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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절의 항목을 근거로 재배열의 행위를 자극하는 것은 이 세계에서 무엇이 어떻게 존재하는가를 인식하기 위한 존재론적 질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나누도록 하고, 변환하게 하는 것은 인식을 구성하는 우리의 에피스테메, 즉 인식가능성의 조건이다. 관행적인 되풀이를 불안정하게 하고, 틈새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배열 집합들과는 전혀 다른 인식의 조건을 내걸어야만 하는 것이다.
<꽃섬>에서 달라 보이는 것은 언제나 다른 것이 아니다. 남편과 두식이 닮아 있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달라 보이는 것이 꽃섬의 질서에 의해서 같은 장력 위에 동일한 것이 될 수도 있음을 표상한다. 말하자면, 여기에는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 동일자로부터 타자를 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의심에 찬 질문이 들어 있다. 인식에 대한 문제제기에 있어서 혜나 어머니의 친구, 박희진에 대한 오해는 정확히 그 반대의 경우에 있다. 다른 것이 같을 수 있다면, 맞다고 생각했던 것은 틀릴 수도 있다. 역설적으로 이 영화에서
제7회 <씨네21> 영화평론상 [7] - 이론비평요지_<꽃섬>의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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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팅 투 킬-인디 프로듀서는 문제적 영화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장벽을 돌파해왔는가’. 자신의 영화 여정을 담은 책의 제목처럼, 크리스틴 바숑은 미국영화계에 풍부한 논쟁을 제공해온 독립영화의 프로듀서다. 토드 헤인즈의 91년작 <독약>을 필두로 그가 제작한 영화들은 저예산의 열악한 제작여건 속에서 분투해왔고, 동성애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도발적인 진술로 이성애 중심 사회의 편견에 문제를 제기했다. 96년 영화사 킬러 필름즈를 설립하고 더욱 다양한 독립영화 제작에 힘을 쏟고 있는 바숑을 전주에서 만났다.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 마련된 회고전을 계기로 한국을 찾은 바숑은 미국 독립영화의 대모란 수식어가 어울리게 넉넉한 인상이었다. 그녀 자신도 레즈비언으로 여자친구와 입양한 딸과 함께 대안가족을 이뤄서 살고 있다.제작자로 처음 이름을 올린 <독약>은 90년대 초반 뉴퀴어시네마라 불리는 흐름의 시작이라 할 만하고, <키즈> <소년은 울지 않는다> 등등
미국독립영화계의 대모 크리스틴 바숑, 7문7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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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년생인 크리스틴 바숑은 70년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마틴 스코시즈, 피터 보그다노비치, 로버트 알트먼 등이 미국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이끌던 ‘전설적인 시절’에 열성적인 관객이었다. 뉴욕에서 나고 자란 그는 뉴아메리칸시네마와 유럽 예술영화를 찾아 극장을 드나들며 10대를 보냈다. 브라운대에서 기호학을 전공한 뒤 파리에서 줄리아 크리스테바, 크리스티앙 메츠 등과 영화에 대한 토론을 나누며 1년을 보냈다. 뉴욕으로 돌아오자마자 영화현장에 뛰어들었다. 뉴라인시네마의 공포영화를 비롯해 많은 영화들에서 제작부 조수로 커피를 나르는 잔심부름부터 프로덕션 로케이션 매니저, 프로덕션 매니저를 거치면서 제작 자체에 매력을 느꼈다고. 바숑은 80년대 중반 대학 동창인 토드 헤인즈와 어패러투스 프로덕션을 만들었고, 3년간 약 15편의 단편영화를 만들면서 ‘경영 연습’을 치렀다. 91년 첫 장편영화 <독약>으로 프로듀서에 입봉한 뒤, <졸도> <고 피쉬> <키
크리스틴 바숑과 킬러필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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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전주영화제는 남미영화의 변화를 가장 주목할 경향으로 내세웠다. 군부의 몰락과 경제적 불안 속에서도 그들은 동시대 젊은이들의 삶을 관찰하거나 혼자 힘으로 자신만의 영화를 완성시켰다. 쫓기듯 떠난 땅에 다시 돌아와 공감을 끌어내는 데 성공한 이도 있다. 올해 전주를 찾은 남미 감독은 <삼인조 택시강도>의 올란도 루버트와 <자유>의 리산드로 알론소, <끽연구역>의 베로니카 첸 세명. 이중 망명지에서 칠레로 돌아온 루버트와 과거 제3영화를 알지 못하는 26살의 젊은 아르헨티나 감독 알론소를, 전주영화제 서동진 프로그래머가 만났다. 스무살 차이가 나는 두 감독은 과거의 영화에 대해선 반대의 입장을 보이면서도 현재의 영화에 관해서는 서로 깊은 교류를 나눴다.“이전 세대로부터의 영향 거의 없다”서동진 이번 전주영화제에서 남미영화가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모두 아시아 지역을 처음 찾았다. 먼저 올란도 루버트 감독에게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루
서동진 vs 남미영화의 기수들 올란도 루버트와 리산드로 알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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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란도 루버트와 <삼인조 택시강도>올란도 루버트는 아옌데가 집권하던 시절 칠레에서 본격적인 영화작업을 시작했다. 아옌데 정권은 세계에서 최초로 선거를 통해 수립된, 시대의 희망이 집결됐던 정권. “사회가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영화인뿐 아니라 모든 예술인이 아옌데에게 열광했다”고 말하는 루버트는, 아옌데가 군부에 살해된 뒤 작업중이던 노동운동 다큐멘터리를 들고 망명길에 올랐다. 이번 전주영화제를 찾은 <삼인조 택시강도>는 루버트가 오랜 객지생활을 청산하고 칠레로 돌아와 만든 첫 장편이자 그의 세 번째 영화이기도 하다.<삼인조 택시강도>는 말 그대로 택시를 타고 강도행각을 벌이며 돌아다니는 세 남자의 이야기다. 택시기사 율리시스는 성실하게 살면서 할부금을 갚고 싶지만 협박에 못 이겨 강도질에 동참한다. 그러나 차츰 액수가 커지면서, 율리시스는 한꺼번에 할부금을 갚고 편안히 살고 싶다는 유혹에 빠진다. 역설적인 것은 나머지 두
<삼인조 택시강도>와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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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극장, 비디오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영화관의 3분의 1도 채 안 되는 대여료에 섹스이건 잔혹한 폭력이건 상관없이 나만의 영화를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것. ‘비디오 오리지널’, 즉 극장에서 개봉을 하지 않는 비디오 전문영화인 일본의 V시네마는 이러한 배경에서 태어났다. 주로 20대 남성을 타깃으로, 그들만의 독특한 취향을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일본의 V시네마는 89년 <크라임 헌터>로 시작했다. 10년의 세월이 흐르고, 비디오의 황혼이 찾아온 지금도 여전히 1년에 100여편이 제작되고, V시네마에서 출발한 미이케 다카시라는 거장도 낳았다. 스타와 장르라는 두 가지 안전판 사이에서 철저하게 상업적이고, 또 그만큼 자유로운 실험이 가능했던 V시네마는 그러나 이제 전환점에 서 있다.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이미 전성기가 지난 일본 V시네마의 역사를 돌아보는 것은, 우리에게 부족한 장르영화의 가능성을 찾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일본 V시네마
B급영화광 김봉석, 일본 V시네마 현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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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시네마의 특징은 폭력과 섹스다. 주요 타깃이 젊은 남성이고, 그들이 원하는 것은 마음의 양식보다는 순간적인 쾌락과 즐거움이다. V시네마의 대표적인 장르들 역시, 그들의 기호에 맞는 액션물과 이른바 H물(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에로물)이다.V시네마의 선두주자인 도에이비디오의 주력부대는 야쿠자물이다. 과거 극장용 영화에서도 <의리없는 전쟁> 등 히트 시리즈를 내며 야쿠자영화의 본산이었던 도에이의 전통은 V시네마에서도 이어진다. <수라가 간다>와 <헤이세이잔협전> 시리즈를 필두로 <오사카 야쿠자전쟁> <인의> <극도전국사> <수령에의 길> 등 다양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야쿠자물은 야쿠자 조직의 암투와 항쟁, 살인과 패싸움 등을 그리고 있다. 야쿠자물과 흡사하지만, 조직화되지 않은 거리의 싸움을 그린 액션물도 있다. 등장인물은 주로 학교의 불량학생들이나 폭주족 또는 야쿠자가 되기를 원하는 양아치들이다. 만화를 원작
V시네마 대표 장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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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케 다카시는 V시네마가 낳은 거장이다. 조장의 자리를 물려받은 고등학생이 자신의 친위부대를 이용하여 야쿠자들과 싸우는 황당무계한 액션영화 <후도>로 시작하여, 영화판의 규칙을 지키면서도 모든 상식과 질서를 뛰어넘는 도발적이고 의미심장한 영화를 끊임없이 만들어왔다. 미이케 다카시는 카오스 그 자체이면서도, 결코 혼돈의 늪에 빠져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상업적인 장르영화를 만들면서 미이케 다카시는 한계를 돌파하며 성장하고, 또 자신의 획기적인 스타일을 만들고 발전시켜왔다. 최종심급은 환경이 아니라, 결국은 감독 자신인 것이다. 이제 전세계가 인정하는 거장으로서, 일본 젊은 감독들의 ‘꿈’이자 ‘목표’가 된 미이케 다카시는 여전히 V시네마를 만들고 있다. 가끔 대작을 만들기도 하고, TV드라마도 만들지만 V시네마를 외면할 이유란 없는 것이다. V시네마는 비디오용 영화이기 이전에, 엄연한 영화이니까.감독으로 데뷔하기 이전에는 무엇을 했나.나는 오사카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V시네마가 낳은 거장, <비지터Q><고로시야 이치>감독 미이케 다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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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게 빛나는 밤거리를 달려가는 사내, 거칠게 터져나오는 주먹. 남자들의 거친 이전투구로 인상지어지는 V시네마가 세상에 첫선을 보인 지 10년이 넘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1년에 100편이 넘는 V시네마가 제작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할리우드와 다른 색깔의, 일본만의 액션영화를 키운 V시네마의 현장에서 성장해온 3인의 배우, 제작자, 감독을 만났다.야쿠자보다 더 야쿠자 같은 카리스마를 지닌 V시네마 최고의 스타 아이카와 쇼, ‘일본영화는 죽지 않았다’고 당당히 선언하는 제작자 구로사와 미쓰루, 마카로니 웨스턴이 낳은, 미이케 다카시를 꿈꾸는 감독 무로가 아쓰시가 이야기하는 V시네마의 성장과정과 매력, 그리고 DVD시대의 대책은 무엇인가. V시네마 현장에서 일본영화가, 장르영화가 건재함을 증명하는 일본 V시네마 3인의 사자왕들에게 어제의, 오늘의, 내일의 V시네마에 대해 물었다. 편집자“여성들도 처음에는 싫어하지만 한번 보면 팬이 되지”V시네마 최고의 스타 아이카와
V시네마의 ‘현재’, 배우 아이카와 쇼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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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작이 낳은 인재 발굴이 V시네마의 역할”V시네마 제작사 도에이비디오 전무 구로사와 미쓰루(黑澤滿) 인터뷰도에이비디오가 V시네마를 출범시켰을 때, 진두에서 모든 것을 지휘한 사람은 구로사와 미쓰루였다. 10년 동안 V시네마를 지켜온 구로사와는, 백발에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일본영화는 죽지 않았다”고 말한다. V시네마는 일본의 장르영화를 지켜왔고, 인재를 키워내는 산실이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구로사와의 얼굴에는 단호한 자신감이 비친다. 지금도 도에이비디오에서 만들어지는 V시네마의 제작자 이름에는 구로사와 미쓰루가 올라 있다.V시네마의 주요 타깃은 누구였나.비디오를 빌리는 연령층을 조사해보니, 1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의 남성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먼저 야쿠자영화를 만든 것도 이들 연령층이 좋아하는 취향을 맞춘 것이다. 그것이 딱 맞아떨어졌다.당시 감독들은 비디오용 영화를 만드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나.전혀 없었다. 극장용을 만들던 감독들도 기꺼이 환영했고, V시네마 자체가 조감
V시네마의 ‘현재’, 구로사와 미쓰루 · 무로가 아쓰시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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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은 자칭 임권택 팬클럽회장이며, 허문영은 그 팬클럽회장에게 <취화선> 촬영동행기를 청탁해 그걸 50페이지에 걸쳐 실은 잡지의 편집장이니 이 인터뷰에 내부자 거래의 혐의를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성일은 거의 스탭처럼 촬영현장을 오가면서 장면에 따라서 20, 30회 이상 봤고, 임권택 인터뷰집을 10여년전에 펴낼 정도로 임 감독의 영화세계를 누구못지 않게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어서, 임 감독의 인터뷰어라면 가장 적임자다. 허문영은 참관자의 입장을 자처하고 따라갔다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몇마디 끼어들게 된다. 두 사람은 내부자 거래의 혐의를 벗기 위해 사전 작전회의도 가졌다는 후문이다.<취화선>을 누구못지 않게 애타게 고대했을 이 두 사람을 맞는 임권택 감독은 초등학교 은사가 옛 제자를 맞이하는 듯 함박꽃 환하게 핀 표정이었지만, 한편 이들이 쏟아낼 질문 공세를 떠올리는지 일말의 긴장감도 내비쳤다. 특히 두 사람이 이날 오전 8시부터 ‘작전회의’를 가졌다
정성일 · 허문영, 임권택 감독을 만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