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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빈 라덴, 이디 아민, 맥라플린, 트럼프 4지선다의 아수라
주성철 2016-11-11

“선거기간 중 내게 신념을 불어넣어준 모든 여성, 특히 젊은 여성들이여. 여러분을 위한 투사가 되는 것보다 더 자랑스러운 일은 없었다는 걸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아직 높고 단단한 유리천장을 깨지 못했다는 걸 압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누군가는 해낼 겁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가까운 미래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연설을 보고 있을 모든 어린 여성들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귀하고 영향력이 있다는 걸 의심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꿈을 좇고 이룰 세상에서 모든 기회와 가능성을 오롯이 누려야 한다는 것 또한 의심하지 마십시오.” 박근혜와 최순실, 그리고 바다 건너 트럼프까지 이어지는 이 세계사적 혼돈의 순간에 힐러리 클린턴의 대선 패배 인정 연설은 그야말로 감동적이었다. 그럼에도 아직 믿기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괜히 떠오르는 영화들만 많았다. 돌이켜보면,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마셰티>(2010)에서 극우보수파 상원의원 맥라플린(로버트 드니로)의 몰락을 보면서 낄낄대던 때가 좋았다. 미국을 망치는 주범이라면서 불법 이민자들을 벌레 취급하며 재선을 노리던 맥라플린은 실제로 현실의 트럼프와 종종 비교됐었다. 그런데 그가 상원의원 정도가 아니라 바로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맥라플린이 아니라 <라스트 킹>(2006)의 우간다 독재자 이디 아민(포레스트 휘태커)을 걱정해야 하는 수준이라고 말하면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까. 물론 이디 아민처럼 국무회의 중에 장관의 뺨을 때려 자신의 가랑이 사이로 기게 하고, 외교사절에게 즉석에서 독사를 회쳐서 내놓으며, 사형당한 시체를 자신이 기르는 악어 밥으로 주는 일을 벌이진 않겠지만, 적어도 ‘돈을 더 찍어서 미국 빚을 갚겠다’는 트럼프의 얘기는 ‘돈이 모자라면 더 찍어라’라고 했던 이디 아민과 꽤 비슷하다. 그냥 나라 안팎으로 불길한 생각만 드는 것이다.

아무튼 힐러리 클린터의 연설을 들으면서 캐스린 비글로의 <제로 다크 서티>(2012)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10여년에 걸친 끈질긴 추적 끝에 오사마 빈 라덴의 은신처를 찾아낸 CIA 요원 마야(제시카 채스테인)로 인해 빈 라덴 암살 작전은 성공한다. 그리고 이후 홀로 비행기 안에 남겨진 마야는 그동안 참았던 울음을 터트린다. 빈 라덴의 은신처를 찾아내기까지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는 가운데 마야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늘 뒷전에 물러나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성공하면 여성의 몫을 지운 채 팀플레이의 결과가 되고, 실패하면 온전히 여성의 지나친 고집과 집착이 빚어낸 일이 됐다. 그런데 그 고집과 집착이 결국 빈 라덴의 은신처를 찾게 했다. 군대와 영화계, 그리고 정치계의 공통점이 바로 지독한 ‘알탕’ 세상이라는 점일 텐데 그 마야의 눈물에서, 오랜 시간 알탕 영화계에서 버티어내며 ‘감독 캐스린 비글로’가 아니라 ‘제임스 카메론의 전 부인’으로 불리는 일이 더 많았던 캐스린 비글로의 집념과 회한을 읽을 수 있었다.(그와 함께 이번호 여성감독 대담도 흥미롭게 읽어주시길!)

힐러리 클린턴의 연설이 준 감동도 그러했다. 그 또한 그날 밤 홀로 남아 마야처럼 깊은 눈물을 쏟아냈을지도 모른다. 참고로 이번호 ‘해외뉴스’에 따르면, <제로 다크 서티>에서 마야를 연기했던 제시카 채스테인은 힐러리 클린턴의 낙선 뒤 연설문 중 ‘소외된 여성의 권익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는 요지의 일부 코멘트를 인스타그램에 게재하며 “당신들을 믿습니다. 나는 평생 당신들을 위해 싸울 겁니다. 당신이 어떤 인종이고 어느 곳에 사는지와 상관없이 당신이 세상 밖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당신이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당신을 지지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진정 아름다운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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