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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캔 스피크> 이제훈 - 앙상블 연기의 즐거움
임수연 사진 백종헌 2017-09-12

최근의 이제훈은 그와 함께한 배우들이 관객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현장을 보좌한다.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2016), <박열>(2017)에 이어 <아이 캔 스피크>까지 충무로에서 드물게 여배우들과 호흡을 맞추고 그들의 눈부신 순간을 옆에서 응원하고 있다. <아이 캔 스피크>에서 그는 명진구청 직원들에게 문제적 인물이라 불리던 옥분(나문희)에게 원리 원칙을 내세우며 꼼짝 못하게 하는 9급 공무원 박민재를 연기한다. <파수꾼>(2010)으로 영화인들과 관객에게 이제훈이 눈도장을 찍을 무렵, 이 배우가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게 될지 많은 이들이 궁금해했으리라. 이제훈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은, 유망한 젊은 배우가 고민 끝에 찾아나간 어떤 길 중 하나다.

-영화를 공동제작한 심재명 명필름 대표의 설득으로 <아이 캔 스피크>를 함께하게 됐다고.

=<건축학개론>(2012)을 함께하며 인연을 맺었다. ‘민재라는 캐릭터를 잘해낼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을 대하는 태도나 자세가 영화의 톤 앤드 매너와 잘 어울릴 것’이라며 적극적으로 추천해주셨다.

-나문희가 연기하는 상대 캐릭터가 워낙 센 데다 민재의 설정 자체가 연기할 때 특징을 잡기 은근히 어려웠을 것 같다.

=민재를 준비하면서 외양적인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다. 딱 봤을 때 만만치 않고 깐깐한 외골수 같은 이미지를 줘야 하니까. 영화에서 쓴 안경은 6~7년 전에 그냥 개인적으로 직접 구입한 것이다. 쓰고 다니지도 않은 안경이었는데, 마치 이 영화를 위해 미리 구입하고 묵혀뒀던 것처럼 번뜩 생각이 나더라. 상업영화에서 멋지고 여심을 사로잡을 수 있는 비주얼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웃음) 일부러 머리도 5 대 5로 했다.

-사실 <아이 캔 스피크>는 나문희 선생님이 가슴에 많이 남는 작품이다. <박열>은 신예 최희서의 발견이라는 평이 많았다. 두 영화 모두 상대배우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상황이 시나리오에서부터 예견됐을 텐데.

=제대 후 사람들이 이제훈이라는 배우에 기대를 할수록 스스로 책임져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그 부분을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는, 작품 자체의 의의를 첫 번째로 두는 거다. 스스로를 뽐내고 싶은 역할로 접근하면 결과물이 나왔을 때 전체적인 그림이 흐트러지게 되는 것 같더라. 내가 배우로서 존재감을 보여주고,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연기를 하는 것도 끌리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시간이 지난 후 사람들에게 작품이 어떤 평가를 받느냐다. 또한 연기에 있어 앙상블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돋보이기 위해 주변 사람들이 날 받쳐주는 것보다 상대와 만나서 서로 잘 어우러지면서 상대배우가 돋보이게 하고픈 욕심이 오히려 더 생겼다.

-하지만 데뷔 당시에는 <파수꾼> 주연배우 중 가장 많은 찬사를 받고 <고지전>(2011)에서 선배 배우보다도 돋보였다는 평을 받으며 눈도장을 찍었다.

=브래드 피트, 조지 클루니의 행보를 지켜보며 내가 그들을 좋아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스타들도 어떤 작품에 자신이 뭔가 할 수 있다면 비중에 관계없이 출연하지 않나. 무조건 1번 롤로만, 주연으로만 가는 것은 오히려 매력이 없는 것 같다. 앞으로도 그런 선택을 계속했으면 하는 바람이고.

-흥미롭게도 <박열> <아이 캔 스피크> 모두 한국영화에서 흔치 않게 여배우가 빛나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여배우가 돋보이는 영화가 많지 않다는 문제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일부러 많이 찾아보기도 했다. 여성 캐릭터가 돋보이는 영화가 풍부해져야 관객에게도 선택권이 다양해지고 많은 문화적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나 역시 여성들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할 수 있게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일조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당신이 속한 사람엔터테인먼트와 <씨네21>, 그리고 경기콘텐츠진흥원이 얼마 전 열었던 다양성영화 신인배우 발굴 프로젝트에서 선발된 배우 문동혁이 “또래 배우들 모두 <파수꾼>을 연기해보았을 것”이란 말을 하며 롤모델로 꼽았더라. <삼시세끼-바다목장편>의 윤균상도 <파수꾼>을 20~30번 봤다고 고백했다.

=부끄러운 마음도 있고, 젊은 배우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사람으로 잘 나아가고 있나 상기하게 된다. <파수꾼>은 나에게 장편영화 첫 주연작이자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연기를 윤성현 감독이 꺼내준 작품이다. 그래서 오히려 그 이후에는 <파수꾼>에서 잘해냈던 연기를 감추려고 했던 것 같다. 원래 부족하거나 아직 보여주지 못한 연기를 해내려고 했다. 한편으로는 내가 가장 잘했던 그 연기를 언젠가 다시 보여줄 기회를 노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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