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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낸 배우들②] <군함도> 윤대열 - 기회를 믿었다, 나를 믿었다
이주현 사진 최성열 2017-08-07

“어제 <공작> 쫑파티가 있었다. 사람들한테 <씨네21>과 인터뷰한다 했더니 성공했다더라. 이런 날이 내게도 오다니. 울어도 되나?” 생애 첫 인터뷰. 윤대열의 얼굴엔 웃음이 만개했다. 웃을 때마다 기분 좋은 곡선을 그리던 깊은 주름, 명암이 분명한 굴곡진 얼굴은 배우 윤대열의 훌륭한 무기 중 하나다. “김성수 감독님이 그러셨다. ‘넌 내가 좋아하는 얼굴이야.’ (웃음) 어릴 땐 얼굴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문제아 취급을 당했는데 연기를 하면서 내 얼굴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생겨 행복하다.” <군도: 민란의 시대> <검사외전> <아수라> <공작>까지 사나이픽처스의 작품만 4편을 찍었으니 사나이픽처스가 좋아하는 얼굴인 건 분명하다.

<군함도>에선 일본인 포주 역에 맞게끔 얼굴을 만들어나갔다. 윤대열은 노트 한권을 들고 왔는데, 그 노트엔 <군함도>의 캐릭터 준비 과정이 글과 사진으로 빼곡히 정리돼 있었다. “일본의 시대극과 야쿠자영화들을 찾아보면서 유곽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야쿠자의 얼굴이 어떤 느낌인지 익혔다.” 이미지 훈련에 앞서 일본어 학원도 다녔다. “옛날 말투를 물어볼 수 있게끔 나이 지긋한 남자 선생님이 있는 학원만 다녔다”니 여간 꼼꼼히 준비한 게 아니다. 사실 윤대열은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했다. 20대 땐 일본에서 1년 넘게 살기도 했다. 신문 배달, 웨이터, 호텔 청소 등을 하면서 돈을 벌었고 “한국에 가면 다시는 노가다 하지 말자, 굶어 죽더라도 꿈을 위해 달려가자, 배우가 되자”는 마음으로 짐을 싸서 귀국했다. <군함도>의 오디션이 떴을 때 “분명 내게 기회가 올 것”이란 예감이 들었던 것도 스스로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군함도>는 윤대열이 가진 것을 펼쳐 보이기에 좋은 작품이었고, <아수라>의 김성수 감독과 (<군함도>의 촬영감독이기도 한) 이모개 촬영감독의 추천은 그를 더 “목숨 걸고” 준비하게 만들었다.

윤대열은 기회가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만드는 거라고 믿는 사람이다. 조선족 청부살인업자 리병천으로 출연한 <아수라>를 준비할 땐 대림역 주변을 두달동안 돌아다니며 연변 욕을 수집했다. <검사외전> 땐 교도소 내 재욱(황정민)의 무리 중 한명으로 짧게 출연했는데, 머리를 밀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자진해 머리를 밀었다. “황정민 선배님이 ‘이거 때문에 머리 밀었냐?’고 하시면서 옆에 앉으라 했는데 그날 촬영장에 놀러오신 김성수 감독님이 나를 보고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는지 오디션 프로필을 받아가셨다.” 그렇게 이어진 기회와 인연을 윤대열은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야간고등학교를 다니며 낮에는 방직공장에서 일했던 10대, 한국과 일본에서 육체노동을 하며 돈을 벌었던 20대, 그리고 배우의 꿈을 이룬 30대의 현재. 윤대열은 연기를 할 수 있어 행복하다. <범죄도시> <7호실> <자전차왕 엄복동> <침묵>까지 “단타”이긴 하지만 차기작도 꽤 된다. 앞으로는 더 행복한 일만 남았다.

<아수라>의 이 장면

“<아수라>의 장례식 장면에 원래는 리병천의 도끼 신이 없었다. 그런데 왠지 도끼 신이 생길 것 같아서 캐스팅된 다음부터 가방에 도끼를 넣고 다녔다. (웃음) 혼자는 무서우니 조카와 함께 자정에 산에 올라 도끼 휘두르는 연습도 했다. 결국 기회가 왔다. 김성수 감독님이 갑자기 도끼 신을 준비시켰는데,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앞에 있는 상황이었으니 심장이 벌렁거릴 수밖에.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처절한 액션 신에 앞서 도끼를 들고 씩 웃었다. 나까지 인상을 쓰는 건 아닌 것 같았고, 웃어서 혼나면 안 웃으면 되니까. 그렇게 두근두근한 상태로 촬영을 마쳤는데 사람들이 좋아해주더라.”

영화 2017 <군함도> <박열> 2016 <미씽: 사라진 여자> <아수라> 2015 <검사외전> <오빠생각> <암살> <손님> <악의 연대기> 2014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 <맨홀> <군도: 민란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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