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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회 도쿄국제영화제 ① ~ ③
글·사진 임수연 2017-11-08

변혁의 일본영화, 아시아 영화산업의 새로운 바람

일본영화의 뮤즈로 선정된 안도 사쿠라, 아오이 유우, 미쓰시마 히카리, 미야자키 아오이(왼쪽부터).(©2017 TIFF)

30주년을 맞은 도쿄국제영화제에 불청객이 찾아왔다. 지난 주말 태풍 사올라가 도쿄 한복판에 상륙한 것이다. 하지만 비가 쏟아지고 강풍이 몰아치는 궂은 날씨에도 영화제가 열리는 롯폰기 힐스 일대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개성 있는 코스튬을 입은 시민들이 밤낮없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핼러윈 시즌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올해 영화제가 새로운 사람의 ‘유입’을 겨냥한 축제의 분위기를 띤 이유가 크다. 올해 도쿄는 일본·중국 합작을 개막식에서 대대적으로 공개했고, 특별히 동남아시아권 영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주요 부문에 대중적인 작법으로 만든 상업영화를 내세웠고, 젊은 인기배우들을 한데 모아 특별전을 열었다. 지난 10월 25일부터 11월 3일까지 롯폰기 힐스에서 열린 제30회 도쿄국제영화제의 이모저모를 전한다.

<강철의 연금술사>

20년 전 도쿄국제영화제는 <타이타닉>(1997)을 인터내셔널 프리미어로 상영했고 제임스 카메론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레드카펫을 밟았다. 개봉 시기에 반년 정도 시차가 있었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할리우드영화가 일본과 미국에서 거의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다. 아시아의 영화제를 통해 굳이 프로모션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몇년 전만해도 <소셜 네트워크>(2010)나 <빅 히어로>(2014) 같은 영화가 도쿄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지만 올해 개막작은 일본의 인기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의 실사판이었다. 지난 4월 새로 부임한 히사마쓰 다케오 집행위원장이 외신 기자들과의 인터뷰 자리에서 언급했듯 “일본 박스오피스에서 70%를 차지하던 할리우드영화가 최근에는 50% 혹은 그 이하로 떨어졌다”는 것도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스타를 초청하기 위해 드는 비용은 영화제에 점점 더 부담이 되고, 그 결과 할리우드의 이른바 ‘큰 작품’을 영화제에 초청하는 일은 어려워졌다.

대신 영화제는 최근 몇년에 걸쳐 자국의 콘텐츠를 더 홍보하고 아시아의 협력을 강조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기 시작했다. 제30회 도쿄국제영화제 개막식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일본영화의 뮤즈들’이 된 네 배우가 함께 무대에 오른 순간이었다. 1985년생으로 동갑인 아오이 유우, 미야자키 아오이, 미쓰시마 히카리, 그리고 안도 사쿠라가 ‘JAPAN NOW 섹션’의 배우 특별전 ‘일본영화의 뮤즈들’로 영화제에 초청됐다. 배우당 2편씩 총 8편의 대표작을 상영하고, 모두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한명으로 특별전을 기획할 수 있을 만큼 경력이 쌓인 배우 대신, 새로운 세대라 할 수 있는 젊은 얼굴에 주목한 것이다. 이들은 영화제가 아니면 한데 모인 모습을 보기 힘들 만큼 지금 가장 바쁜 스타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 및 영화 20주년 기념으로 피카츄와 미미큐가 개막식 레드카펫에 참석했다. <포켓몬스터> 시리즈는 영화제 피크라 할 수 있는 주말 오후 롯폰기 힐스 아레나에서 특별 무대를 가지기도 했다. 올해 감독전이 열린 하라 게이이치는 한국을 포함한 해외에서 인지도가 높지는 않지만, <짱구는 못말려>의 극장판과 <갓파 쿠와 여름방학을>(2007), <컬러풀>(2010) 등 대중적이면서 완성도가 높은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왔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일본의 유능한 감독을 전세계에 알리는 것이 영화제의 역할 중 하나”라고 강조한 히사마쓰 다케오 집행위원장의 설명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한편 일본국제교류기금(재팬 파운데이션) 아시아 센터가 아시아 지역의 새롭고 신선한 작품을 소개하고자 만들었던 ‘크로스컷 아시아’는 올해로 4회를 맞았다. 타이, 필리핀, 인도네시아의 영화를 각각 소개했던 이 부문은 올해는 아세안(ASEAN)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동남 아시아권 전체로 그 대상을 확대했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추천을 받은 <그 다음 해 4년, 불이 났다>(2012)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온 9편의 작품과 캄보디아에서 온 4편의 단편이 특별히 소개됐다. 한편 개막식에서 일본·중국 합작인 첸카이거 감독의 <레전드 오브 더 데몬 캣>의 영상이 10분가량 공개됐고, 다음날 오전에는 일본·중국 영화 교류 프로그램에 관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할리우드영화에 대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있는 일본이 점차 세계영화계에서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중국과의 관계에 보다 힘을 싣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히사마쓰 다케오 집행위원장은 중국의 성장에 대해 “영화산업에서 힘의 균형점이 옮겨지고 있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제멋대로 떨고 있으라지>

대중성이 강화되다

올해 도쿄국제영화제는 개막작부터 경쟁부문에 이르기까지 예년보다 대중성을 강조한 작품을 내세웠다. 개막작 <강철의 연금술사>는 원작 팬은 물론 기존 시리즈를 보지 않은 사람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형 에드와 동생 알이 갑자기 죽은 어머니를 되살리기 위해 위험한 연성술을 시도했다가 에드는 다리를 잃고 알은 육체를 잃게 된다는 초반 줄거리를 짧고 굵게 보여준 뒤 영화판 오리지널 스토리를 채워넣었다. 에드는 등가교환의 법칙에 지배받지 않는 ‘현자의 돌’이 동생의 육체를 돌려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현자의 돌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에드는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된다. 죽음을 무릅쓸 만큼 동생을 아끼는 에드의 형제애를 설득하기에는 2시간 좀 넘는 러닝타임이 벅찬 감이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 빌런 역할을 하는 호문쿨루스(연금술로 만든 인조인간)의 다양한 능력은 거의 <엑스맨> 시리즈를 연상시키며 오락영화로서 일정 수준 역할을 한다. 연금술을 이용한 스펙터클한 결투 장면이 많기 때문에 완성도 높은 특수효과가 요구된다. <타이타닉>의 시각특수효과에 참여했던 소리 후미히코 감독은 이를 꽤 매끄럽게 해냈다. 워너브러더스가 배급하고 오는 12월 일본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프로그래머들에게 예술성과 재미를 고르게 갖춘 후보를 선정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히사마쓰 다케오 집행위원장의 말은 경쟁부문에서 상영된 2편의 일본영화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모두 소설을 원작으로 하지만, 그 스타일은 양극단에 서 있다. <최저>는 AV 배우 출신 사크라 마나가 쓴 동명의 소설을 각색했다. “내 질은 철처럼 튼튼하다”고 말하며 AV 배우로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아야노는 어머니에게 자신이 하는 일을 들키고 만다. 결혼한 지 5년이 됐지만 아이는 없고 남편과 침대를 따로 쓰는 미호는 우연히 그가 보던 AV를 발견한다. 그리고 호기심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마음으로 AV 배우에 지원하는 프로필 사진을 찍는다. 미술을 하는 고등학생 아야코는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을 낳기 전 AV 배우로 활동했다는 사실이 학교에 퍼지면서 괴롭힘을 당한다. AV라는 특수한 세계가 자신의 삶과 유관한 이들이 겪는 관계의 부침, 그리고 여성의 심리를 상당히 건조하게 담아냈다. 한때 AV 배우였던 여성이 고등학생 딸을 둘 수 있을 만큼 일본에서 AV의 역사는 오래됐다. 때문에 AV가 다양한 가족 갈등을 담아낼 수 있다는 독창적인 아이디어는 <최저>의 가장 큰 성취다. <최저>를 연출한 제제 다카히사 감독은 90년대 이른바 핑크 무비를 활발하게 제작한 경력이 있다. 하지만 영화는 선정적인 느낌을 최대한 덜어내며 정사 장면을 연출한다.

<아이스크림과 빗소리>

<제멋대로 떨고 있으라지>는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의 와타야 리사가 2010년 출간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요시카는 한번도 남자를 사귀어본 적이 없다. 학창 시절에는 좀처럼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홀로 만화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그가 학생일 때부터 남몰래 10년이나 좋아했던 동급생 이치(이치하라의 애칭이다. ‘이치’는 일본어로 1을 의미한다)와, 현재 다니는 회사에서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니(‘이치’에 대응하는 의미로 요시카가 연락처에 저장한 이름. 일본어로 2를 의미한다) 사이에서 고민한다. 이치가 요시카에게 ‘타고난 왕자님’으로 인식되는 이상향이라면, 니의 저돌적인 구애는 너무 지질해서 종종 부담스럽다.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와 자신을 좋아해주는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성의 심리를 그린 밝고 경쾌한 로맨틱 코미디지만, 한 여성이 타인과 소통하는 법을 배워가는 성장담이기도 하다. 지루할 틈 없이 빠른 호흡으로 전개되는 가운데 뮤지컬영화의 요소를 섞는 등 감독의 개성이 녹아 있다.

한편 일본의 젊고 도전적인 인디영화를 만날 수 있는 ‘재패니즈 시네마 스플래시’ 부문에는 형식적으로 독특한 작품들이 눈에 띈다. 마쓰이 다이고 감독의 <아이스크림과 빗소리>는 74분 러닝타임을 단 하나의 숏으로 구성했다. 이케다 아키라 감독의 <수상쩍은 곳>은 최소한의 표정과 대사만으로 황당한 웃음을 만드는 코미디영화다. 마치 꿈처럼 비논리적으로 전개되는 각각의 챕터들이 조금씩 연결고리를 가지며 전체를 완성하는 형식이 눈에 띈다.

아야세 하루카를 비롯한 의 <정령의 수호자>의 주연배우들이 티프콤 파티에 참석해 건배를 외치고 있다.

오리지널 각본보다는 원 소스 멀티 유징

도쿄국제영화제보다 이틀 앞선 10월 24일부터 26일까지 이케부쿠로 선샤인시티 컨벤션센터와 시부야 엑셀호텔 도큐에서 ‘일본 콘텐트 쇼케이스 2017’(Japan Content Showcase 2017, JSC 2017)이 열렸다. JCS는 영화, TV, 애니메이션, 음악 등 모든 분야의 콘텐츠를 아우르는 행사로, 이케부쿠로에서 열린 티프콤(TIFFCOM)이 영화 및 TV 부문에 해당한다. 지난해의 오다이바에서 이케부쿠로로 장소를 옮긴 것에 대해 티프콤의 야마다 유코 매니저는 “가장 큰 이유는 마켓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서다. 부스 전시와 각종 이벤트를 열 공간을 더 확보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케부쿠로가 위치한 도시마시는 예술과 문화 행사를 열기에 아주 열정적인 도시다.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까지 시네마 복합공간과 극장도 완공될 예정”이라는 장기적인 이유도 언급했다.

티프콤이 열리는 이케부쿠로 선샤인시티에서 거래 당사자들이 만남을 갖고 있다.

티프콤은 부산의 아시안 필름마켓, 샌타모니카의 아메리카 필름마켓, 그리고 프랑스 칸에서 열리는 영상 방송 콘텐츠 박람회 MIPCOM과 인접한 시기에 개최된다. 뿐만 아니라 유럽권 필름마켓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간이 짧다. 바이어와 회사간 확실한 계약을 유도하기 위해 티프콤이 상대적으로 가진 우위를 묻자, 야마다 유코 매니저는 “영화와 TV, 그리고 애니메이션 마켓에 해당하는 TIAF가 모두 한 공간에 모여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것은 애니메이션이 극장판으로 제작되어 인기를 모으고, 인기배우가 출연하는 TV 시리즈로 각색되며, 궁극적으로 실사화 영화로까지 이어지는 일본의 콘텐츠 제작 경향에 부합한다.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강력한 원 소스 멀티 유징(One Source Multi Using, OSMU) 원천 콘텐츠의 중요성은 해가 갈수록 강조되고 있다. 마블 코믹스 원작 영화가 10년 가까이 박스오피스를 지배하는 분위기는 티프콤에 호재가 될 수 있다. 바이어들은 영화 관련 부스를 둘러보다 자연스럽게 세계 각국의 방송 콘텐츠 및 애니메이션을 접하며 다른 플랫폼의 원천 콘텐츠를 접할 수 있다.

한편 최근 몇년간 JCS에서 지적재산권(IP)에 대해 비즈니스 협상을 하는 사례가 많다. 특히 소설의 각색물이 많은 상황에서, JCS는 아예 ‘Book Adaptation’이라는 마크를 만들어 부스에 붙일 수 있게끔 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일본의 <TBS> 부스 앞. 일본의 티프콤은 영화와 TV 세일즈가 한데 모여 다양한 바이어와 미팅을 가질 수 있다.

플랫폼간 경계가 희미한 티프콤의 특성은 관계자를 위해 열린 파티에서도 유효했다. 24일 이케부쿠로 선샤인시티 내 크루즈 크루즈 레스토랑에서 마켓 참가자와 프레스를 위해 <NHK>가 특별한 자리를 마련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영화·TV 관계자들이 와인과 안주, 58층 높이에서 감상할 수 있는 도쿄의 야경을 즐길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자리에는 곧 방송 예정인 <NHK>의 <정령의 수호자> 시즌3의 아야세 하루카를 비롯한 주연배우들이 참석해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레스토랑 곳곳에서 드라마를 홍보하는 영상을 상영했다. 소설에서 애니메이션, 실사 드라마로 플랫폼을 확장해간 <정령의 수호자> 시리즈가 세계 각국 영화 관계자에게도 눈도장을 찍는 기회였다.

도쿄국제영화제가 30주년을 맞이하는 동안 영화 내외적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일본의 할리우드 의존도는 낮아지고, 대신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중국이 할리우드 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오리지널 각본보다는 만화·소설·드라마 등 다른 분야에서 여러 플랫폼에 적용 가능한 콘텐츠를 찾는 기획은 앞으로도 더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도쿄국제영화제 역시 새 집행위원장의 부임과 함께 많은 변화를 겪고 있었다. 올해 도쿄가 보여준 색깔은 영화제는 물론 일본영화계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중요한 단서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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