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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시상식①] #포스트_웨인스타인 #metoo #트럼프 #여성영화인들
장영엽 2018-03-05

성범죄 의혹 영화인 참여작 후보 지명 제외… 수작 많아 결과 점치기 어려운 가운데, ‘트럼프 시대의 미국’ 다룬 작품 많아

캐스린 비글로 이후 8년 만에 감독상 후보에 오른 여성, 그레타 거윅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자들에게 신보다 더 많이 언급된 남자.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에게는 늘 이런 수식어가 붙어다녔다. 하지만 2018년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웨인스타인의 이름은 더이상 호명되지 않을 것이다. 2019년에도, 2020년에도, 그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지난 2017년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범죄를 폭로한 <뉴욕타임스>의 보도는 할리우드를 넘어 미국 엔터테인먼트 업계 전반을 뒤흔들었다. 안젤리나 졸리, 기네스 팰트로 등 유명 배우들의 용기 있는 폭로가 이어지며 ‘웨인스타인 성범죄 스캔들’은 전세계 각국의 여성들이 SNS에 자신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백하는 ‘미투(Me Too) 운동’으로 이어졌다. 아카데미 시상식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던 웨인스타인의 몰락은 올해와 그 이후의 아카데미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먼저 아카데미 시상식을 주관하는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이하 AMPAS)는 지난해 10월 웨인스타인을 회원에서 제명했으며, 지난해 12월 8500명의 아카데미 회원들에게 행동 지침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에 따르면, 아카데미의 리더십이란 “인간의 존엄성과 포용의 정신을 존중하고 창의력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환경을 조성하는” 조직의 가치를 반영하고 그러한 가치를 담은 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앞으로 “위원회의 어떤 멤버라도 이 새로운 기준을 위반하거나 아카데미와 타협하려 든다면”, 위원회는 회원의 정직이나 추방 등 징계 절차에 임할 수 있다.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후보로 지명된 작품들의 면면을 보면 단정할 수는 없지만 웨인스타인 스캔들과 미투 운동의 영향이 뚜렷하게 느껴진다. 성범죄 의혹을 받고 있는 영화인이 참여한 많은 작품들이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이 가운데 가장 자주 언급되는 영화인의 이름은 <더 디제스터 아티스트>의 제임스 프랭코. 지난 1월 11일, <LA타임스>는 5명의 여성이 제임스 프랭코가 성적으로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고 폭로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 프랭코가 골든글로브와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승승장구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카데미의 외면에는 이유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딸 딜런 패로에 대한 성범죄 의혹을 받고 있는 우디 앨런의 영화 <원더 휠> 또한 아카데미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평단으로부터 호평받은 노아 바움백의 영화 <더 마이어로위츠 스토리스> 또한 주연배우 더스틴 호프먼의 성추행 의혹과 더불어 외면당했다. 이들의 후보 제외가 무엇을 의미하냐고? “이번 시상식에서 불편한 광경을 볼 순간이 줄어들었다는 걸 의미한다”고 <뉴욕타임스>는 말했다. 지난해 <맨체스터 바이 더 씨>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케이시 애플렉(그는 여성 스탭을 성추행해 고소 당한 바 있다)의 경우처럼 누구도 ‘연기는 잘했지만…’이라고 씁쓸한 웃음을 지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당대 미국영화에 중요한 영감을 불어넣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트럼프 시대의 미국

<아티스트>와 <버드맨> <라라랜드> 등의 영화가 호평받던 과거의 아카데미 시상식을 떠올려보자. 그동안의 아카데미는 현실의 반영보다 창조와 예술성에 주목한 영화에 더 좋은 평가를 내렸던 것 같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2018년 아카데미 시상식의 후보작만큼 개별영화의 정치성이 강력했던 사례는 드물다. 인종차별이란 소재를 영리하게 비튼 호러영화(<겟 아웃>), 정부와 언론의 대치를 다룬 작품(<더 포스트>), 잘못된 트랙 위에 놓인 사람들(<레이디 버드>)과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목소리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파격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여성(<쓰리 빌보드>). 올해의 아카데미가 주목하는 이 작품들은 트럼프 시대의 미국 사회가 간과하거나 묵살해버린 존재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한데 모아 영화로 만든 작품이 바로 기예르모 델 토로의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이하 <셰이프 오브 워터>)이다. 농아, 흑인 여성, 게이 예술가, 러시아 스파이가 아마존 출신의 괴물을 ‘보수적이고 폭력적인 백인 남성’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힘을 모은다는 이 영화의 줄거리는 그야말로 ‘안티 트럼프’를 외치는 최적의 사례가 아닌가 싶다. 올해의 아카데미가 <셰이프 오브 워터>에 최다 후보 지명(13개 부문)이라는 수식어를 안긴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는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시상식에 유머의 대상으로 자리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미국영화의) 영감을 주는 존재로 자리할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여성영화의 선전

2018년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성을 이야기하거나 여성이 중심에 놓이지 않은 영화를 찾아보기란 어렵다. 여우주연상 부문뿐만 아니라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등 아카데미의 주요 부문 후보에 오른 많은 작품이 여성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올해의 후보작들이 선보이는 다채로운 여성 캐릭터가 성녀와 악녀의 이분법적 구분으로부터 한없이 자유롭다는 점이다. 올해의 유력한 여우주연상 후보로 손꼽히는 <쓰리 빌보드>의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경찰과 사제, 치과 의사 등 자신을 침묵하게 하려는 마을의 전통적인 가부장적 남성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냉혹하고 명철한 여성상을 구현해냈다. <더 포스트>의 메릴 스트립은 지위를 막론하고 여자라면 가르쳐줘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지식인 남성들 사이에서 살아남는다. <레이디 버드>의 시얼샤 로넌은 집안 사정보다 자신의 미래를 앞서 걱정하는 당찬 소녀로 분했고, <아이, 토냐>의 마고 로비는 고상하고 품격 있는 스케이팅을 지향하는 빙상연맹에 가운뎃손가락을 들어올리며 무시무시한 재능을 선보이는 스케이터를 연기했다. 캐스린 비글로 이후 8년 만에 감독상 후보에 오른 여성감독인 그레타 거윅(<레이디 버드>),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로 촬영감독 후보에 오른 여성인 레이첼 모리슨(<머드바운드>)도 올해 아카데미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고 있다. 여성들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는 건 스크린 안과 밖이 다르지 않다.

아카데미에서 완전히 퇴출된 하비 웨인스타인

예측 불가능한 결과

올해만큼 아카데미 시상식의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웠던 적도 없다. 우선 후보작들부터 아카데미답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10대 소녀의 성장담을 다룬 <레이디 버드>나 신체 강탈 호러의 장르적 색채가 짙은 <겟 아웃>, 광기의 사랑을 다룬 폴 토머스 앤더슨의 <팬텀 스레드> 같은 영화는 기존의 아카데미라면 결코 선호하지 않았을 작품들이다. 최다 부문 후보로 지명된 기예르모 델 토로의 <셰이프 오브 워터>는 어떤가. 이처럼 후보자 선정 과정부터 감지할 수 있는 아카데미의 변화는 #OscarsSoWhite 논란 이후 다양성을 확장하기 위한 아카데미의 노력이 나름의 결실을 맺은 것 아니냐는 예측을 낳고 있다. 일례로 지난 2017년 AMPAS가 위촉한 신규 회원 744명 중에서 여성의 비율은 39%, 소수 인종의 비율은 30%였다. 새로운 회원들은 아카데미의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여기에 대한 답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3월4일 밤, 구할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건 많은 영미권 매체가 ‘변화’를 상징하는 작품에 기대를 걸고 있다는 점이다. “당신의 영화를 백인 남성이 만들었다면, 당신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나기까지 앉아서 지켜보기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유감입니다, 크리스토퍼 놀란.”(내셔널리뷰닷컴) 오스카상의 영예를 얻게 될 ‘돌연변이’들의 활약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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