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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아수라>와 <연애담>의 팬들을 만나다
주성철 2016-12-02

“너무 좀 과한 거 같지 않아요?” <아수라> 시사회를 보고 나온 뒤 일행 중 누군가가 얘기했다. 그러자 또 다른 사람이 얘기했다. “영화 제목이 <아수라>인데 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나 또한 후자에 공감하는 입장이었다. 이런 영화들에 이끌리는 내 세계관이나 영화관을 길게 설명하자면 어떤 영화적 ‘원체험’에 대한 얘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겠지만, 내게 있어 <아수라>는 납득할 만한 흥분과 과잉으로 점철된 최고의 ‘폭력영화’였다. 그리고 그냥 남김없이 다 죽였다. 그렇다고 해서 브로맨스라고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고, 요즘 주고받는 말로 ‘알탕영화’에다 ‘개저비엘’ 영화라는 낙인을 벗어던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홀린 것처럼 영화를 봤다. <연애담>도 마찬가지였다. 함께 뜨거워지고 쓸쓸해졌다가 비참해지고, 역시나 홀린 것처럼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갔다. 이번호 인터뷰에서 이상희 배우가 왕가위의 <해피 투게더> 이야기를 꺼낸 것 또한 흥미로웠다.

바로 이번호에서는 <아수라>의 열혈 팬들인 이른바 ‘아수리언’들과 그에 못지않은 <연애담>의 팬들을 만났다. 두 영화는 그야말로 다르기에 흥미로웠다. 그러고 보니 각각 그들을 만나고 온 김성훈, 정지혜 기자도 서로 참 다르다. 둘 다 허당인데 좀 다른 스타일의 허당이다. 다시, 하지만 근본적으로 경이로운 팬덤 문화라는 측면에서 그 둘의 세계가 다르다고 보지 않는다. 그저 북극곰과 펭귄의 차이라고 본다. 대륙에 붙어 있고 안 있고의 차이 때문에 북극곰은 북극에만 살고, 펭귄은 남극에만 살게 된 것이지만 서로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물론 펭귄이 북극곰보다 추위를 더 잘 견디긴 한다). 그처럼 무언가를 드러내는 사람들은 아름답다. 나는 아수리언이다, 나는 연애담의 팬이다, 좀 다른 얘기지만 그를 확장시켜 나는 페미니스트다, 그렇게 드러내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 같다고 쓰고 있자니 느닷없이 박사모가 떠오른다. 결국 ‘마음’만큼 그 ‘대상’도 중요한 것이다.

<연애담> 기사에서 정지혜 기자가 인용한, 올해 출간된 <팬덤 이해하기>에서 저자 마크 더핏은 마치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라는 영화 카피 같은 느낌으로 ‘우리 모두는 무언가의 팬이다’라고 썼다. 그리고 팬 문화를 ‘이상한 사람들의 유별난 취향’이라 여기면서 ‘팬덤에 깊이 빠져들어 대상에 집착하게 되면, 엽기적이거나 폭력적인 성향을 가지게 된다’는 ‘미끄러운 경사길 논증’(언덕에서 한번 미끄러지면 걷잡을 수 없다는 의미)이 실제 현실과는 큰 관련이 없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역시 정지혜 기자가 인용한 것처럼 “팬들이야말로 역사학자이자 큐레이터”라고 했다. 나 또한 그들이 비평가들 못지않게 중요한 존재들이라 생각한다. 아니, 그들의 대화를 엿보고 있자니 비평가들이 결코 가질 수 없는 눈을 가진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라는 공자의 말이 지금도 돌아다니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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