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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픽처스] <폴란드로 간 아이들> 추상미 감독 - 상처를 연민으로 보듬다
김소미 사진 오계옥 2019-01-18

“연민과 공감이 없다면 사회는 무너지고 말 것.”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감독이 출산 후 우울증을 겪으면서 생긴 아이들에 대한 깊은 관심을, 남북 분단을 비롯한 근현대사의 비극으로 확장한 궤적 자체가 무척 흥미로운 영화다. 대학원에서 영화 연출을 공부하면서 두편의 단편영화를 마무리한 추상미 감독이 장편영화를 구상하던 시기에 운명처럼 만난 주제였다. 애초에는 극영화로 계획하고 1년 반 정도 시나리오를 써내려갔지만 실존 인물들이 고령에 접어든 상황을 파악하고 나서는 다큐멘터리로 바뀌었고, 감독은 탈북민 배우 이송과 함께 폴란드로 떠났다. 영화에 담긴 것만큼 카메라 바깥의 기억들 또한 애틋하고 뭉클할 수밖에 없는 프로젝트다.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에 초청되어 지난해 10월 개봉 이후 4만8천여명의 관객을 동원하기까지 장편 데뷔의 레이스를 완주한 추상미 감독을 만났다.

-영화 초반부, 67년이 흐른 뒤에도 아이들을 그리워하는 선생님들이 담긴 폴란드 국영방송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감독으로서 깊이 감명받은 모습을 보인다.

=아이들을 향해 선생님들이 품고 있는 과도하기까지 한 이 연민은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폴란드로 간 아이들>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호기심이 동력이었다. 선생님과 아이들 사이의 유대감의 근원이 무엇일까 싶은. 한국과 폴란드가 각각 한국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절묘하게도 비슷한 역사적 아픔을 갖고 있다는 생각에, 폴란드에 가서 선생님들의 상처도 마주하고 싶었다.

-원래 계획했던 극영화 <그루터기들>의 배우 오디션 기간도 영화에 담았다. 탈북민인 이송 배우에게 함께 폴란드로 가자고 제안하자 이송씨가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는 순간이 있는데, 폴란드 체류 중에 결국 그녀가 마음을 잘 열지 않아서 감독이 안타까워하는 과정도 나온다.

=극영화의 주인공은 김귀덕이라는 인물이고, 이송 배우는 김귀덕의 가장 친한 친구 역으로 오디션에서 선발했다. 김귀덕의 무덤이 폴란드에 있는데, 나는 이송 배우가 친구를 만나러 가게 하고 싶었다. 그는 꽃제비(북한의 가난한 청소년을 이르는 말)로 살아본 경험도 있고, 다른 탈북민들과 마찬가지로 힘겨운 탈북 과정도 이겨냈다. 폴란드 고아들이 분단 상황이 낳은 과거의 아픔이라면 이송 배우는 현재의 아픔인 셈이다. 처음 동행을 제안받았을 때 나를 믿어도 될지 고민했다고 한다. 폴란드 체류가 2주 정도 지난 시점에서는 거의 같이 다니기 힘든 상황도 왔다. 내가 그의 힘겨움을 잘 헤아리지 못했던 탓이다. 탈북민들은 한국에 와서 한달 정도 간첩인지 아닌지 강도 높은 취조를 받는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자신의 인생을 낱낱이 털어놓는 것이다. 북한엔 이른바 자아비판이라고 하는 엄격한 문화도 있으니, 타인에게 자신의 진솔한 내면을 털어놓는 행위에 냉소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이송 배우가 폴란드의 선생님들을 차례로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마음의 빗장을 열어줬다. 나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이송 배우가 “폴란드 선생님과 아이들도 이런 관계가 아니었을까요?”라는 말을 한 적 있는데, 그 한마디가 내겐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완성시키는 중요한 단서였다.

-구조적으로 보자면 감독 개인의 슬픔에서 시작해 분단 상황의 과거와 현재, 한국과 폴란드, 감독과 배우의 상처가 자연스레 공유되는 과정이 펼쳐진다.

=90시간 조금 넘는 촬영 분량을 살피면서 자료나 팩트 위주로 가기보다는 유대감 그 자체에 집중해야겠더라. 이 상처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니 세상이 돌아가는 일이 다 그렇게 보이기도 했다. 알게 모르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상처로 의지하고, 연대하는 힘을 통해서 이 사회가 아직까지 무너지지 않고 어떻게든 재생되어서 앞으로 나아가는구나 싶었다.

-다큐멘터리임을 간안하면 인물을 잡을 때 클로즈업 앵글이 대부분이어서 놀랐다. 꽤 도전적인 시도라고 느꼈다.

=다큐에 대해 깊이 공부한 바가 없다보니 고민이 많았다. 예산 문제도 있고, 폴란드 촬영도 마냥 자유롭진 않아서 제작 기간 자체가 길지 않다는 게 가장 문제였다. 폴란드 촬영이 3주 정도, 그리고 한국 촬영까지 더해 한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진행했다. 대부분 인터뷰로 이뤄지는 구성인 만큼 앵글이나 카메라워크 면에서 좀더 극영화에 가까운 영화적인 방식을 취하는 것이 돌파구일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실제를 담는 다큐멘터리보다는 허구인 극영화에 사람들이 좀더 편안하게 몰입하고 리얼리티를 느낀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폴란드 선생님들도 최대한 클로즈업으로 찍었고, 나와 이송 배우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카메라를 의식하기도 했는데, 장비에 익숙지 않은 이송 배우는 오히려 자기를 찍고 있는 줄도 모르고 늘 편안한 모습이었다.

-현재 극영화 <그루터기들>은 어느 정도 진행되었나.

=폴란드로 간 고아들 중에 북한 아이들뿐 아니라 남한 아이들도 절반가량 섞인 것 같다는 욜란타 크리소바타의 이야기가 내겐 충격이었다. 현재는 시나리오를 전면 수정하는 단계다. 표면적으로는 남과 북의 아이들이 사춘기를 겪는 성장영화처럼 꾸며질 것 같다. 사소하게는 성적인 고민을 비롯해 민족적인 정체성과 갈등을 겪어나가는 과정이 담길 예정이다. 그들의 기억을 더이상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 영화적 비전을 실현시키는 것이 지금 가장 중요한 과제다.

● Review_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한국전쟁의 역사 중 잘 알려지지 않은 한 조각을 다루면서 한국과 폴란드를 아우르는 여러 개인의 미시사가 얽힌다는 점에서 진솔한 감흥을 준다. 인물의 정서에 깊이 공감하고 밀착하기에, 추상미 감독이 지금까지 배우 활동을 통해 쌓아온 공고한 나이테가 느껴지는 장편 데뷔작이다. 1951년 한국전쟁 당시, 김일성의 지시와 함께 위탁교육이라는 명목 아래 폴란드로 이송된 1500명의 고아들이 있었다. 폴란드 양육원의 선생님들은 이들을 사랑으로 돌봤지만, 8년 후 아이들은 갑자기 송환 명령을 받고 원치 않는 이별을 겪게 된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폴란드 기자 욜란타 크리소바타의 원작 <천사의 날개>를 바탕으로, 한국전쟁의 폐허와 폴란드의 아우슈비츠의 상처를 연결 짓는다. 여기에 추상미 감독의 사적인 시선이 더해져 독특한 역사 다큐멘터리의 구성이 완성됐다. 다큐멘터리 촬영과 극영화 구상이 동시에 이뤄지고, 탈북민 이송의 배우수업이 무르익어가는 멀티플레이 과정은 어느덧 관객 각자의 개인적인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 추천평_ 김소미 역사의 사적 체험. 테크닉보다 진심이 앞선다 ★★★ / 박평식 티가 많아도 소중한 옥 ★★★ / 이화정 폴란드로 간 아이들, 유대인 선생님, 그리고 탈북 아이들의 아픔이 하나로 겹쳐지는 체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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