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디스토피아로부터
윤리에 대하여
정소연(SF 작가) 일러스트레이션 다나(일러스트레이션) 2020-04-29

작가로 일하다 변호사가 된 다음 자주 받는 질문들이 있다. “변호사로 전직한 이유가 뭔가요?”, “강력범을 변호할 수 있나요?”, “돈을 많이 버나요?” 같은 무난한 질문도 있지만, 다소 곤란한 질문도 있다. 그중 가장 난처한 질문을 딱 하나 꼽자면 단연 “사건 맡은 경험으로 소설을 쓰기도 하나요?”다.

이 질문을 처음 받았을 때 나는 몹시 당황했다. 상상해본 적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변호사는 타인의 민감한 분쟁을 다루고, 비밀유지의무를 진다. 작가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글은 아주 널리 퍼질 가능성이 있다. 세상 어느 누가 “일한 경험을 소설로 쓴다”고 말하는 변호사에게 자신의 사건을 맡기겠는가? 받은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것은 변호사로서나 작가로서나 직업윤리상 “그렇다”고 답할 수 없는 외통수 질문인 것이다.

그러나 여러 해 두 직업인으로 살아오며, 나는 이것이 비법조인/비소설가라면 떠올릴 만한 궁금증이라는 사실을 차츰 깨닫게 되었다. 일단 법조인은 발언권이 큰 직업이다. 글을 쓸 기회도 방송에 출연할 기회도 많다. 읽어 보면 사건의 사실관계를 특정할 수 없도록 변형했구나 싶은 경험담이 많지만 비법조인들이 이런 바꾼 부분을 알아보기는 쉽지 않을 테니, 결과물만 보면 변호사 경험을 글로 쓰는 사람이 상당히 많아 보일 법하다. 게다가 모든 법조인들이 법조윤리를 잘 지키는 것은 아니다. 모든 직업이 그렇듯, 법조에도 직업적 윤리에 아주 민감한 사람과 아주 둔감한 사람이 동시에 존재한다. 저연차 변호사일 적, 서초동 카페에서 자신이 본 연예인의 가정폭력 CCTV 영상 내용을 큰 소리로 떠드는 법원 관계자를 보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이 문장은 습관적인 일부 사실 관계 변형을 거친 것이다).

작가도 마찬가지다. 작가마다 창작의 시작점은 다르다. 어떤 이들은 밖에서 출발해 글을 빚어낸다. 타인의 희비극이나 사회의 경험을 원재료로 놀라운 보편성과 완성도를 획득한 걸작이 적지 않다. 창작의 과정과 결과에서 윤리성을 갖추는 것은 작가의 역량과 판단에 달려 있는데, 이 부분이 부족했거나 아무 생각도 없었거나 심지어 현생의 원한을 등장인물에게 풀고 있는 것 같은 글이, 세상에는 많이도 나와 있다. 이 두 현실을 합치고 “어디에서 영감을 얻나요”라는 작가들이 받는 단골 질문에 악의 없는 호기심을 조금 더하면, “(자극적인 사건을 많이 볼) 변호사 일에서 소재를 얻나요?”가 나오는 것이다.

내 답은 매번 다르다. 대개는 “아뇨, 그다지”라고만 한다. 까칠한 변호사인 날엔 “그건 법조윤리 위반이고 제 자격증은 소중합니다”라고 한다. 지친 노동자인 날에는 “변호사도 그냥 직업인데, 굳이 다른 데서까지 일 얘길 더 하고 싶겠어요”라고 한다. 그리고 가끔, 성실한 작가인 오늘 같은 날에는, “저는 소설은 사람들의 삶 속에서 어떤 경험, 감정, 관계를 발견하고 재구성하는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변호사가 만나는 사건은 대개 이미 진행되어 고정된 갈등이죠. 제가 해결해야 하는. 그래서 소설가인 저에게 사건은 소재가 될 수 없어요”라고 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