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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사람들⑩]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는 언어와 문화적 차이를 넘어선다"
이주현 사진 최성열 2019-10-16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프랑스에서 카트린 드뇌브, 줄리엣 비노쉬, 에단 호크와 함께 찍은 그의 첫 해외 올 로케이션 영화다. 다정한 엄마, 좋은 친구보다 위대한 배우로 기억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프랑스의 전설적 배우 파비안느(카트린 드뇌브)와 그런 엄마에게서 서운함을 느끼는 뉴욕에 사는 딸 뤼미르(줄리엣 비노쉬)의 관계가 영화를 지탱하는 큰 줄기다. 엄마의 회고록 출간에 맞춰 파리에 도착한 뤼미르가 회고록에 진실이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하자 파비안느는 이렇게 답한다. “나는 배우라서 진실을 다 말하지 않아. 진실은 전혀 재미없거든.” 파비안느라는 매력적인 캐릭터와 카트린 드뇌브가 선사하는 최고의 연기, 삶을 쉽게 미화하거나 냉소하지 않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시선이 인상깊은 작품이다. 신작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의 감독으로, 더불어 제24회 부산영화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로 부산을 찾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만났다.

-올해 영화제에서 분 단위의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올해는 그나마 괜찮은 편이다. 보통 다음 영화의 극본을 쓰고 있거나 이미 다음 영화가 시작된 상황에서 영화제에 오는 경우가 많고, 그럴 때면 지금의 영화와 지난 영화에 대한 생각을 동시에 해야 해서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들다. 그런데 올해는 준비 중인 영화가 없어 한 가지 생각만 하면 되기 때문에 특별히 더 힘든 일은 없다.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상했다. 이 상의 의미가 있다면.

=릴레이 바통을 이어받은 기분, 다음 세대에게 제대로 바통을 전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데뷔작 <환상의 빛>(1995)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면서 감독으로서 경력이 시작되었는데, 해외 영화제와 해외 영화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런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험을 다음 세대에게 나누는 역할을 해야 할 것 같다. 여러 고리 중 하나의 고리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그 고리가 계속해서 이어지게 하라는 의미로 상을 준 게 아닌가 싶다.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처음으로 해외에서 비모국어로 찍은 영화다. 영화 제작 방식의 차이나 문화적 차이를 실감하기도 했나.

=실제로 작업하는 동안 문화적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하지만 차이에서 비롯되는 어려움이 아니라 차이를 다 같이 극복하고 받아들이고 공유하자는 마음, 그 마음의 움직임이 더 기억에 남는다. 사실 일본에서 일본어로 영화를 찍는다고 해도 내가 원하는 것을 배우가 모두 표현해주진 않는다. 이번엔 찍으면 찍을수록 배우와 배우 사이, 배우와 감독 사이, 감독과 촬영감독 사이에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것이 생기는 걸 느꼈다. 영화는 언어나 문화를 넘어서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된 소중한 경험이었다. 물론 일본과 프랑스 사이에 문화적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쓰는 단계에서부터 세세하게 프랑스의 스탭과 의견을 교환하고 수정하는 작업을 거쳤다. 예를 들면 일본에선 6살 아이가 엄마랑 같이 자는 게 일반적이지만 프랑스에선 이런 설정이 문제될 수 있다. 6살이 됐는데도 부모와 같이 잠을 자면 아이에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는 거다. 그래서 뤼미르의 딸 샬롯이 혼자 방을 쓰는 설정으로 시나리오를 바꿨다.

-카트린 드뇌브와 줄리엣 비노쉬를 엄마와 딸로 캐스팅했다. 두 배우에게서 모녀지간으로 보일 만한 공통점을 발견했는지.

=외면이 닮아서 모녀 관계로 설정한 것은 아니다. 두 배우가 연기하는 방식, 역할을 만들어가는 과정 또한 다르다. 캐릭터를 창조하는 과정이 서로 다른 두 배우가 연기하면서 충돌하는 모습, 그것이 극중 엄마와 딸의 충돌과 맞아떨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건 찍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었지만, 직감적으로 두 배우의 차이가 극중 엄마와 딸의 차이, 엄마와 딸의 충돌과 맞아떨어지겠다고 생각했다.

-영화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여성에 대한 이야기다. 배우의 이야기를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하고, 지금까지 배우들과 작업하며 보고 듣고 관찰한 것을 파비안느 캐릭터에 반영한 측면이 있나.

=<아무도 모른다>(2004)를 끝내고 이런 메모를 했다. ‘경력을 아주 많이 쌓은 노년의 여배우의 삐뚤빼뚤한 마음.’ <아무도 모른다>는 연기를 전문적으로 하는 배우가 아니라 일반인 연기자와 아이들과 함께 만든 영화였다. 그 작업을 끝내고 나니 연기를 직업으로 삼는 배우란 존재에 흥미가 생겼다. 마음이 삐뚜름해진 대배우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지금까지 여러 배우들과 작업하며 들은 이야기를 파비안느의 대사에 넣기도 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기키 기린이 이야기해준 것을 대사에 반영하기도 했고, 촬영 전 카트린 드뇌브와 한 인터뷰도 반영됐다.

-지난해 <어느 가족>(2018)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고, 올해는 봉준호의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2년 연속 아시아영화의 경사다.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다음날 봉준호 감독에게 축하 메일을 보냈다. 답장도 바로 왔다. (웃음) 봉준호 감독이 <도쿄!>(2008)를 찍으러 일본에 왔을 때 현장에 간 적 있다. 봉준호 감독이 <걸어도 걸어도>(2008)에 대해 긴 감상문을 보내준 적도 있다. 영화제에서도 종종 만나곤 하는데 이번에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도 우연히 만났다. 토론토의 한 중국집에 들어갔더니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 배우가 있더라. (웃음) 반가운 만남을 부산영화제에서도 기대했는데 이번엔 기회가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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