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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회 칸국제영화제②]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첫 공개… 현지 반응 뜨거워
장영엽 2019-05-29

계급의 문제를 장르로 풀었을 때

<기생충>

“감사합니다. 밤이 늦었으니 집으로 돌아갑시다. 레츠 고 홈. 땡큐!” 그야말로 ‘봉준호의 밤’이었다. 5월 22일 자정이 넘은 시각,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기생충>의 월드 프리미어 상영이 끝난 뤼미에르 극장에서는 박수와 환호가 5분 이상 이어졌다. 봉준호 감독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다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박수 소리는 더욱 오랫동안 이어졌을 것이다. <기생충>에 대한 관객의 열광적인 반응은 영화 상영 도중에도 확인할 수 있었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을 보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영화 관계자들은 극중 두번이나 기립박수에 견줄 법한 박수 갈채를 보냈고(어떤 장면인지는 당신의 즐거움을 위해 밝히지 않겠다), 이러한 호응은 <기생충> 이전 상영된 경쟁부문의 모든 영화를 통틀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의 칸영화제 초청 소식을 들은 뒤 “한국 관객이 봐야 뼛속까지 이해할 수 있는 디테일이 있기 때문에” 수상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21일에서 22일로 넘어가는 새벽, <기생충>에 쏟아진 프랑스 현지의 찬사는 이 영화가 한국을 넘어 해외 관객의 마음까지 사로잡았음을 확신하게 했다.

코믹하고 두렵게

<기생충>은 반지하층에 위치한 낡고 허름한 집에 사는 기택(송강호)과 충숙(장혜진) 가족을 비추며 시작된다. 아빠, 엄마와 딸, 아들. 네 가족 모두가 백수인 이들은 상자를 접어 피자집에 납품하고 남의 집 와이파이에 몰래 접속해 문자를 보내는 등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장남 기우(최우식)에게 좋은 제안이 들어온다. 교환학생으로 해외에 나가는 그의 친구가 자신이 맡았던 부잣집 영어 과외를 소개해준 것이다. 문서를 위조하는 데 재능이 있는 동생 기정(박소담)의 도움을 받아 명문대 학생으로 둔갑한 기우는 젊은 안주인 연교(조여정)의 신뢰를 얻어 글로벌 IT 기업 CEO 박 사장(이선균)의 집에서 과외를 시작한다. 박 사장 부부의 첫째딸 다혜(정지소)의 과외를 하며 집안 사정을 알게 된 기우는 자신의 동생 기정을 박 사장 부부의 막내아들 다송(정현준)의 미술 과외 선생으로 섭외하려 한다.

여기까지가 봉준호 감독이 공개를 허한 <기생충>의 내용이다. 그는 영화 상영을 앞두고 기자들에게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두 남매의 과외 알바 진입 이후의 스토리 전개에 대해서 최대한 감춰주신다면 저희 제작진에 큰 선물이 될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전했다. 영화를 보고서야 봉준호 감독이 왜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감수하면서도 스포일러 유출에 만전을 기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블랙코미디와 사회풍자, 스릴러, 호러, 드라마까지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변화무쌍하게 장르의 얼굴을 바꾸는 <기생충>은 덜 알고 볼수록 더 많은 것들을 즐길 수 있는 영화다. 이 작품에서 장르를 추동하는 건 모두가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사회계급의 차이다. 영화는 더 나은 삶을 꿈꾸는 빈곤한 자들과 그들이 선을 넘어오는 것을 경계하는 부자들의 동선이 우연히 겹치게 되었을 때 벌어지는 희비극을 조명한다. 힘의 균형이 한쪽으로 치우친 관계는 필연적으로 한쪽이 다른 쪽에게 기생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가진 자들의 환경에 마치 연체동물처럼 자신을 맞추려 하는 빈자들의 절박한 노력은 이 영화에서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통렬하게 다가온다.

‘계단’은 <기생충>의 가장 중요한 영화적 장치이자 부자와 빈자의 위치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봉테일’이라는 별명답게 봉준호 감독은 영화 곳곳에 수직으로 곧게 뻗은 계단을 디테일하게 배치해 각각의 등장인물이 점유하고 있는 계급과 사회적 위치를 관객이 물리적으로 체감할 수 있도록 한다. 이 은유와 상징의 계단을 쉴 새 없이 오르내리며, 때로는 그들에게 주어진 동선을 이탈하는 기택의 가족은 <기생충>에서 가장 흥미로운 궤적을 만들어내는 존재들이다. 봉준호 감독과의 역사가 깊은 배우 송강호, <옥자>를 함께한 최우식, 이번 영화를 통해 그의 세계로 새롭게 진입한 배우 장혜진, 박소담은 마치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4중주 악단처럼 봉준호 감독이 창조해낸 환경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자본주의사회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공포”

완전한 지상도 완전한 지하도 아닌, ‘반지하’라는 지극히 한국적인 공간에서 언젠가 쾌적한 지상의 공간으로 나아갈 수 있길 바라는 기택의 가족은 끊임없이 그들이 위치한 계단 위를 올려다보며 신분 상승을 꿈꾼다. 하지만 누군가가 계단을 올라가려면, 누군가는 계단을 내려와야 한다. 충숙은 가족과의 대화에서 부자들이 꼬인 게 없어 순진하다며 돈이야말로 마음의 주름살을 쫙 펴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하는데, 바로 이와 같은 이유로 가지지 못한 자들은 어떤 악의가 없음에도 살아남기 위해 서로의 삶에 생채기를 낸다. <인디와이어>는 이 영화가 “자본주의사회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공포”를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비단 영화의 테마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치밀하게 이야기를 쌓아올린 뒤 맹렬한 속도로 폭주하는 <기생충>의 후반 20분은 호러의 장르적 특성을 띤 대목으로, 관객의 넋을 완전히 빼놓는다.

<기생충>은 사회적 계급의 격차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데에서 더 나아가 이러한 격차로 인해 인간이 상실하게 되는 자존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끊임없이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워보지만, 자연재해처럼 닥쳐오는 불운에 한순간 무너지는 삶들의 애환은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을 눈물짓게 할 것이다. 모두가 신분 상승의 계단 위쪽만을 바라보며 자신의 발밑에 웅크린 존재들을 외면하는 시대, <기생충>은 사회의 가장 어둡고 깊숙한 지점까지 내려가보는 영화다. <살인의 추억>과 <마더> 그리고 <괴물>이 그랬듯, 봉준호의 가장 좋은 영화는 언제나 한국 사회의 가장 어두운 곳으로부터 탄생됐다. 이제는 그 목록에 <기생충>을 추가해야 할 때다.

● <기생충> 해외 매체 반응: 더 사나운 목소리, 더 절망적인 울음

<기생충>에 대한 외신 반응을 모았다. 영미권 매체는 봉준호 감독의 장르적 색채에 주목해 영화를 평했고, 프랑스 매체는 사회비판적 메시지에 주목했다.

<버라이어티>_ 분류할 수 없는 고유의 장르 교란자, 봉준호 감독은 코미디, 호러, 드라마, 괴수물, 살인 미스터리와 같이 장르의 계단을 차례차례 밟아왔다. 우리가 보아왔던 그의 어떤 전작보다 웃음은 더 어두워졌고 분노의 목소리는 더 사나워졌으며 울음은 더 절망적이다.

<인디와이어>_ <기생충>의 장점은 그의 영화를 특정 장르로 분류하려는 노력이 필요 없게 만드는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마침내 스스로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르몽드>_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이 기교가 뛰어난 스타일리스트일 뿐 아니라 대단한 정치적 감독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공포영화나 SF영화라는 느낌을 주는 이 제목은, 사실 김기영 감독 <하녀>로 대표되는 하인들의 신분을 다루었던 한국 전통영화와 맥을 함께한다.

<마리안>_ 봉준호 감독은 극단적 자유주의사회에서 비인간화된 두 계급이 공존하는 정치 난장판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신랄한 사회 드라마, 가족 서스펜스, 스릴러 사이에서 말이다. 이번 주말 황금종려상 수상 후보 리스트 상위에 올라가야 할 작품이다.

<라 크와>_ 봉준호 감독은 코미디 형식을 빌려 썩어가는 한국 사회에 대한 극도로 비관적인 시선을 담는데, 이를 표현해내는 미장센이 정말로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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