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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긴 추석 연휴를 보내고
주성철 2016-09-16

“민주주의와 실존주의, 그리고 구강성교를 발명했죠.” 애덤 매케이의 <텔라데가 나이트: 리키 바비의 발라드>에서 “당신네 나라가 세상에 내놓은 게 뭐가 있죠?”라는 카레이서 리키 바비(윌 페렐)의 물음에, 경쟁관계에 있는 프랑스인 장 지라르(사샤 바론 코언)가 내놓은 대답이다. 그는 “지구 최고의 나라는 미국이요!”라는 리키 바비의 자부심에 “부시와 시리얼만 빼면!”이라고도 응수한다. 바로 마이클 무어의 신작 다큐멘터리 <다음 침공은 어디?>에서 마이클 무어가 프랑스를 ‘침공’하러 떠나기 전에 삽입된 장면이다. 그는 다큐 속에서 여러 나라를 침공하여 좋은 시스템을 훔쳐오려 한다. 그의 프랑스 침공은 10년 전에도 있었다. 박찬욱 감독이 <올드보이>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고 마이클 무어가 <화씨 9/11>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던 2004년, 프랑스 칸에서 즉석 해변 기자회견을 자처한 그는 “선진국 프랑스에 온 것이 기쁘다”고 말문을 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갔던 칸국제영화제 출장 당시의 일이다.

오랜 친지와 친구를 만나 세상 사는 얘기도 듣고, 사사로운 고부 갈등부터 심각한 명절 노동까지 진지한 대화도 나누고, 그렇게 요즘 저마다의 고충을 들으며 긴 추석 연휴를 보내고 나니 <다음 침공은 어디?>가 보여준 다른 나라의 삶의 질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회사의 이익과 직원의 복지는 충돌하지 않는다’는 이탈리아의 한 CEO, 일급 레스토랑 같은 프랑스 학교 급식, 대학 등록금이 없으니까 대학생이 빚도 없는 슬로베니아, 휴가 중인 직원에게 연락하면 불법인 독일, 정규 교과과정에 ‘시’ 과목이 있을뿐더러 숙제가 없는데도 세계 교육 1위 국가인 핀란드, 직접선거로 세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뽑은 아이슬란드(전세계 여성 정치인들의 활약을 보여주는 모자이크 화면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한명숙 전 총리의 사진도 있다)의 자부심을 보면서 마이클 무어가 앞으로도 대한민국을 침공할 이유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큐의 문제의식은 노동 문제로 시작하여 인종과 여성 문제로까지 확장되는데, 마이클 무어는 아이슬란드는 물론 낙태를 합법화한 튀니지의 사례까지 담는다. 인상적인 대목은 ‘리먼 브러더스가 아니라 리먼 시스터스였다면’ 사태가 그 지경까지 되지는 않았을 거라는 누군가의 얘기였다. 이번호 영화비평 지면에서 송형국 평론가도 <다음 침공은 어디?>에 대해 쓰면서 잘 풀어주었는데, 그것은 단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었고 실제로 마이클 무어는 여성의 DNA로부터 평화와 공존의 실마리를 찾았다. 그런 점에서 여성이 원래 더 우월하다는 것이다. 사실 마이클 무어는 오래전 썼던 책 <멍청한 백인들>에서도 멸종 위기에 처한 백인 남성이 멸종당하지 않기 위해 지켜야 할 10계명을 공표한 적 있다. 그 책에서 가장 압권인 ‘남성의 종말’ 챕터에서, 정확하게 다 기억나지는 않는데 어쨌거나 가장 인상적인 계명이 있었다. 바로 “설치지 마라”.

예상과는 다른 마무리로 흐르긴 했지만, 아무튼 <다음 침공은 어디?>는 연휴 기간 동안 가장 많이 생각난 작품 중 하나였다. 끝으로 2004년의 기억을 하나 더 떠올리자면, 보통 경쟁부문 상영 때 해당 영화의 주제곡이 흘러나오는데 딱히 주제곡이 없는 <화씨 9/11>은 마이클 무어가 레드 카펫을 밟으며 퇴장할 때 존 레넌의 <Imagine>이 흘러나왔다. 유독 연휴가 길어서 그랬는지, 그처럼 오만 가지 생각이 드는 추석 연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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