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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와 런던에서 우연이 이끈 영화적 체험의 며칠
글·사진 정지혜 2015-12-08

휴가-파리-오랑주리-모네-런던의 황정민-애비로드 스튜디오-<대호>-장건재 감독

오랑주리 미술관.

휴가차 떠난 파리에서 돌아온 지 닷새 만인 11월13일(프랑스 현지시각) 파리에 상상을 초월한 대규모 테러가 발생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내가 머문 숙소에서 큰길 하나만 건너면 이번 테러로 많은 희생자를 낸 바타클랑 공연장이 있었다. 파리를 오가며 나도 모르는 사이 스쳐지나갔을지도 모르는 사람들, 거리에서 우연히 눈길을 주고받았을지도 모르는 이들이 살아가는 그곳에서 벌어진 끔찍한 일이다. 여행에서 돌아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시각 프랑스는 테러를 주도한 것으로 밝혀진 이슬람국가(IS)를 격퇴하겠다며 공격을 시작했다. 파리가 무너진 자리에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정당화하는 참극이 이어졌다. 여행지에서의 감응을 정리해두는 일이 야만의 세계 앞에서 무슨 소용일까 싶으면서도 무엇이든 써둬야 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과거로부터 단절된 현재가 있을 수 없듯 현재로부터 단절된 미래 역시 불가능한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파리를 찾아 추억을 쌓고, 감응을 공유하던 테러 이전의 일상을 기억하고 그러한 일상이 지속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파리 테러로 희생된 사람들과 그 후 또 다른 폭력으로 죽어간 평범한 사람들을 애도하며 이 글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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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는 우연(偶然)이 만들어내는 마법과 맞닥뜨리길 기대한다. ‘나그네 여, 다닐 행’이라는 여행(旅行)의 의미를 최대한 관대하게 해석해본다면 우연 앞에서 대체로 여행자는 무장해제될 수밖에 없다. 돌이켜보면 나의 여행은 대부분 그러했던 것 같다. 또 앞으로도 그러하길 바란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대체로 사실이지만 여행에서만큼은 알지 못해도 보고 느낄 수 있다고 믿는다. 매주 반복되는 주간지 마감 속에서 핑계 같지만 나는 여행지에 대한 사전 정보를 충분히 살피지 못한 채 떠났다. 그래서 이렇게 우연 타령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도 여행이 주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은 대개는 우연한 만남과 예상을 한참이나 벗어난 사건과 사고들에서 온다고 말하겠다. 11월을 이틀 앞두고 무작정 파리에 들어섰다. 겁 없는 여행자가 당장에 의지할 데라곤 정보 검색 능력이 타고난 회사 선배 K가 추천해준 앱 지도 시티매퍼(Citymapper)와 런던과 파리 파트만 북북 뜯어온 여행용 책자의 일부뿐이다. 뜻밖의 만남 같은 건 어딘가에서 우연을 관장하고 있을 신에게 맡겨두는 수밖에. 부디 행운이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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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해 파리 시내로 들어가는 루아시 버스에 올랐다. 이층 짐칸에 묵직한 트렁크를 낑낑거리며 올려보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저기 말야, 도와줄까?” 또래로 보이는 남자가 불어로 말을 건다. 불어를 전혀 몰라도 그게 그런 의미라는 것은 용케 알아들었다. 그의 손을 빌려 가방을 밀어넣고 “메르시!”(Merci, 고마워)라고 외치고는 자리에 앉는다. 무사히 버스에 올랐다는 안도의 숨을 고르며. 남자도 내 뒷좌석에 등을 맞대고 앉는다. 뒤이어 또 다른 여성 승객이 짐칸에 캐리어를 넣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겨우 짐 정리를 마친 그녀도 내 뒤편 자리에 등을 맞대고 앉는다. 그 남자와 나란히. 그 뒤 버스가 출발해 종점인 오페라 극장까지 가는 1시간여 동안 이 둘은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말싸움을 했다. 둘은 아마도 연인일 것이다. 자신의 짐은 본체만체하더니 낯선 여자의 짐은 친절하게도 들어올려준 남자친구가 괘씸했던 걸까. 아니면 차에 오르기 전부터 둘은 이미 심사가 뒤틀려 있었을지도 모른다. 애꿎은 내가 이상하게 둘 사이에 낀 느낌이다. 물론 이들의 대화는 100% 불어로 진행됐으니까 이런 내 생각은 어디까지나 나만의 추측이다. 그런데도 어째서 내 뒤통수가 당기는 걸까, 어째서 버스 안에 있는 다른 승객이 이들과 나를 번갈아가며 보는 것만 같을까. 일단 등 바로 뒤에서 격분과 짜증, 오기가 뒤섞인 감정이 실린 말을 듣고 있자니 너무 피곤했다. 쏘아붙이는 대화에 불어의 음율이 이렇게 잘 어울렸다니. 자리를 저 뒤편으로 옮겨볼까 했다. 그런데 말 한마디 못 알아듣는 내가 무슨 이유로 자리를 옮기며 이유를 알았다 한들 내가 자리를 피해야 할 이유는 또 뭔가 싶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웃기기도 했고. 마침내 버스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배경이 된 오페라 극장 앞에 사람들을 토해냈다. 의도적으로 이 커플과는 눈도 맞추지 않고 짐을 끄집어내며 버스에서 내렸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지하철역이 나오는지 두리번거릴 때였다. 그 남자와 눈이 딱 마주쳤다. 트렁크를 끌며 여자친구 뒤를 따르던 그의 시선이었다. 내 짐작이 전혀 엉뚱하게 흐르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상한 기분. 그 순간, 음성언어로는 전혀 알 수 없던 대화가 미심쩍고 의뭉스러운 타인의 시선과 분위기로 치환돼 전해졌다. 내가 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 도시 파리에 도착했음을 처음으로 자각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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튈르리 정원을 따라 끝까지 가면 오랑주리 미술관이 나온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서면 온실에라도 들어온 것마냥 후텁지근하다. 곳곳에 난 너른 창으로 늦가을의 볕이 사선형으로 든다. 희디흰 내부의 벽들이 그 빛을 또 한번 반사한다.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 있는 집답다. 부랴부랴 외투를 벗으며 첫 번째 방으로 들어선다. 클로드 오스카 모네의 <수련> 연작이 방 안을 빙 둘러싸고 있다. 백색의 패널 위로 1m97cm 높이에 족히 100m는 돼 보이는 가로의 작품이 네편 걸렸다. 특히 전시실의 구조가 달걀을 옆으로 뉘어놓은 듯해 작품들은 커브형으로 펼쳐진다. 이곳에는 총 8편의 연작이 모여 있는데 이 모든 게 모네가 1890년대부터 1926년까지 30여년 동안 완성해낸 것들이다. 특히 그는 이중 두 작품을 제1차 세계대전이 종전을 알린 1918년에 완성해 자신의 고국 프랑스에 헌사했다. 평화가 깃들길 소망하면서. <수련> 연작을 보고 있으면 안개에 서서히 옷깃이 젖듯 아련한 기운에 빠져든다. 미몽 속을 헤매는 듯도 한데 안도감이 있다. <수련>은 ‘The Nympheas’라고도 표기돼 있다. 그리스어 ‘numphe’에서 온 이 말에는 헤라클라스를 사랑해 죽음에 이른 님프가 수련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수련은 죽음 속에 핀 꽃이었다. 모네는 지베르니에 있는 자신의 집 연못에서 새벽부터 밤까지 빛의 변화에 따른 수련의 모습을 그림으로 옮겼다. 대체로 미술관은 그림의 변색과 변형을 우려해 창을 내지 않는데 모네의 그림이 있는 전시실만큼은 광량과 빛의 방향에 기민하게 반응한 작가의 의도를 십분 살렸다. 천장에는 가림막 사이로 보름달 모양의 창이 뚫려 있다. 거대한 우물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달까. 넋을 놓고 빛과 음영이 만들어내는 조화를 지켜본다.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건 상당히 능동적인 사고를 요한다. 일단 아무런 정보 없이 그림을 본다. 그리고 라벨지에 소개된 그림의 제목과 제작연도를 살핀다. 그리고 다시 그림을 본다. 몇 가지 정보가 들어오면서 두 번째로 그림을 볼 때는 작가가 이 그림을 그렸을 때의 나이, 시대 배경, 제목과 그림의 연결성 등을 짐작해보게 된다. 보는 이가 발견해주길 바라는 작가의 의도를 작품 곳곳에 숨겨놓은 그림을 보는 건 마치 숨은그림찾기나 퍼즐놀이 같다. 오랑주리에 있는 앙리 마티스의 <세 자매>도 그랬다. 스타일도 분위기도 다른 세 자매. 여자 형제가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세 자매 중 누가 막내인지를. 근데 첫째와 둘째는 조금 헷갈린다. 앉은 자리의 위치와 포즈를 보며 이리저리 가늠해본다. 그림을 보는 일이 이야기를 만드는 일과 무척 닮아 있었다.

애비로드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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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내게 파리는 몇몇의 얼굴들로 기억된다. 파리를 두 번째로 방문했던 2006년 크리스마스이브에 만난 사람들이 있다. 그때 나는 파리 외곽의 한인민박에 머물렀다. “조용히 들어와주세요.” 늦은 밤 숙소에 도착한 여행자에게 민박집 주인은 부드럽지만 조심성 있게 정숙해달라는 주의부터 줬다. 알고 보니 이 민박집이 파리 당국에 미등록된 사업장이라 시끄럽다고 옆집에서 경찰에 신고라도 하면 민박 운영을 접어야 했던 것이다. 조각을 공부하기 위해 홀로 파리 유학 길에 올랐지만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민박을 차렸다는 주인장은 10년째 파리에 체류 중이었다. 한국으로 돌아갈 날은 요원해 보였다. 밤낮없이 투숙객을 맞이해야 하는 일이 주는 피로감이 그의 꺼칠한 얼굴을 만들었으리라. 그곳에서 만난 40대 중•후반의 아주머니도 때때로 생각난다. 투숙객을 상대로 식사 준비와 청소를 했다. 음식 솜씨가 훌륭해 한국 음식에 굶주린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이름조차 물어볼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그냥 모두들 “이모님”이라고 불렀다. 그녀는 조선족이었다. 멀리 연변에서 돈을 벌기 위해 파리에 왔다. 그곳에서 일한 지 1년이 가까워진다고 했다. 이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그녀는 번 돈의 상당 부분을 중국에 유학 중인 대학생 딸의 학비로 보낸다고 했다. 가끔씩 전화 통화를 하며 안부를 묻는다는 모녀. 남편에 대해서는 따로 묻지 않았다. 그녀는 불법 체류자 신분일 가능성이 컸다. 그때 번뜩, 달뜬 여행자들이 모여든 이곳이 마치 이방인들의 집합소처럼 느껴졌다. 여행지의 타자인 여행자들과 한국과 연변과 파리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민박집 주인과 이모님이 있는 곳. 한국어와 연변어가 섞이지 않고 겉돌았다. ‘어떤 특정한 곳에 속하지 않은 사람은 사실 어느 곳으로도 돌아갈 수 없다’는 어느 작가의 말을 떠올리며 그때의 그들을 생각한다. 파리를 생각할 때면 늘 그들의 안부가 궁금하다.

세 번째 방문한 파리 역시 낯설었다.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일까. 조용한 지하철 안에서 힐끗거리며 사람을 훑는 시선들 때문일까. 카페에서 고갯짓과 손짓으로 자리 안내를 해주는 남자가 무례하다고 느껴져서일까. 왜 이들은 이럴 땐 이런 손짓을 할까, 어째서 저럴 땐 저런 표정을 짓는 걸까. 내 손짓을 그는 같은 손짓으로 이해하긴 하는 걸까. 매번 상대방에게 손짓을 하고 있지만 매번 헛손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머쓱해진다. 그나마 귀에 익은 영어가 아니라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의 세계에서 이런 기분은 몇배로 커진다. 이 도시가 짓는 특유의 표정일 텐데 이방인인 내게는 풀 수 없는 암호다. 그런 벽을 느낄 때면 나 자신조차 내가 낯설어진다. 그런데 그 낯설다는 느낌이 아주 자극적이다. 일상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수준의 자극이다. 생각해보면 이 낯섦이 주는 자극을 위해 여행하고 또 여행해온 것도 같다. 내가 아주 낯설어져서 그런 낯섦이 내 안에 딱딱하게 굳은 습관과 관성을 깨뜨려줬음 좋겠다. 산뜻해지고 싶으니까. 계속, 계속.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여행하는 사이에 나도 모르는 순간에 그런 일이 벼락같이 일어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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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신은 런던에 있었다. 레스터 광장에서 하릴없이 서성이고 있을 때였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배우 황정민과 눈이 마주쳤다. 인터뷰를 한 적은 없지만 영화 촬영에 앞서 진행되는 고사 현장에서 몇번 마주쳤던 기억이 있다. 내가 “어, 어” 하며 어리둥절해 인사를 꾸벅했다. 뒤늦은 여름휴가 중이라고 하자, 그의 첫마디. “오 마이 갓!” 자신은 런던한국영화제에서 <국제시장>(2014)이 개막작으로 상영돼 런던을 찾았다고 했다. 행사 시간까지 잠시 틈이 나 내셔널갤러리 인근을 걷고 있었다는데 나와 마주친 것이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기념 사진이나 한판 찍읍시다!” 어깨동무까지 해가며 여행자에게 기념될 순간을 남겨준다. 떠나기 직전 그가 하는 말, “혼자 여행왔다고 했죠? 여기 사람 많잖아. 좋은 만남 많이 갖고 가요! (웃음)”

그의 말이 마법의 주문이라도 됐던 걸까. 황정민 배우와 만났다는 소식을 페이스북에 올린 뒤 사나이픽처스 한재덕 대표의 문자를 받았다. “저도 런던입니다.” <대호>(2014)의 음악 녹음을 위해 런던 애비로드 스튜디오를 찾은 것이다. 무턱대고 들이댔다. 애비로드 스튜디오라는 곳에서 오케스트라 연주를 녹음하는 풍경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내 인생에 언제 또 있을까. 이번에도 운이 좋았다.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녹음했던 스튜디오예요.” 한 대표의 설명을 들으며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섰다. 조영욱 음악감독과 한국, 영국쪽 스탭들이 모여 작업 중이었다. 스튜디오 너머로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이 보인다. “반세기가 훨씬 넘은 역사성을 가진 스튜디오예요. (1931년 11월에 문을 열었다.-편집자) 런던에 있는 에어 스튜디오에 비하면 시설은 조금 아쉬울지 몰라도 그 역사가 대단한 거죠. 믹싱 기술 스탭들도 최고고요.” 모든 걸 신기하게 보고 있는 내게 조영욱 음악감독이 일러준다. “<대호>는 1920년대 조선 최고의 명포수 천만덕과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 ‘대호’를 찾으려는 일본군의 이야기예요. 박훈정 감독이 제게 시대의 아픔을 겪는 민중의 삶을 표현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인물들의 삶을 보다 숭고하게 그려보려고 소년합창단의 노래를 넣을 거예요.” 그는 악보를 살피며 한 마디 연주가 끝날 때마다 섬세한 청음(聽音)으로 악기별 미세한 음의 차를 잡아냈다. 영화에 들이는 누군가의 지극한 공과 시간을 곁에서 지켜보게 된 것만으로도 행운의 여신을 만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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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혜 기자님!” 샤를 드골 공항 검색대 앞에서 누군가가 나를 부른다. 목소리를 좇아 고갯짓을 하다 눈이 마주쳤다. <한여름의 판타지아>(2014)의 장건재 감독이다. 우연한 만남이었다. 그를 이번 파리 여행 중에 한번 만난 적은 있다.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퍼블리시시네마(PublicisCinemas)에서 열린 파리한국영화제에 <한여름의 판타지아>가 상영됐을 때다. 영화를 보고 나와 짧게 몇 마디 주고받고 또 보자는 말을 남긴 게 전부였는데 여기서 다시 만나다니. 그는 런던한국영화제에 참석했다가 파리로 돌아와 출국하려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파리행 비행기도 같았고, 런던에서 파리행 기차도, 한국행 비행기도 모두 같았다. 심지어 이번 여행 때 가지고 온 책의 목록을 이야기하다가 감독은 장강명 작가의 <한국이 싫어서>를, 나는 같은 작가의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을 들고 온 것을 알게 됐다. 놀라운 우연이었다. 비행기 탑승 대기를 하며 각자가 남은 유로화를 탈탈 털어 감독은 맥주 두잔을, 나는 땅콩 두통을 샀다. 이럴 땐 당연히 술 한잔을 하는 게, 옳다.

만석인 비행기의 창가 자리라니. 최악의 좌석이다. 숨이 꽉 막힐 지경일 때 구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커피 한잔 하시지요.” 장건재 감독의 말에 홀린 듯 일어나 기내 주방 칸으로 이동했다. 커피 대신 와인과 초콜릿을 택했다. <한여름의 판타지아>로 여러 영화제를 순회 중인 그에게 이런 유랑이 감독에게는 좋은 기운을 주냐고, 피로감은 없느냐고 물었다. “<회오리 바람>(2009)으로 밴쿠버국제영화제에서 용호상을 받고 스승님으로 모시는 분을 찾아갔어요. 그때 딱 한마디 하시데요. ‘다시 컵라면 먹으며 영화나 만들어!’ 페스티벌 피플이 되는 경우를 종종 봐요. 경계해야죠. 한편으로는 영화제에서 만난 사람들과 인연이 생기죠. 일일이 다 연락처를 받아두고 ‘내가 다음에 연락한다’고 말해요. 전 진짜 연락해요. 한번은 아내인 김우리 PD와 갓 태어난 딸 장우리와 함께 차를 빌려 프랑스 여행을 했죠. 그때 영화제에서 만난 이들에게 전화해서 ‘나 그쪽으로 가는데 하루 신세져도 될까’라고 해서 잠자리를 해결했어요. (웃음)” 5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했지만 신혼집 마련이 어려워 각자 살던 집에서 1년 정도 살며 주말 상봉을 해야했다는 이야기부터 가망 없는 한국에서 계속 살아야 하나 싶어 김 PD와 이민을 진지하게 고민했고, 가라앉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그래도 살아가보자는 결론을 최근에 내렸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줬다. 아이는 대안학교에는 보내지는 않겠지만 대안적인 삶을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도록 교육하고 싶다고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한국이 싫어서>를 읽고 홀딱 반했다고 고백한다. 서로가 최근에 재밌게 본 책과 영화의 목록을 주고받고 글쓰기와 영화 만들기의 즐거움과 어려움을 정신없이 토로했다. 그사이 비행기는 서울로, 서울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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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끝에 나는 예술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한다. 여행하며 느꼈던 지극히 사적인 감정- 타자로서의 낯섦- 때문에 나는 사람들이 과연 서로를 이해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 것인가라며 체념했다. 테러와 폭력이 쉼 없이 계속되고 갈수록 참담해지는 세계 속에서 인간은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을까. 무력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할 때라는 걸 안다. 그런 처참함의 순간에도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고 그림을 보기 위해 미술관 앞을 서성인다. 짧은 순간이지만 작가와 작가가 바라본 세계와 지금의 나와 내가 발붙인 세계가 연결돼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히기 위해서. ‘분명히 존재하지만 명확히 표명될 수 없는 느낌들의 기적적인 교류, 그러니까 어떤 느낌 안에서 두 존재가 만나는 짧은 순간.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지금 너를 사로잡고 있는 느낌을 알 수 있고 그 느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그렇게 느낌의 세계 안에서 우리는 만난다’는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말처럼. 예술과의 우연한 조우로 얻은 위로로 우연한 만남이 주는 안도에 기대어 조금은 힘을 얻어본다. 두 도시가 준 마법의 순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