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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리메이크한 다리오 아르젠토의 <서스페리아>, 호평과 혹평 사이에 놓이다
장영엽 2019-05-08

원작과 멀고 먼 리메이크… 그래서, 어때?

충격과 공포 그리고 혼돈. 이탈리아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의 <서스페리아>를 관람한 뒤 당신이 느낄 감정이다. 다리오 아르젠토의 동명 호러영화를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은 오리지널 영화의 팬들과 감독의 전작(<아이 엠 러브> <비거 스플래쉬>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등)을 사랑한 관객 모두의 기대를 벗어난다. 마지막 순간까지 완전히 봉합되지 않는 수많은 서사의 갈래들과 실험영화를 연상케 하는 불균질한 장면들, 난폭한 점프컷과 음험한 이미지의 향연을 2시간32분에 걸쳐 체험하고 나면 당장 인터넷 검색창을 열어 이 모든 것들의 의미를 해설한 글을 찾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다리오 아르젠토는 어떻게 봤을까

이처럼 과감한 탈주는 필연적으로 영화에 대한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2018년 제75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영화가 처음 공개된 뒤, <서스페리아>에 대한 평단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오래된 악몽에 대한 풍부하고 명쾌한 해석”(<인디와이어>), “신념, 정치, 무용, 마녀사냥에 대한 복합적이고 도발적인 함의”(<데일리 텔레그래프>)를 담았다는 평가가 있는 한편 “무섭지도, 재밌지도 않다”(<버라이어티>)거나 “기묘하게 열정적이지 않은 영화”(<가디언>)라는 반응도 있었다. 분명한 점은 루카 구아다니노가 원작의 후광에 기대지 않고 그 무게에 짓눌리지도 않은 채 오롯이 자기만의 관점을 담아 <서스페리아>를 완성했다는 것이다. 그 관점에 동의할 것인지 반대할 것인지는 관객의 몫이겠으나, 호러영화 역사의 영원한 고전이 된 작품의 발자취를 따르면서도 영화를 보는 내내 원작의 어떤 장면도 생각나지 않았다는 점만큼은 리메이크작의 놀라운 성취라고 할 수 있겠다.

<서스페리아>는 “바더 마인호프(서독의 극좌파 테러리스트)를 석방하라!”는 구호가 베를린의 잿빛 거리에 울려퍼지던 1977년을 배경으로 한다. 넋이 나간 듯 보이는 소녀 패트리샤(클로이 머레츠)가 정신과 의사 클렘페러(틸다 스윈턴)를 찾아와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는다. 유서 깊은 아카데미의 무용수인 그는 클렘페러에게 “그 여자들은 마녀”라며 자신이 그들에게 조종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클렘페러는 패트리샤의 말이 망상에 불과하다고 여기지만, 패트리샤는 사라지고 그는 소녀의 실종에 무용 아카데미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패트리샤의 실종 뒤 무용단에는 수지 배니언(다코타 존슨)이라는 미국인 무용수가 입단한다. 미국 오하이오 출신으로 마담 블랑(틸다 스윈턴)에게 무용을 배우기 위해 베를린으로 온 수지는 특유의 거침없는 태도로 블랑의 관심을 끌고 무용단의 대표작 <폴크>(VOLK)의 주연 자리를 따낸다. <폴크>의 공연이 다가올수록 아카데미의 소녀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수지가 악몽을 꾸는 일도 잦아진다. 수지의 단짝이자 패트리샤의 절친한 친구였던 사라(미아 고스)는 클렘페러로부터 패트리샤의 일기장에 적혀 있던 마녀의 존재에 대해 듣는다.

다리오 아르젠토가 연출한 오리지널 <서스페리아>의 이야기는 단순했다. 미국인 무용수가 마녀들이 운영하는 독일의 무용 아카데미에 입단해 기이하고 두려운 일들을 겪고, 자신을 희생제물 삼아 젊음을 유지하려는 사악한 마녀에 승리한다는 내용이다. 찬찬히 뜯어보면 말도 안 되는 설정이 수두룩하지만 아르젠토의 영화 대부분이 그렇듯 이 작품의 매력은 탐미적이고 과장된 프로덕션 디자인과 소름 끼치는 스코어, 독창적이면서 끔찍한 살인 장면에서 비롯되는 말초적 쾌감을 즐기는 데 있었다. 루카 구아다니노의 리메이크작은 훨씬 더 복잡하고 다층적인 결을 가지고 있다. 1977년의 베를린이라는 특정 시공간(다리오 아르젠토의 <서스페리아>가 개봉했던 바로 그해다)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당대 독일의 역사, 사회, 정치, 윤리적 맥락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려 하며, 관객 또한 이를 충분히 염두에 두고 영화를 봐주었으면 하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다시 말해 아르젠토의 <서스페리아>가 본능적인 감각으로 만든 영화였다면, 구아다니노의 <서스페리아>는 지성을 통해 정교하게 구축된 영화다. 다리오 아르젠토가 구아다니노의 리메이크작을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는데,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위와 같은 이유로 리메이크작 <서스페리아>를 이해하려면 1977년의 베를린 또는 독일 사회에서 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알아야 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1977년 중에서도 서독의 극좌파 테러리스트 그룹 바더 마인호프가 위력을 떨치던 마지막 몇주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서방의 자본주의 세력들은 소련을 중심으로 힘을 키워가던 사회주의 세력을 막는 데 급급해 나치주의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을 하지 않았다. 독일의 젊은 세대들은 파시즘에 물들었던 사회가 아무런 반성 없이 민주주의 사회로 이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본격적인 학생운동을 시작한다. 저널리스트였던 안드레아스 바더와 좌파 성향 잡지의 편집장이었던 울리케 마인호프가 결성한 ‘바더 마인호프’(‘적군파’라는 명칭으로도 유명하다)는 그중에서도 가장 과격하게 운동을 전개하는 단체였다. 급진적인 사회 변혁을 꿈꿨던 이들은 루프트한자 비행기를 납치하고 독일 연방검찰총장과 경제인연합회장 등을 암살한다. 독일 언론은 바더 마인호프가 감행한 일련의 사건들을 ‘독일의 가을’이라고 불렀다.

구아다니노의 <서스페리아>에서 ‘독일의 가을’과 관련된 소식은 극중 TV, 라디오 등의 미디어를 통해 도처에서 들려온다. 하지만 엄격한 규율과 통제, 지도자에 대한 학생들의 선망과 경의로 운영되는 마르코스 무용단에서 바더 마인호프 테러와 같은 외부의 사건들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잡음일 뿐이며 파시즘은 이곳에서 은밀하면서도 분명하게 작용된다. 사실 이 무용단을 이끄는 건 마녀들이다(원작 영화에서 선생들의 정체는 일종의 스포일러였지만 이 작품에서 무용단을 지도하는 선생들의 마녀로서의 정체성은 영화 초반부터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마르코스와 무용단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블랑은 마녀 집단의 두 실세로 아슬아슬한 균형을 이루고 있으나 마르코스의 세력이 블랑의 그것보다 조금 더 우세해 보인다. 이들은 마녀 의식을 위해 학생들을 희생제물로 삼지만 단순히 가해자로만 묘사되지 않는다. “블랑 선생님은 전쟁 때도 무용단을 지켜낸 강인한 분”이라거나 “우파가 여성을 애 낳는 기계로만 볼 때도 저항했다”는 사라의 말, 여성의 재정 자립을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모든 것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무용단의 운영 방식은 초자연적인 맥락을 넘어 사회적 맥락으로 구별되는 ‘마녀’의 존재를 암시하고 있다. “이 영화는 여성을 마녀에 비유하는 여성 혐오적인 사상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 알다시피 마녀라는 개념은 중세 시대와 계몽주의 시대에 도입되면서 선입견을 낳았다. 교회와 공동체 사회에서는 독립적이거나 모임을 좋아하는 여자들 혹은 혼자 다니는 여성이 마녀라는 사상을 퍼뜨렸고 실제로 마녀라고 낙인 찍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준비하며 아예 자신을 마녀라고 칭하는 여자를 생각해냈다. 그러면 마녀로 몰려 희생될 필요도 없고 오히려 자신의 힘을 당당히 외치게 되니까.”(루카 구아다니노)

틸다 스윈턴이 연기하는 블랑은 마녀들 가운데서도 가장 매혹적인 존재다. 그는 의식에 제물로 쓰일 학생을 발탁하고 통제하는 음험한 목적을 가졌지만 동시에 완벽주의자적인 태도로 무용이라는 예술을 대하는 아티스트다. 재능이 엿보이는 제자이자 가르침을 온전히 따르지 않음으로써 스승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는 수지와 교감하는 모습은 블랑을 한층 더 복합적인 인물로 만든다. 특히 블랑과 수지의 관계를 필두로 한 스승과 제자, 어머니와 딸의 관계에 대한 영화의 몇몇 설정은 전복적이면서도 도발적이다.

“어머니는 으레 (아이를) 돌보고 양육하며 헌신적이어야 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것이 모두 우리의 지레짐작이라면? (중략) 모성은 깊은 갈등과 산후우울증, 아이와의 연결에 대한 거부를 동반하며 엄마와 딸 사이에는 종종 경쟁이 벌어진다.” 그 자신의 말처럼 루카 구아다니노는 이 영화를 통해 모성에 대한 선입견에 이의를 제기하고 모녀 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서스페리아>의 어머니들은 자신의 필요에 의해 자식을 희생시키려 하고, 유일한 어머니가 되기 위해 투쟁한다. 딸들은 어머니를 따르지 않으며 때로는 어머니의 자리를 야심만만하게 넘본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과정에서 여성들이 대상화되지 않고 자기 자신의 행위의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이는 “대부분의 호러영화에서 주인공은 폭력의 대상이 되거나 위협당한다. 우리는 수지가 때때로 위험에 노출되지만 결국은 공포영화의 주체가 되길 바랐다”라는 각본가 데이비드 카이가니치의 말과 맥락을 함께한다. 다리오 아르젠토 영화에서 겁에 질려 살해당하던 여성들은 구아다니노 영화에서 그 의도와 결과가 어떻든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선택을 하고 힘을 사용하며 그 결과를 감수한다. 영화의 후반 30분 내내 이어지는 거대한 피의 축제 역시 누구의 것도 아닌, 그들 자신의 것이다.

이들 여성이 집단적으로 행하는 제의인 무용은 (아르젠토의 영화와 달리) 시종일관 어둡고 음울한 이 영화에 시각적으로 가장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순간을 선사한다. 다윗의 별을 닮은 무대 안에서 붉은 실로 짠 옷을 입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무용수들은 폭력적인 동시에 흠결 없이 아름다웠던 나치 시대의 미학을 떠올리게 한다(공연의 이름이 ‘민족’을 뜻하는 ‘VOLK’라는 점, 공연을 관람하는 이가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세대인 클렘페러라는 점은 더욱 노골적으로 이 장면의 의도를 드러낸다). 이 영화에서 몸의 움직임은 마녀의 주술을 이루는 수단이다. 수지가 블랑의 지도에 따라 격정적으로 춤을 출 때, 거울방에 갇힌 올가의 뼈와 장기가 수지의 움직임에 맞춰 기묘하게 뒤틀리는 장면은 잔혹하면서 그로테스크하다. 생성과 파멸이 한데 뒤얽힌 이 장면은 오리지널 영화와 차별화되는 리메이크작만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서스페리아>는 어둠

라디오헤드의 보컬 톰 요크가 맡은 스코어는 생성과 파멸의 기운이 격렬하게 맞부딪히는 이 영화의 무드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의 음악은 전설적인 오리지널 영화의 스코어를 맡은 고블린의 찢어지는 사운드와 다른 방식으로 불길하고 매혹적이다. “이미지와 사운드를 통해 불안하고도 변화무쌍한 영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는데 그것을 구현하기에 톰 요크보다 더 나은 사람은 없었다”라는 루카 구아다니노의 말처럼 톰 요크의 영화음악감독 데뷔작인 <서스페리아>는 속삭이는 듯한 멜로디와 악몽같은 사운드로 감각적인 공포를 체험하게 하는 데 일조한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태양이라면 <서스페리아>는 어둠이다.” 이 영화의 편집을 맡은 월터 파사노는 이렇게 말했다. 전작을 통해 인간 내면의 욕망과 어둠을 과감하게 탐구해왔던 루카 구아다니노는 그러한 자신의 관심사를 이어가되 가장 전위적이고 담대한 스타일과 형식으로 <서스페리아>를 완성했다. 이 작품이 구아다니노 최고의 걸작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20세기 유럽 사회의 가장 어두운 역사를 끌어와 초자연적 현상과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야심만큼은 루카 구아다니노가 현재 가장 주목받는 동시대 유럽 감독의 위치에 놓인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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