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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시상식⑨] 키워드로 보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임수연 2018-03-05

‘깨어난 욕망’ 삼부작 최종편

1983년 이탈리아 북쪽 어느 마을, 지적 욕망과 연애에 대한 호기심을 적당히 갖고 있는 17살 소년 엘리오(티모시 샬라메)는 아버지의 연구를 돕기 위해 여름방학에 인턴으로 마을에 온 24살 미국 청년 올리버(아미 해머)와 짧지만 강렬한 사랑을 나눈다. 소년의 퀴어 로맨스를 다룬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아이 엠 러브>(2009), <비거 스플래쉬>(2015)로 이어지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작품으로, 특유의 지적이고 에로틱한 분위기가 여전히 녹아 있다. 여기에 신예 티모시 샬라메의 신선한 마스크와 연기가 예상치 못한 변주를 준다. 영화제의 사랑을 받음과 동시에 텀블러 등의 플랫폼에서 엄청난 마니아들을 생산해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를 키워드 중심으로 풀어봤다.

소설 <그해, 여름 손님>

“이 소설은 정말 섹시하다. 성장, 커밍아웃, 시간에 대한 프루스트풍의 명상과 욕망, 러브 레터, 기도문, 그리고 묘비명 같은 것이 있다.” <뉴욕타임스>는 2007년 발간된 안드레 애치먼의 처녀작 <그해, 여름 손님>(Call Me by Your Name>)에 이와 같은 평을 내렸다. 하나로 뭉쳐지지 않을 것 같은 불균질한 요소들이 매력적으로 융합된 소설에 감명을 받은 피터 스피어스 프로듀서와 하워드 로젠만 프로듀서는 2008년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제작에 합류했다. 실제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바쁜 일정, 그리고 ‘여름’에 촬영해야만 한다는 제약 조건 때문이었다. 제작자들의 꾸준한 노력 끝에 <하워드 엔즈>(1992), <남아 있는 나날>(1993)의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이 2014년 시나리오 각색과 프로듀서로 합류했고, 2016년 이 이야기를 가장 잘 구현해낼 수 있을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과도 일정을 맞출 수 있었다.

각색 과정에서 원작과 달라진 점이 있다. 제임스 아이보리 각본가는 “소설에서의 아버지는 고전 문헌 학자지만, 생각하고 글쓰는 것을 카메라에 담기는 어렵다. 그래서 역사·고고학자로 전공을 바꾸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엘리오가 과거의 일을 회고하는 구조였던 소설의 형식을, 엘리오의 현재 시점 이야기로 바꾸었다. 내레이션 및 대사의 양도 대폭 줄어들었다. 주인공 엘리오의 아버지를 연기한 배우 마이클 스털버그는 “이 영화는 이면에 있는 것을 위한 작품이다. 그냥 보기만 해도 많은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티모시 샬라메

티모시 샬라메는 지난해 할리우드 최고의 라이징 스타였다. 21살에 만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무려 25개의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그가 가진 신선한 비주얼에 환호했다. 키 196cm에 웬만한 운동선수보다 단단한 신체를 가진 아미 해머와 함께 있을 때 더욱 부각되는 깡마른 몸과 어딘가 불안한 눈빛은 소년의 예민함과 치기, 그리고 에로티시즘을 원작 소설보다도 형형하게 구현했다. <인터스텔라>(2014)에서 15살의 톰을 연기하며 할리우드에 입문한 이후 한동안 오디션에서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신인이, 자신이 가진 이미지를 가장 매력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난 것이다. 또한 이미 프랑스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프랑스어를 구사할 수 있던 그에게 영화는 이탈리아어와 악기 능력까지 기르게 해줬다.

컬럼비아대학에서 공부했다는 지적인 이미지에, <엘렌 드제너러스 쇼>에 나와 통계학을 주제로 한 랩을 재치 있게 선보이고, 과거에 마돈나의 딸과의 연애로 가십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등 그는 또래의 할리우드 스타 같은 면모도 갖고 있다. 차기작을 함께한 우디 앨런 감독의 놀란에 대해 애매한 발언을 한 것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에 “좋은 역할이 작품을 선택하는 유일한 기준이 아님을 배우고 있다”며 출연료를 전액 기부하겠다는 글을 올리는 등 미투 운동 시대의 배우에게 필요한 태도도 배워가고 있다.

이탈리아

햇빛이 너무 뜨거워서 옷을 거의 입지 않는 이탈리아의 조용한 마을이 아니었다면, 엘리오와 올리버가 짧지만 그렇기에 더 정열적인 사랑에 빠질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이 들 만큼 이탈리아라는 배경이 주는 느낌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동명의 원작 소설은 이탈리아 리비에라 지역 리구리아주를 배경으로 삼지만,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자신이 사는 롬바르디아의 크레마에서 영화를 촬영했다. 감독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지역인 만큼, 아들 엘리오에게 고급 교양을 심어주려는 부모의 특성이나 자유로운 마을의 분위기를 잘 구현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촬영 분량이 가장 많았던 티모시 샬라메는 촬영 시작 5주 전부터 마을을 찾아, 이곳에서 직접 이탈리아어와 피아노, 기타 수업을 들었다. 이미 피아노와 기타에 능숙했던 그지만, 취미로 작곡까지 하는 캐릭터의 특성상 추가적인 트레이닝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아미 해머가 마을에 합류한 이후에는 가급적 이 마을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본격적인 로맨스 연기를 준비했다.

수프얀 스티븐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소설이 원작임에도 불구하고 대사와 내레이션의 역할이 크지 않다. 대신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두 배우의 눈빛, 그리고 수프얀 스티븐스의 오리지널 음악이다. 기존에 있는 음악을 쓰는 대신 오리지널 스코어를 만들고 싶었던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평소 좋아하는 싱어송라이터 수프얀 스티븐스에게 곡 작업을 요청했다. 엘리오와 올리버가 버스에 올라탔을 때 흘러나오는 <Mystery of Love>, 그리고 엔딩 크레딧에서 흘러나오는 <Visions of Gideon>은 원작 소설을 읽은 후 수프얀 스티븐스가 이 영화를 위해 새로 만든 곡이다. 그외에도 엘리오가 바흐의 <Capriccio on the Departure of his Beloved Brother>를 피아노로 연주한다거나, 1983년 이탈리아라는 배경을 살려 당시의 인기곡을 자동차의 라디오를 통해 들려주는 등 다양한 음악이 영화에서 활용된다.

루카 구아다니노

<아이 엠 러브>부터 <비거 스플래쉬>까지, 루카 구아다니노의 영화 속 인물들은 항상 무언가에 대한 욕망을 자각하고 탐한다. 가벼운 신체 접촉의 순간을 웬만한 정사 장면보다 긴장감 있게 보여주는데, 복숭아를 이용한 노골적인 성적 판타지 장면이 포함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역시 같은 계보에 있다. 여름방학이라는 시간적 제한이 있는 만큼 엘리오와 올리버의 미래 역시 전작처럼 완벽한 해피엔딩이 될 수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지만, 비극의 무게가 주인공을 짓누르지는 않는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깨어난 욕망’ 삼부작의 마지막이라고 밝혔다. “누군가를 순수하게 사랑할 때 우리가 얼마나 많이 바뀌게 되는지에 대해 깨달아가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그 여정을 마무리한 것은, 인간의 욕망을 꾸준히 탐색해온 그가 찾아낸 작은 희망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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