후레이센진들이 유물을 탈취하는 국도장면에서 깎아지른 도로변 산 위에 조명을 올리고 싶은데도 위험할까봐 엄두를 못 낼 때 직접 120kg짜리 리프트와 6kg, 12kg짜리 라이트를 크레인으로 올려준 ‘오퍼레이팅’ 등 남편의 아낌없는 도움이 큰 힘이 된 것도 사실이다. “빛이 통과하게 대나무 겁나게 베어가며” 찍다가 “도끼로 조명하는 여자 첨 봤다”는 농담 들어가며, 맘껏 불지르고 찍은 지하 아지트나 색감으로 왜색을 살린 조선족 거리는 그나마 건졌다 싶은 는, 더 늦었으면 돌아오기 더 힘들었을 것이란 생각에서도 기억할 만한 첫발이었다. 따로 또 같이, 같은 곳을 향해 “앞으로 머리가 커지면 아무래도 싸움 수가 늘 것 같다”며, 언제나 선배 남편에게 신랄한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는 남진아씨는 미리 슬쩍 선전포고다. “나중엔 서로의 창작에 대해선 말로 하지 말고 관객으로 보자”면서도 후배 아내가 주는 자극이 싫지 않은 눈치인 최성원씨는 “빨리 시계가 더 넓어져서 더 많은 걸 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인다. 현재 남편은 <가위>의 안병기 감독과 다시 호흡을 맞춘 호러 <폰>을, 아내는 새 작품인 멜로 <연애소설>을 촬영중. “화면에 심리적인 깊이를 주는” 빛의 마술을 고민하며, 따로 또 같이 같은 곳을 향해 가고 있다. 글 황혜림 blauex@hani.co.kr·사진 손홍주 lightson@hani.co.kr▶ 조명기를 든 부부 최성원. 남진아 이야기 (1)

▶ 조명기를 든 부부 최성원. 남진아 이야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