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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회 칸국제영화제⑤] 개막작 <데드 돈 다이> 짐 자무시, “살아 있는 자들은 마치 좀비처럼…”
장영엽 2019-05-29

“이 작품은 정치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제72회 칸영화제 개막작 <데드 돈 다이>가 공개된 뒤, 짐 자무시는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정치적 함의를 분석하는 리뷰들이 쏟아지자 당혹감을 느꼈다고 한다. 웃자고 만든 좀비 코미디 영화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풍자의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들이 불편하게 느껴졌던 듯하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밤이 사라진 세계, 이처럼 기묘한 현상이 단지 우발적인 것이라고 말하며 문제의 근원을 진단하길 회피하는 미디어, ‘다시 미국을 백인들의 나라로 만들자’는 구호가 적힌 모자를 쓰고 다니는 인종차별주의자 등 <데드 돈 다이>에는 여러모로 현 시대의 암울한 풍경을 연상케 하는 장면들이 많다. 연출자의 의도가 정치적이었든 그렇지 않든 간에 버락 오바마에게서 도널드 트럼프로 정권이 넘어간 뒤 짐 자무시가 공개한 첫 작품인 <데드 돈 다이>에는 미국 인디영화계의 거장이 바라본 미국 사회의 현재가 담겨 있다. 평소 좀비물을 그다지 즐겨보지 않고, 좀비보다는 뱀파이어를 좋아한다는 짐 자무시가 좀비영화를 만들어야만 했던 이유에 대해, 그를 직접 만나 물었다.

-<데드 돈 다이>는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고 난 뒤 당신이 연출한 첫 영화다. 이 작품에는 기후변화로 좀비가 출현하는데, 트럼프가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탈퇴했다는 점이 영화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주었나.

=그렇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도널드 트럼프에게 X나 관심이 없다. 내 주변에 트럼프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하루종일 그가 오늘 뭘 했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SNS에 무엇을 남겼는지 찾아보며 스트레스를 받더라. 나는 트럼프를 신경 쓰는 데 내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 않다. 그는 언제, 어디서든 거짓말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런 사람으로부터는 창작의 영감을 조금도 받지 못한다. 트럼프와 별개로 <데드 돈 다이>를 작업하는 데 영감을 준 건 우리가 직면한 환경문제 그리고 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지금의 세태다. 우리가 사용하는 각종 플라스틱 용기를 생각해보라. 나는 종종 나 역시 환경문제의 주범 중 한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세계를 지배하는 기업들은 이윤을 얻을 수 있다는 이유로 환경문제를 등한시하고 있다. 우리 모두 환경을 위해 무언가를 더 해야 한다. 이런, 난 그저 우스운 좀비영화를 만들고 싶었을 뿐인데…. (웃음)

-영화제 개막식 이후 이번 작품을 안티 트럼프 영화로 읽는 리뷰가 쏟아졌는데, 사람들이 당신의 생각과 다른 의도로 영화를 봤다는 데 많이 놀랐나.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말은 하고 싶다. 나에게 있어 <데드 돈 다이>는 첫 번째로 코미디영화다. 두 번째로 이 영화는 어둡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지금 세계가 처한 상황이니까. 하지만 이 영화는 희망적으로 웃기다. 나는 더이상 희망이 남아 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10대 아이들이 희망이고, 소비주의에 물들지 않은 사람들이 희망이다. 이 영화에서는 톰 웨이츠가 연기하는 은둔자 밥과 10대 소년, 소녀들이 그 희망을 상징하는 존재들이다.

-기존에도 좀비가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수없이 많았다. <데드 돈 다이>를 어떤 좀비영화로 만들고 싶었나.

=조지 로메로가 만든 좀비영화를 좋아한다. 그는 이전까지 주술을 이용한 괴물에 불과했던 좀비를 사회구조 안으로 편입시켰다. 인간의 죽음에 대해 아무런 연민이 없고, 영혼이 텅 빈 존재들의 등장은 굉장한 메타포였다. <데드 돈 다이>를 통해 나는 조지 로메로가 그랬듯 좀비라는 존재를 메타포로 활용하고 싶었다. 이 영화에서 좀비는 인간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인해 파생되는 존재다. 그리고 살아 있는 자들은 마치 좀비처럼 거짓뉴스에 현혹되고 소비주의에 빠져 있다.

<데드 돈 다이>

-조지 로메로 이후의 좀비영화 중 좋아하는 작품이 있다면.

=에드거 라이트의 <새벽의 황당한 저주>(2004)다. 이 영화는 초반 20분까지가 정말 굉장하다. 또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2016)도 좋아한다. 이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와우’를 연발하게 된다. 정말 난폭한 좀비들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사실 좀비물을 그닥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좀비보다는 뱀파이어가 더 좋다. 그들은 교양 있고, 박학다식하며, 섹시한 동시에 상처받기 쉽고 우아한 존재들이다. 반면 영혼이 없고 다소 멍청해 보이는 좀비는 매력이 덜하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그처럼 텅 비어 있는 좀비의 상태가 흥미롭게 느껴졌다. 그래서 텅 빈 상태의 좀비에게 살아생전 그들의 모습을 짐작하게 하는 어떤 특징을 가져오고 싶었다.

-<데드 돈 다이>의 좀비들은 와이파이, 커피, 샤도네이(백포도주) 등 살아 있을 때 집착했던 하나의 단어를 반복하고, 이러한 설정이 폭소를 유발한다. 만약 당신이 좀비가 된다면 어떤 단어를 말할 것 같나.

=글쎄, 음악이나 책, 영화와 관련된 단어를 말하지 않을까. (좀비 흉내를 내며) 람보…. 카우리스마키…. (좌중 폭소)

-특히 당신의 트레이드마크라고 부를 만한 좀비는 이기 팝사라 드라이버가 연기하는 ‘커피 좀비’다.

=이들을 통해 유혈이 낭자한 유머를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배우들에게 말했던 건, 1970년대 ‘블루 오이스터 컬트’(미국 록밴드) 콘서트에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로 죽었을 법한 좀비를 연기해보자는 거였다. 이 영화의 의상디자이너 캐서린 조지가 1960,70년대 패션 아이콘인 아니타 팔렌베르그의 사진에서 영감을 얻은, ‘로큰롤룩’(rock’n’roll look)을 만들었다.

-영화 내내 흐르는 컨트리 뮤지션 스터길 심슨의 테마곡 <The Dead Don’t Die>가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만든 곡인가.

=오직 한곡의 노래가 흐르는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평소 스터길 심슨을 좋아해왔기에 이번 영화를 준비하며 그에게 한곡만 써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원한 느낌은 클래식한 미국 컨트리송이었다. 1960년대에 나왔다가 시대의 틈바구니로 사라져버렸을 것 같은 곡 말이다. 이 곡을 영화 내내 반복하며 유머의 효과도 낼 수 있었으면 했다.

-이번 영화에서 메타 유머도 선보이는데.

=시나리오를 쓰는 단계에서 그런 장면이 있으면 재미있지 않을까 싶었고, 애덤 드라이버와 상의해 넣었다. 그저 즐거움을 위해 만든 설정이라고 봐달라.

-최근 전세계적으로 영화 제작 환경이 드라마틱하게 변하고 있다. 영화제도 마찬가지고. 이런 상황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나.

=무척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나 역시 엄청난 변화를 실감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의 영화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상충되는 상황에 별다른 거부감이 없다. 기본적으로 나는 영화를 보호하기 위해 극장에서 개봉하지 않는 영화의 상영을 금하는 프랑스 배급업자들과 칸영화제의 조치에 동의한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창작자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걸 만들 수 있는 돈을 주는 넷플릭스 행보에도 반대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린치 같은 위대한 감독조차 장편영화 투자를 못 받는 시대에 넷플릭스와 아마존 같은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 기업을 마냥 외면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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