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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새로운 무협영화 <자객 섭은낭>
이화정 2016-02-03

허우샤오시엔 감독은 <자객 섭은낭>의 원작이 된 소설 <섭은낭>에서 땅을 박차고 날아올라 독수리를 낚아채는 은낭의 에피소드를 뺐다고 한다. 너무 ‘현실적이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는 중화권 감독들이 무협영화에 도전장을 내밀 때 추구하는 것과 정반대의 선택이기도 하다. 리안이 <와호장룡>(2000)에서 무림고수들의 경이로운 움직임을 보여준 것이나, 왕가위가 <일대종사>(2013)에서 화려한 권법 대결 신을 구축한 것과 달리, 허우샤오시엔 감독은 실제로는 고수의 경지에 오른 자객 은낭의 실력을 내보이는 대신 오히려 감추려 한다.

이는 은낭의 내면에서 비롯된다. 은낭은 싸움을 할 수 없는 고수다. 십대에 여도사에게 맡겨져 무술을 수련해 ‘더이상 가르칠 것이 없는’ 최고의 자객이 되었지만, 정작 검을 내리칠 결단의 순간 제동이 걸리는 타입이다. 목표를 상실한 자객이니 어찌보면 세상에서 가장 난처한 자객인데, 이는 그녀가 뜻하지 않게 자객이 된 뒷배경과도 연결된다. 당나라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에 의해 살수로 키워진 그녀는, 고수가 되기를 갈망하는 무술인이 아닌 <비정성시>(1989)를 비롯한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일련의 작품에서와 같이 시대의 풍랑에 희생된 나약한 인간이다. 무협의 세계가 고수들의 각축전이라면, 무협영화는 중화권 감독들에게는 연출자로서 일정 경지에 오를 때 도전하는 하나의 카드이기도 하다. 허우샤오시엔은 영화를 통해 그간 구축한 세계관을 버리지 않고, 무협 장르에서 이를 거침없이 전개해나간다. <자객 섭은낭>이 또 하나의 새로운 무협영화로 각인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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