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내 인생의 영화
[내 인생의 영화] 남무성 작가의 <인사이드 르윈>

순수를 의심하는 순간 꿈을 잃는다

원제 Inside Llewyn Davis / 감독 조엘 코언, 에단 코언 / 출연 오스카 아이삭, 캐리 멀리건, 저스틴 팀버레이크 / 제작연도 2013년

“익숙한 노래일 거예요. 포크송이 그놈이 그놈이라….” 노래를 마친 르윈 데이비스(주인공)의 말에 웃음이 터진다. 포크라는 것이 사실 그렇다. 삶의 부침을 이야기하는 것, 거창한 담론이 아니다. 그런데 비슷비슷한 넋두리가 가수만 바뀌면서 계속되면 피로감이 인다. 그래서 작정하고 들어줄 친구가 필요하다. 1960년대 초 그리니치빌리지에 모여든 보헤미안들은 공동체적 분위기에서 포크뮤직을 키워나갔을 것이다. 그중 선택받은 누군가는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게 된다.

<인사이드 르윈>은 하룻밤 잘 곳을 찾아 전전하는 빈털터리 포크 가수의 여정을 따라간다. 그는 임신한 여자친구의 낙태수술 비용을 급히 마련해야 하는 처지다. 그건 시작일 뿐, 되는 일이라고는 1도 없는 주인공이 과연 어디까지 망가지는지 쫓아다니며 지켜보는 영화다. 1960년대 실제 포크의 성지였던 ‘가스등’ 카페가 나오고 당대의 포크 트리오였던 피터 폴 앤드 메리를 연상케 하는 세 사람이 노래를 부른다. 컬럼비아 스튜디오에서 짐(저스틴 팀버레이크)이 녹음하는 장면에서는 배꼽이 빠진다. 마이크 앞에서 핏대를 올리며 열창하는데 노래가 해괴망측하다. 기타로 반주하던 르윈(오스카 아이삭)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근데 이거 누가 만든 거야?”라고 묻자 짐이 “내가”라고 말한다. 아무렇지 않다는 그의 표정과 르윈의 멍청한 눈은 성격이 완전히 다른 것이다.

영화의 끄트머리에서 르윈은 “포크가 그놈이 그놈이지”라며 관객을 향해 냉소하듯 말한다. 르윈이 무대에서 내려오자 밥 딜런의 실루엣이 등장한다. 하모니카를 목에 걸치고 특유의 메마른 음성으로 <Farewell>을 부르는 딜런. 햄버거와 콜라로 끼니를 때우던 무명 시절의 밥 딜런과 ‘가스등’ 카페의 전설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코언 감독은 이 장면을 그저 몇초의 시퀀스로 던져놓았다. 누군가는 좌절을 노래하고 누군가는 앞으로 나아가는 비정한 현실을 냉정하게 교차시킨다. 그리고 밖으로 나간 르윈은 웬 신사에게 다짜고짜 얻어맞는다. “내 아내는 그저 노래가 하고 싶었을 뿐이야.” 전날 밤 ‘가스등’에서 르윈이 야유를 퍼부었던 이름 모를 여가수의 남편이었다.

<인사이드 르윈>을 다시 보게 된 건 폭염에 시달리던 지난 7월이었다. 에어컨도 없는 산중 작업실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IPTV를 켰다. 거창하게 인생의 영화라고 할 것까진 아니지만 일상의 어느 날 자극이 되어준 영화다. 내가 선택한 시간속에서 방향감을 잃을 때가 있다. 종종 찾아오는 괴물 같은 무기력과 싸워야 할 때, 의식의 정돈이 필요하다. 영화는 눈보라 치는 뉴욕과 시카고의 거리를 굴러다닌다. 그래서 더 서늘하다.

남무성 재즈평론가. <재즈 잇 업!> 작가. <브라보! 재즈 라이프>(2010) 감독.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