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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송승언의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 언젠가 <오버워치>도!
송승언(시인) 2016-07-27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제레미 아이언스 주연(실제론 조연이었다)이라는 문구로 광고한 판타지영화 <던전 드래곤>(2000) 개봉 소식에 “보러 가자, 소극장에 개봉하면”이라고 친구와 결의하던 순간을. 그리고 그날이 왔다. 요즘처럼 비가 죽죽 쏟아지는 날이었다. 나는 극장 앞에서 비를 맞으며 서 있었고, 친구는 오지 않았다. 나는 비에 젖은 채 홀로 똥 같은 영화를 보았다. 나름 즐거운 기억이다. 이렇듯 옛날부터 판타지영화를 좋아하던 나로서는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2016, 이하 <워크래프트>)을 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워크래프트>는 게임을 원작으로 한 판타지영화다. 물론 게임에 대한 세간의 시선이 곱지 않듯, 게임 원작 영화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다. 개봉도 하기 전에 로튼토마토에서(<디 워>(2007)보다 낮은) 21점을 받았다며 우려를 표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잘나신 평론가들의 박한 점수는 얼라이언스의 결집력을 더 강하게 할 뿐(야만적인 호드분들을 위해 관객석을 따로 두는 이벤트도 있었다고 한다). 아마 나 같은 충성도 높은 팬들이 있었기에 국내 누적 관객수도 100만명을 넘긴 것이리라.

극장을 나왔으니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솔직히 기대 이상이었다. 물론 똥 같은 영화다. 하지만 손톱 때만큼의 기대감도 주지 않았던 트레일러 영상보다는 훨씬 재미있었다. <더 문>(2009)과 <소스 코드>(2011) 같은 멋진 영화를 만든 덩컨 존스가 왜 이런 허접한 판타지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로 하자. 아마도 그저 돈이 필요했거나, 알려진 대로 그 또한 한명의 충성스러운 ‘와저씨’였을 것이다.

나름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워크래프트> 세계를 영화 한편에 담을 수는 없었기에 영화는 게임으로 치자면 1편에 해당하는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물론 원작과는 적잖은 부분들이 바뀌었다. 아제로스 창세기가 아예 생략되었으며 이에 따라 수호자 메디브의 영혼을 지배한 살게라스의 존재는 언급되지도 않았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메디브가 살게라스 때문이 아니라 ‘지옥 마법’의 남용으로 타락한 것처럼 그려진다. 혹시 이 대목, 스포일러였는가? <워크래프트>를 아는 이들은 이미 아는 줄거리이고, 모르는 이들은 아마도 이 영화를 보지 않을 것이기에 미안하진 않다.

시각적 만족도는 나쁘지 않았다. 게임 오프닝에 나오는 시네마틱 영상을 120분으로 늘려둔 느낌이랄까. 로서와 카드가의 영웅적인 이야기도 충분히 멋졌지만 어쨌든 팬들은 패륜아 아서스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서스의 “썩시딩 유 파더”를 스크린으로 보려면 적어도 3편은 되어야 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충성도를 유지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아직 나오지 않은, 어쩌면 나오지 않을지도 모를 영화를 인생의 영화로 찍어둔 셈이다.

게임의 영화화. 영화 팬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게임 팬들에게는 축제 같은 일이다. 어쨌든 영화는 세계를 재생시켜주는 장르인데, 그건 게임과는 다른 의미에서 ‘리얼한’ 체험이기 때문이다. 검과 마법의 세계가 실제로 눈앞에 펼쳐지는 일에는 흥분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비록 똥 같은 영화라고 해도 말이다. 덧붙여, 블리자드가 영화 제작에도 계속 손을 뻗을 듯한데, 요즘 유행하는 <오버워치>도 언젠가 스크린에서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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