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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2016 외국영화 베스트5
송경원 2016-12-19

올해의 외국영화 1. 자객 섭은낭

요즘 유행하는 말을 빌리자면 사실상 만장일치나 다름없다. 리스트의 제일 앞줄을 나란히 장식하고 있는 똑같은 이름에 지루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한번쯤 해본 사람이라면 결과에 납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자객 섭은낭>은 “살아서 영화를 보는 기쁨”(김소희)을 주는 영화다. “움직이지 않는 역동성은 로베르 브레송의 최신작을 보는 듯 감탄스럽고, 화려하고 찬란한 순간이 관객 스스로의 내면에서 발견된다는 점 역시 경이롭다.”(이지현) 감히 단언하건대 “영화라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새삼 하게 만드는”(김영진) 이 영화의 성취는 언어로 묘사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아마도 “아름답다”(김태훈)는 모호하고 광범위한 감상이나 “기체도 고체도 아닌 일렁이는 불꽃같은 화면”(송형국) 등의 은유적 묘사가 다수 눈에 띄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자객 섭은낭>의 화면을 언어로 붙들어 매기 위해선 먼 길을 돌아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고요하고 강인한 움직임 속으로 초대해 깊이 침잠시키니 그에 앞서 설명은 무력해”(송효정)지기 때문이다. 바로 그 점이 이 영화의 ‘영화적’ 성취이며 <자객 섭은낭>을 굳이 영화로 만들어야 했던 이유다. 무협의 세계로 들어선 허우샤오시엔은 액션을 내려놓고, 서사를 베어내고, 번잡한 말을 줄인 끝에 협(峽)의 정신을 붙들어 맨다. 요컨대 무협이란 소재에 관계없이 영화는 허우샤오시엔이란 위대한 시네아스트의 호흡으로 발화된다. 가히 “이미지와 도를 한획에 그리는 스크린의 서예”(김혜리)라 할 만하다. “영화의 근본이 움직임이라면 근본으로부터 영화의 새 영역을 탐구하는 영화형식의 성취”(송형국)를 확인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영화역사의 한 페이지를 목격하고 있는 셈이다. “시간이 흐른 뒤 돌이켜보면 이 영화를 동시대에 만났다는 사실이 정말 행운처럼 느껴질 것 같다.”(우혜경)

올해의 외국영화 2. 캐롤

“그저 넋을 놓고 보게 된다.”(이주현) <캐롤>을 설명하는 데 이만큼 적절한 감상평도 없을 것이다. 이 “고혹적이고 섬세한 멜로드라마”에서 두 여성의 감정은 “서스펜스에 가까운 강도로 밀도 높게 전개된다”(이예지). 그렇게 “모든 숨과 짓에 아로새겨진 당신을 향한 사랑의 신호들”(정지혜)을 따라가다 보면 한순간도 시선을 떼지 못하고 한 호흡으로 영화에 스며든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올해 가장 강력한 엔딩이자 강렬한 시선을 선보인 케이트 블란쳇의 얼굴은 그것만으로도 예술이라 부를 만하다. <캐롤>은 “매우 사치스런 외관을 지닌 작품이면서 동시에 강력하게 현실적인 실체를 지닌 작품”(이지현)이다. 관객을 흡인력 있게 끌어들이는 멜로드라마적 뼈대 이외에도 “견고한 남성 중심 사회를 향한 작은 균열, 미세하게 만들어진 그 틈이 의미하는 거대한 가치”(이화정)를 발견할 수 있다. “둘러싸고 있는 것들을 정교하게 묘사함으로써 둘러싸인 것들을 정확하게 표현하는”(송형국) 토드 헤인즈 감독의 연출력과 케이트 블란쳇, 루니 마라 두 주연배우의 아우라는 우아하고 치명적인 결과물을 빚어냈다. 명실상부 “올해 최고의 로맨스영화이자 앞으로 만들어진 여성 주도 영화의 선구자로 기록될 작품”(듀나)이다.

올해의 외국영화 3.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언제나 상식을 말해왔다. 여기에 현란한 기교나 장황한 이야기는 필요치 않다.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만큼만 꺼내어 보여주는 노장의 원숙한 손길이 지금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건 현실이 그만큼 비정상이라는 방증일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에게 도착한 이스트우드의 ‘당연함’은 일그러진 한국 사회에 적지 않는 파장을 일으킨다. “원칙과 최선이 주는 정직한 감동”(송효정), “세월호 역사의 대안으로 받아들였다”(듀나), “세월호를 겪은 한국 사회에 또 한번 선연한 통각을 일깨우는 작품”(이예지), “침몰하는 이 시대를 구조하려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방식의 조언”(이화정),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웅주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영화. 어수선한 올해가 가기 전에 꼭 한번 보고 싶었다”(우혜경) 등 평자들의 지지도 하나같이 이 지점을 향했다.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은 우리가 사회와 시스템에 바라는 지점을 정확히 구현한다는 점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의 한국 사회에서 버티고 있는 대다수 평범한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판타지로 다가온다. 이스트우드는 늘 제자리다. 항상 같은 말을 반복해왔다. 때론 그만큼 믿음직스러운 것도 없다. “어른이 나오는 어른의 영화”(김영진) 앞에 적지 않은 위로와 안타까움이 교차한다.

올해의 외국영화 4. 나, 다니엘 블레이크

켄 로치의 최고는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켄 로치는 언제나 지금 자리에서 최선을 고민하는 감독이다. 영화가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한 그가 걸음을 멈추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그 당연하고 담백한 사실을 다시금 증명하는 영화다. 이 영화가 영화사의 걸작으로 기록되진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호소하는 연대와 건설적인 분노에 화답하는 이들은 분명히 존재하고 켄 로치의 카메라는 그것으로 소명을 다한다. 상식이 지워지고 세상이 점점 더 후퇴하는 것처럼 보여도 켄 로치는 꿋꿋이 손을 내밀고, 이번에도 많은 평자들이 그 손을 잡아주었다. “관객은 켄 로치의 뒤에서 모순된 사회에 함께 분노하고 눈물 흘릴 수”(이지현)도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세상이 변화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심는 영화”(이지현)라는 점이다. “허세 없이 맹렬하게 포착하는 사회적 현실, 이걸 가능하게 하는 원숙함”(김영진)에 힘입어 “우리는 다르지만 하나이고, 약하지만 저항하며, 견고해 보일 뿐 아무것도 지켜주지 못하는 구조들은 파괴되어야 함”(김지미)을 깨닫는다. “제자리걸음만 계속되는 늪, 그 한가운데서 외치는 인간선언”(정지혜)은 그래서 오늘도 유효하다.

올해의 외국영화 5. 다가오는 것들

“‘삶의 지혜를 사랑하라’는 철학적 명령을 삶에 들인다는 것”(정지혜)은 어떤 의미일까. 또 어떤 형태를 띨 수 있을까. 미아 한센 러브 감독의 <다가오는 것들>이 그 해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삶의 전부라 믿고 있던 것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진 자리에 중년의 여성이 바라보는 것은 허무와 절망이 아니라 새롭게 다가오는 것들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다. “버리고 떠나보내야 한다고 말하는 나이 듦에 대한 통렬한 재정의”(김소희)를 시도하는 이 영화는 “냉철하고 아름다운, 담담한 인생예찬”(김혜리)을 들려준다. “서서히 스며드는 삶의 불행이라는 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철학적 탐색”(송효정)이라 해도 좋다. 무엇보다 “생의 어떤 격랑에도 허물어지지 않는 품위에 대하여”(이예지) 읊조리는 영화의 담담하고 사려 깊은 태도가 평자들의 한결같은 지지를 이끌어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건 상당 부분 배우 이자벨 위페르의 공이다. “이자벨 위페르, 나이 듦에 대한 담담한 묘사”(듀나)는 그 자체로 영화를 완성시키는 결정적 요소다. 이러한 배우의 독보적인 존재감을 살릴 줄 아는 미아 한센 러브의 성숙한 연출도 믿음이 간다. “유럽영화 전통의 섬세한 저력을 실감”(김영진)할 수 있는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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