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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터/액트리스] 소녀는 언제나 변신 중 - <네온 데몬> <어바웃 레이> 엘르 패닝
이주현 2016-11-22

<어바웃 레이>

“소녀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쾌활함이래.” <진저 앤 로사>에서 로사(앨리스 잉글러트)가 진저(엘르 패닝)에게 하는 얘기다. 청바지의 물을 빼기 위해 욕조에 몸 담그고 있던 두 소녀 진저와 로사는 이내 속옷에 청바지 물이 밴 것을 확인하고 한바탕 까르르 웃는다. 소녀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쾌활함이므로.

엘르 패닝은 언제나 소녀였다. 밝고 맑은 웃음, 투명한 피부와 긴 금발머리가 트레이드 마크인 소녀. 언니 다코타 패닝과 비교하면 그 소녀성이 더 부각되었다. 성숙한 연기와 조숙한 태도로 일찍이 스타가 된 다코타 패닝은 어려서부터 어른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반면 엘르 패닝은 사랑스러움을 무기로 사람들의 마음을 훔쳤다. 그 사랑스러움은 소피아 코폴라의 <썸웨어>에서 폭발했다. 인형 같은 외모를 한 꼬마 숙녀는 그때부터 더이상 ‘아역’이 아니라 ‘배우’로 대접 받기 시작했고, J. J. 에이브럼스의 블록버스터 <슈퍼 에이트>를 찍은 뒤엔 각종 ‘틴에이지’ 시상식에 이름을 올리며 또래들의 워너비가 되었다. 그 뒤 엘르 패닝은 키가 훌쩍 자랐는데, 얼굴은 아이 같고 키는 성인배우를 능가하는 묘한 불균형이 그녀만의 매력으로 자리잡았다.

수많은 감독들이 엘르 패닝의 활기와 사랑스러움을 영화에 담고자 했다. <진저 앤 로사>는 그녀의 활기와 내면의 불안을 집요한 클로즈업으로 담아낸 영화였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마녀 말레피센트(안젤리나 졸리)의 시점으로 재구성한 디즈니 영화 <말레피센트>는 엘르 패닝의 사랑스러움이 디즈니 공주의 조건에 정확히 부합함을 확인한 작품이었다(시상식 레드 카펫에서 엘르 패닝은 디즈니 공주풍의 드레스를 즐겨 입는다. 레드카펫에서 엘르 패닝의 라이벌은 디즈니 공주들이라는 얘기도 있다).

<말레피센트>의 오로라 공주 이후 엘르 패닝의 아름다움을 적극적으로 소환한 영화는 니콜라스 빈딩 레픈의 <네온 데몬>이다.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네온 데몬>은 스타일이 환상적이라는 호평과 나르시시즘적 영화일 뿐이라는 혹평을 동시에 받은 문제작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니콜라스 빈딩 레픈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단번에 톱 모델이 되면서 질투와 시기를 한몸에 받는 16살 소녀 제시의 이야기를 강렬한 이미지들로 직조한다. 맨발에 맨 얼굴을 하고 있어도 빛나는 여신, 너무 아름다워서 위험하기까지 한 소녀 제시를 엘르 패닝이 연기한다. 니콜라스 빈딩 레픈은 엘르 패닝이 고전적인 스타일과 현대적인 스타일을 모두 갖추고 있는 배우라고 설명한 적 있다. 제시의 아름다움을 언급하는 영화 속 대사들, “어리고 날씬한 것 이상의 특별함이 있다”거나 “무수한 유리 속에서 빛나는 다이아몬드 같다”는 말은 엘르 패닝을 향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또 LA의 허름한 모텔방에서 홀로 생활하며 낯선 사람들의 시선을 겁 없이 받아내는 제시의 모습은 경계심과 호기심을 동시에 품고 있는 새끼 고양이 같다.

연기를 시작한 3살 때부터 끊임없이 관찰하고 관찰당하는 삶을 살았을 엘르 패닝은 더더욱 제시와 동떨어진 인물로 보이지 않는다. 엘르 패닝은 <네온 데몬>이 “어두운 나의 내면과 접속”하게 만든 작품이라고 했다. 절대적 아름다움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이 영화에서 엘르 패닝은 등장할 때마다 시선을 강탈하는 마성의 소녀 그 자체다.

이처럼 엘르 패닝은 언제나 소녀였지만, <어바웃 레이>에서만큼은 소녀이길 거부한다. 삐죽빼죽 짧은 머리를 한 엘르 패닝의 모습은 <네온 데몬>에서의 파격보다 더 파격적이다. 쾌활한 소녀의 미소를 지우고 출연한 <어바웃 레이>에서 그녀는 소녀의 몸으로 태어난 소년 레이를 연기한다. 생일 촛불을 끌 때마다 “남자이고 싶다”고 비는 레이는 성전환 수술을 앞둔 십대다. 드레스가 아닌 헐렁한 바지와 셔츠로 긴 팔다리를 감싸고, 스케이트보드와 쇼트커트와 묵직한 워커와 압박붕대의 조합으로 엘르 패닝은 소년 레이의 외면을 완성한다. 엘르 패닝이 소년의 외면만 흉내내려 했다면 무리한 도전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엘르 패닝 스스로 <어바웃 레이>는 지금껏 맡은 역할 중 어렵기로 손꼽는 작품이라 말한 바 있다. 십대 트랜스젠더의 내면 풍경을 묘사하는 것이 중요한 작품인 만큼 엘르 패닝은 유튜브를 통해 무수한 십대 트랜스젠더들과 소통했다. “어떤 친구들은 내게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털어놓았다. 나는 그들에게 낯선 존재였지만 그들은 나를 받아들였고, 나는 자신감을 가지고 레이가 될 수 있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화장실에 가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연애하고 싶지만 그 모든 것을 쉽게 이룰 수 없는 이들의 마음을 생각하며 연기하려고 노력했다.” 사소한 것에 행복하고 또 사소한 것에 크게 낙담하는 레이의 내면을 엘르 패닝은 스쳐지나가는 짧은 표정 속에 새겨넣는다. 그녀의 연기 내공은 싱글맘으로 출연하는 나오미 와츠와 레즈비언 외할머니로 출연하는 수잔 서랜던과의 앙상블에서도 드러난다. 워낙 어려서부터 쟁쟁한 배우들과 함께한 터라 앙상블 연기에서 자기만의 매력을 잃지 않는 법을 엘르 패닝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영화 한편을 찍고 나면 항상 나 자신이 조금은 성장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특히 <어바웃 레이>를 하면서 더 그랬다.” <네온 데몬>과 <어바웃 레이> 이후 확실히 엘르 패닝은 이전과는 다른 단계에 접어든 것처럼 보인다. <아이 엠 샘>에서 언니 다코타 패닝의 아역으로 연기를 시작한 3살 때부터 쭉 사랑스러운 소녀의 대명사였던 엘르 패닝은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 소년이 되기에 이르렀고, 이제는 진짜 성인이 되려 한다. 한국 나이로 19살.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엘르 패닝은 이제 성인의 문턱에 와 있다.

그전에 엘르 패닝은 존 카메론 미첼이 연출한 <하우 투 토크 투 걸스 앳 파티스>에서 외계인 소녀로 분할 것이고, 하이파 알 만수르의 <어 스톰 인 더 스타즈>에서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작가 메리 셸리가 될 것이다. 또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벤 애플렉의 연출작 <리브 바이 나이트>, 마이크 밀스의 <20세기의 여인들>, 숀 크리스텐슨의 <시드니 홀> 등에도 출연한다. <썸웨어> 이후 소피아 코폴라 감독과도 다시 만난다. 돈 시겔의 작품을 리메이크한 소피아 코폴라의 <매혹당한 사람들>에선 콜린 파렐, 니콜 키드먼, 커스틴 던스트와 함께 출연한다. <말레피센트2>에도 출연할 예정이니, 이쯤 되면 할리우드에서 가장 바쁜 배우 중 한명이 아닌가 싶다. 놀라운 건, 앞서 언급했듯이 그녀가 이제 스무살의 문턱에 와 있다는 사실이다. 소녀티를 벗은 20대의 엘르 패닝은 또 얼마나 흥미로울까. 평범한 동시에 특별한 이 소녀의 미래는 여전히 종잡을 수 없다.

<진저 앤 로사>

위태로운 빨강 머리 소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1945년의 어느 날, 한날 한시에 태어난 진저(엘르 패닝)와 로사(앨리스 잉글러트)는 모든 비밀과 감정을 공유하는 단짝으로 자란다. 러시아와 미국이 핵무기 증강 경쟁을 하는 냉전시대가 도래하면서 진저는 학교 수업보다 냉전 반대 시위에 더 자주 참석한다. 한편 로사는 변치 않는 사랑을 원하고, 로사의 사랑이 결국 둘의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어버린다. <진저 앤 로사>에서 엘르 패닝은 빨간색으로 머리카락을 물들였다. 엘르 패닝의 빨강 머리는 바람에 정신없이 흩날리곤 한다. 머리카락처럼 어지럽게 엉킨 진저의 마음을 카메라는 반복된 클로즈업으로 담아낸다. <진저 앤 로사>는, 동경하는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 애써 강한 척하는 엘르 패닝의 위태로운 표정으로 기억되는 영화다. 강해지고 싶지만 무력한 소녀의 이미지는 이후 <어바웃 레이> 에서도 변형되어 나타난다.

영화 2016 <네온 데몬> 2015 <어바웃 레이> <트럼보> 2014 <로우 다운> <박스트롤> <말레피센트> 2012 <진저 앤 로사> 2011 <트윅스트>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 <슈퍼 에이트> 2010 <썸웨어> 2009 <호두까기인형 3D> 2008 <이상한 나라의 피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2006 <바벨> 2004 <킴 베신져의 바람난 가족> 2001 <아이 엠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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