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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중심으로 배우 마고 로비를 말하다

예측 불가능의 매력

사진제공 SHUTTERSTOCK

살아 있는 바비 인형, 할리우드의 섹스 심벌, 금발의 팜므파탈. 마고 로비에겐 첫눈에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함이 있다. 하지만 마치 후광처럼 빛나는 외모는 그녀에게 축복과 기회인 동시에 속박이기도 했다. <어바웃 타임>에서 팀(도널 글리슨)의 마음을 단번에 빼앗은 금발 여성의 내면엔 빛나는 외모보다 훨씬 화사하고 매력적인 영혼이 숨 쉬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수어사이드 스쿼드>(2016)의 할리 퀸은 마고 로비에겐 더할 나위 없는 기회였다. 마고 로비만큼이나 반짝거리는 이 총천연색 캐릭터는 도리어 배우 마고 로비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마스크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마고 로비가 세 번째로 할리 퀸으로 분한 영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개봉에 맞춰 배우 마고 로비의 궤적과 매력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첫눈에 반했다가 알고 나면 더 끌린다. 탈출할 수가 없다. 니콜 키드먼케이트 블란쳇의 뒤를 이어 할리우드를 사로잡은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90년대생 배우, 마고 로비의 매력에 빠져보자.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나쁜 놈 때려잡는 나쁜 놈들’, 이른바 ‘자살특공대’가 5년 만에 한결 상큼하고 한결 무자비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리런치’(세계관은 공유하되 스토리는 별개인 작품) 영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관객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에서 보여줬던 제임스 건 감독 특유의 유머와 센스를 곧장 눈치채게 된다. 마블 못지않게 개성 넘치는 DC의 악당들과 안티히어로가 제임스 건 감독만의 섬세하고 익살스러운 영화 세계 안에서 저마다 매력을 마구 뽐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관객의 마음을 가장 설레게 하는 건 미치광이 ‘할리 퀸’(마고 로비)이다. 할리 퀸은 자신의 특별함을 익히 알고 있다는 듯 ‘예측 불가능’한 순간 영화에 등장하고, 갑작스레 사라진다. 영화의 한축에서 블러드스포트(이드리스 엘바), 피스메이커(존 시나), 킹 샤크(실베스터 스탤론), 폴카도트맨(데이비드 다스트말치안), 랫캐쳐2(다니엘라 멜시오르)와 같은 각양각색의 캐릭터가 지지고 볶으며 조금씩 각자의 전사를 드러내고 관계성을 구체화시킨다면 다른 한축에서 할리 퀸은 자신만의 시퀀스를 오롯이 책임지고 역동적으로 이끌어나간다. 특히 영화의 중후반부, 창백한 피부와 잘 어울리는 핏빛 드레스를 입고 선보이는 할리 퀸의 ‘탈출 시퀀스’는 단연 압도적인 쾌감을 전한다.

그러나 할리 퀸의 진짜 매력은 자신이 서사의 중심이 아닐 때에도 분명한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불쑥 엉뚱한 농담을 던지고, 예기치 못한 순간 번뜩이는 광기를 보여주는 식이다. 마고 로비가 제임스 건 감독에게 할리 퀸 캐릭터를 ‘혼돈의 기폭제’라 생각한다고 말한 것처럼 할리 퀸은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와 영화를 보다 즐겁고 장난스러운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그것은 곧 수많은 관객이 할리 퀸을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할리 퀸으로

<버즈 오브 프레이(할리퀸의 황홀한 해방)>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배우 마고 로비가 할리 퀸이 되어 세 번째로 선보이는 영화다. 할리 퀸의 첫 등장은 상대적으로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였던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의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였다. 영화는 전세계 박스오피스에서 7억5천만달러를 벌어들이며 흥행했지만, 부실한 스토리와 연출적 아쉬움으로 ‘고급 식재료를 가져다 따로국밥을 만들었다’라는 식의 씁쓸한 혹평을 들어야 했다. 모두가 기대했던 최고의 악당 조커 역의 재러드 레토는 많은 분량이 잘려나간 것도 억울한데, 조커를 연기한 다른 배우들(잭 니콜슨, 히스 레저 등)과 캐릭터 해석 및 연기력이 비교되며 조롱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정신과 의사 할린 퀸젤에서 조커의 광기 어린 여자 친구가 된, 양갈래 머리를 하고 야구방망이를 든 채 밤거리를 활보하는 맛 간 할리 퀸만큼은 살아남아 인기를 독차지했고, 할리 퀸 캐릭터의 공동 창작자 폴 디니에게 인정받은 배우 마고 로비 또한 스타덤에 올랐다. 할리 퀸은 ‘데드풀’과 함께 <타임>이 선정한 2016년 가장 영향력 있는 캐릭터 톱10에 선정되었으며, 그해 가장 많이 구글링된 핼러윈 코스튬 또한 할리 퀸이었다.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DC는 할리 퀸 스핀오프 영화 <버즈 오브 프레이(할리 퀸의 황홀한 해방)>(2020, 이하 <버즈 오브 프레이>)를 내놓는다. 주연배우 마고 로비가 제작을 겸하고, SF영화 <범블비>의 각본가 크리스티나 호드슨이 시나리오를 쓰고, 선댄스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코미디영화 <데드 피그스>를 만든 중국계 미국인 감독 캐시 옌이 연출을 맡은 작품으로, 여성 히어로 액션영화를 보여주고 싶다는 의도에서 출발한 영화였다. 제목 그대로 ‘황홀한 해방’을 주제 삼아 시작부터 조커와 할리 퀸의 결별을 선언하는 <버즈 오브 프레이>는 비선형적 스토리와 나름 위트 있는 연출로 블랙 카나리(저니 스몰렛벨), 헌트리스(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테드) 등 여성 히어로 캐릭터의 시스터후드를 아기자기하게 그려냈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버즈 오브 프레이>에서 조커와의 지독한 사랑에 마침표를 찍게 된 할리 퀸이 그와의 추억이 깃든 화학 공장을 폭발시키는 장면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아직 실연의 상처가 남아 있던 <버즈 오브 프레이>의 할리 퀸 이후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할리 퀸은 조커로부터 거의 완전히 벗어난 모습을 보여준다. 마고 로비의 설명을 빌리자면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할리 퀸은 조커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것에서 비롯된 건방진 자신감을 지니고 있었지만, 조커와 결별한 <버즈 오브 프레이>에서 할리 퀸은 무섭고 차가운 세상을 두려워하며 고민한다.

그리고 마침내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할리 퀸은 더이상 조커가 나타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자신이 스스로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는다. 원작의 할리 퀸 캐릭터 자체가 애초 조커의 여자 친구로 만들어졌던 것이기 때문에, 조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보다 독립적이고 자유로워진 할리 퀸을 연기하는 것은 로비에게도 꽤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찾아서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한편 마고 로비는 최근 본인의 커리어 하이와 관련된 질문에 대해 아직 할 것이 많다고 답했는데, 그가 본격적으로 할리우드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냈던 2013년 이후 지난 8년간의 성실한 행보를 되돌아본다면 그 신중한 포부에 자연스레 수긍하게 된다. 1990년 7월, 호주 퀸즐랜드주 골드코스트의 농장에서 홀어머니 슬하 네 남매 중 셋째로 자란 로비는 그리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던 가정환경 탓에 10대 시절 각종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와중에 독립영화 몇편에 출연하며 배우의 꿈을 키웠다. 졸업 후 멜버른으로 이사한 그는 2008년 호주의 인기 연속극 <네이버스>에서 도나 역에 캐스팅되는데, 처음엔 단역으로 투입됐으나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고정 출연을 하게 된다. 2010년 말, <네이버스>에서 하차한 로비는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가 60년대 항공사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팬 암>에서 승무원 로라 역을 맡았고, 2013년엔 <어바웃 타임>에서 첫사랑 샬롯을 연기했다.

그리고 같은 해, 로비는 운명적인 영화 한편을 만난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블랙코미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주인공 조던 벨포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두 번째 아내 나오미 역을 관능적으로 소화하며 단숨에 뜨거운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오디션 당시 로비가 즉흥적으로 디카프리오의 뺨을 때렸다는 일화는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지만 영화의 성공 이후 밀려들어온 유명 남성배우들의 ‘아름다운 아내’, ‘섹시한 여자 친구’ 역할 제안을 대다수 거절했다는 사실은 덜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마고 로비는 “강하고 빠르게 타올랐다가 사라지고 싶지 않았”고, 언제라도 대체될 수 있는 ‘핫한 금발 미녀’ 이상의 배우가 되길 원했다.

그러기 위해선 결국 자신만의 이야기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던 그는 <스윗 프랑세즈>를 촬영하며 만난 남자 친구(2016년 결혼해 지금은 남편인) 톰 애커리, 친구 소피아 커, 조시 맥나마라 등과 함께 2014년 영화 제작사 러키챕(LuckyChap)을 설립한다. 러키챕은 ‘여성 이야기’를 하고, ‘여성 창작자’를 지원하려는 의지에서 출발했고, 훗날 <버즈 오브 프레이>를 포함한 로비가 출연하는 여러 영화를 제작하는 것은 물론, 2021년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작 <프라미싱 영 우먼>과 같은 영화 또한 제작하게 된다. 덧붙이자면 로비는 2011년 드라마 <팬 암>에 출연할 당시 많은 질문을 던졌던 촬영감독으로부터 영화 촬영기법과 관련된 책을 받기도 했을 만큼 영화 제작에 관심이 많았으며, 언젠가 연출을 하고 싶다는 생각 또한 가지고 있다고.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고 싶지 않아 했던 역할”을 추구했던 마고 로비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성공 이후 대형 프랜차이즈 영화와 소규모 아트하우스 영화를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에 두루 출연해왔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에 앞서 윌 스미스와 호흡을 맞췄던 범죄 로맨틱 코미디 <포커스>, 선택의 기로에 선 독실한 소녀를 연기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드라마 <최후의 Z>, 성공에 대한 열망을 지닌 종군기자로 분한 <위스키 탱고 폭스트롯>, 미투 운동의 도화선이 된 <폭스> 뉴스 성희롱 소송 사건을 극화한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1930년대 미국 텍사스의 황무지를 배경으로 매혹적인 은행 강도 역할을 소화한 <드림랜드>까지…. 로비가 선택한 영화들이 모두 흥행에 성공하거나 비평적 찬사를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다채로운 소재의 영화와 역할에 부지런히 도전하며 카멜레온 같은 발자취를 남겨왔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아이, 토냐>

로비는 특히 다양한 시대적 배경의 ‘실제 인물’을 연기한 세편의 작품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그 하나가 <메리, 퀸 오브 스코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다. 메리 1세(시얼샤 로넌)에 비해 비중은 적지만 그와 팽팽한 경쟁관계를 유지하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메리와 유일하게 대면하는 후반부 시퀀스에서 욕망과 두려움으로 무너져내린 엘리자베스의 내면을 표현하는 섬세한 연기가 돋보인다.

마찬가지로 적은 분량이었지만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 로비가 재현한 1969년 일상 풍경 속 샤론 테이트의 모습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고 절실한 감정을 담아낸다. 시나리오를 막 완성했을 즈음, 로비로부터 함께 일하고 싶다는 ‘운명’ 같은 편지를 받았다는 타란티노 감독의 말처럼 로비는 “샤론의 천진함과 순수함”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아이, 토냐>에서 몰락한 피겨 스타 토냐 하딩이 1994년 올림픽 경기를 앞두고 화장하는 장면 또한 보는 이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는다. 두려움과 불안, 외로움과 절망이 담긴 내면을 복잡한 표정으로 드러낸 로비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자신과 같은 호주 출신 명배우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를 존경하고, 사생활 노출이 적은 점 또한 닮고 싶다고 말하는 마고 로비. “함께 일하고 싶은 감독이 아직 많다”던 그의 야무진 소망은 차근차근 이뤄지고 있는 중이다. 데이미언 셔젤, 데이비드 O. 러셀, 그레타 거윅, 웨스 앤더슨 등 쟁쟁한 감독들과의 작품이 차기작 리스트에 줄지어 올라와 있는 배우 마고 로비는 앞으로도 ‘예측 불가능’한 모습으로 관객의,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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