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PD 이태곤
고 최진실과 함께한 작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2007) 연출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은 드라마 기획 자체가 30대 말에서 40대 초에 있는 아줌마의 자아찾기였다. 꿈이니 연애감정 같은 것을 잃어버릴 나이에 설렘을 던져주자는 것이었다. 기획자들과 나를 포함해 스탭 모두 이구동성으로 꼽은 배우가 최진실이었다. 연락했더니 최진실씨도 너무 좋아했다. 우선 연령대가 적합했고, 그가 <질투>를 통해 트렌디드라마의 시초를 열면서 현대식 신데렐라 스토리/로맨틱코미디에 가장 잘 어울렸던 배우 중 하나였으니까. 결혼해서 아이도 있지만 왕성하게 일하고 있고, 과거가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니었으니 본인의 이야기와 캐릭터가 맞는 부분도 있었고.
최진실씨와는 <그대 그리고 나>(1997)에서 조연출을 할 때 처음 만났다. 딱 10년 만에 다시 만난 셈이었는데 변한 게 없었다. 단지 엄마가 됐고, 이혼한 상태였다는 것뿐 여전히 예뻤
[추모! 최진실] 좋은 어머니상을 가진 배우로 늙고 싶어했다 -이태곤
-
전 KBS PD 김종창
고 최진실과 함께한 작품: <장밋빛 인생>(2005) 연출
처음부터 최진실을 <장밋빛 인생>에 캐스팅하려고 했던 건 아니다. 최진실이란 이름만 꺼내도 주변에서 만류하던 분위기가 있었는데, 다른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때 최진실도 공백기를 좀더 가지고 싶었던 것 같았는데 이 작품 시놉시스를 보고 재기가 가능한 작품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캐스팅 단계에서 한번 만나게 됐는데 다툼이 생겼다. 일종의 기싸움이었던 것 같다.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를 캐스팅하기로 생각한 만큼 난 최진실이 기존의 예쁘고 발랄한 이미지를 버리고, 무에서 유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진실 본인은 자신의 배우 경력이 십 몇년인데 이런 오디션 자리를 와야 하느냐며 자존심이 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뒤로 재차 만나면서 오히려 조율이 쉬웠다. ‘머리를 어떤 식으로 펌했으면 좋겠다’ 같은 내 요구도 다 들어주면서 자신의 의견도 적극
[추모! 최진실] 온몸으로 말거는 연기자 -김종창
-
OBS 경인TV 사장, 전 MBC PD 주철환
고 최진실과 함께한 작품: OBS <진실과 구라> 기획,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
처음에 만난 건, MBC 대학생 퀴즈프로그램인 <퀴즈 아카데미> 때 그가 게스트로 출연하면서였다. 프로그램 중간에 나와서 문제를 읽어주는 역할이었는데, 당시 인기 연예인들이 나오는 자리였고 최진실씨는 CF모델로 유명해져 있었다. 방송 녹화를 하다 중간에 쉬는 시간이 되면 대학생들이 우르르 전부 나와서 그에게 사인을 받아갔던 기억이 있다. <우정의 무대>란 프로그램을 내가 맡았을 때도 출연 요구에 즐겁게 응해줬다. 내가 그 프로그램을 1년 연출했는데 그 사이에만 4번이나 나와주었다. 내가 OBS로 옮겨 온 뒤 <진실과 구라>를 하게 된 것도 그런 인연이다.
<피디저널>에 조시(弔詩)를 기고했다. 제목은 <굿바이 캔디>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라는 구절처럼
[추모! 최진실] 구김살없는 단 하나의 표정 -주철환
-
배우 안성기
고 최진실과 함께한 작품: <남부군>(1999)
<남부군>을 제작한 영화사가 대한극장 건너편에 있었는데, 배병수 매니저가 진실씨를 데리고 왔고, 그때 처음 봤다. 그늘지지 않고 상큼하고 발랄한, 그 시대에 보기 드문 캐릭터였다. 아무래도 암울한 시대를 거치다보니 그 당시 배우들은 어두운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몸에 배어 있었는데, 최진실의 경우 빨치산을 돕는 간호사 역할을 맡았는데도 밝은 분위기가 났다. 우리와는 다르구나, 세대도 다르고 느낌도 새로운 새 시대의 배우가 나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그 이미지가 나중에도 계속되더라.
최진실은 실제로도 밝고 명랑한 아이였다. 무엇보다도 잘 웃었다. 입을 다문 채 코맹맹이 소리로 ‘흥흥흥’ 웃었지. <남부군>의 박민자가 쉬운 역할은 아니었는데 긴장은 안 했던 것 같다. 정 감독님 얘기도 잘 따랐고. 처음에는 도시적이고 현대적인 이미지라 솔직히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는데
[추모! 최진실] 새 시대의 배우의 등장 -안성기
-
-
올댓시네마 대표 채윤희
고 최진실과 함께한 작품: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0) 기획, <고스트 맘마>(1996) 홍보마케팅, <단적비연수>(2000) 홍보마케팅
웃는 모습이 참 예쁜 배우였다. 배우들과 일하다보면 속 썩을 일들이 생기는데, 최진실씨는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그렇게 활짝 웃으며 다가오면 그전에 속상했던 마음들이 눈녹듯 사라지곤 했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때도 그의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그 모습 하나만으로 포스터를 만들기도 하고 그랬다.
동생 같고, 바로 옆집에 사는 친구 같은 이미지가 강했다. 그전까지는 여배우라고 하면 가까이하기 힘든 느낌이 컸다. 강수연이나 심혜진, 이미숙 같은 여배우들이 모두 그런 이미지였으니까. 근데 진실씨는 이웃 같은 느낌이 있었고 그가 하는 역할들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었고. 그런 편안함이 사람들에게 먹히지 않았나 싶다.
[추모! 최진실] 타인까지 웃게 하는 환한 미소 -채윤희
-
감독 박제현
고 최진실과 함께한 작품: <단적비연수>(2000) 연출
<단적비연수>를 만들 당시 나는 신인감독, 최진실은 당대 최고 여배우였다. 그런데 캐스팅 제의를 했을 때 답이 너무 빨리 와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녀는 영화를 하고 싶다는 열정이 굉장히 강한 배우였다. ‘배우의 꽃은 영화’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도전적인 얘기를 많이 했다. 편하게 대해라, 시키고 싶은 거 다 시켜라, 예쁜 분장 아니라도 상관없다, 고 했다. 한마디로 존경할 만한 배우였다.
최진실은 나와 동갑이었는데 워낙 연기 경험도 많고 현장 경험도 많아 사람들을 이끄는 포스나 영화에 임하는 자세가 남달랐다. 예를 들면 A급 배우들만 모아놓다 보니 스케줄 조율하기가 힘들었는데, 진실씨가 항상 먼저 나서서 “야, 나도 그날 광고 있어. 그거 안 하고 올 테니 너도 와라” 하며 중재 역할을 맡곤 했다. 신단으로 끌려가는 장면을 찍을 때는 갯벌에서 촬영하느라 시간이 촉박했는데,
[추모! 최진실] 이런 열정은 처음 봤다 -박제현
-
씨네2000 대표 이춘연
고 최진실과 함께한 작품: <마요네즈>(1999) 제작
<마요네즈> 전에도 인연이 있었다. <남부군>이 제작 준비 중에 있을 때 매니저가 그를 영화계에 데려왔고, <남부군>에 캐스팅될 수 있도록 도와준 역할을 했다.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보니 같이 일하고 싶은 느낌이 있었고 그래서 <남부군>팀에 추천한 거였다. 동생인 최진영도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1990)에 출연하려 한다고 해서 그의 어머니까지 셋이 자주 만났고, 그래서 각별한 심정을 가지고 지냈다. <마요네즈>를 할 땐 이미 큰 배우가 되어 있었다. 캐스팅하게 된 계기는 김혜자 선생의 뜻이 컸다. ‘세상의 모든 엄마와 자식들이 이 영화를 보게 하자’는 의도로 기획한 영화였는데, 어머니 역할을 맡은 김혜자 선생이 자기 딸 역할을 진실이가 해줬음 좋겠다고 얘기하셔서 캐스팅하게 된 셈이다. 함께 작업하면서 조카 같
[추모! 최진실] 내 살붙이 같은 아이 -이춘연
-
감독 윤인호
고 최진실과 함께한 작품: <마요네즈>(1999) 연출
첫인상. 깍듯했다. 다른 사람들이 사적으로 끼어들 틈이 없을 정도로 예의 바른 사람 있잖나. 지금 생각하면 마음을 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한번 (마음이) 풀어지기 시작하니 그 속도가 엄청났다. 어느 순간부터 속얘기를 많이 하더라. “내겐 20대가 없었다”는 말을 많이 했다. 이 사람 저 사람 손에 이끌려 촬영현장에서 20대를 보낸 것에 지친 것 같았다. 오죽하면 “세트장 들어오는 시간이 제일 편하고 좋다”는 말을 했겠나.
진실씨는 어떤 배우가 될 것인지 많이 고민했었다. <마요네즈>도 기존의 이미지를 바꿔보고 싶은 생각에 선택한 작품이었는데, 그러다보니 겁을 먹은 것 같았다. “난 연기에 소질이 없다”거나 “김혜자 선생님처럼 타고난 연기자였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민폐가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많이 했다. 이런 문제로 눈물을 보인 적도 있었다. 그래서
[추모! 최진실] 스타보다 배우이고자 -윤인호
-
감독 이정국
고 최진실과 함께한 작품: <편지>(1997) 연출
최진실은 처음부터 <편지>의 주인공은 아니었다. 비슷한 시기에 출연한 <베이비 세일>(1997)이 잘 안 되는 바람에 제작사에서 반대를 했었지. 그런데 나는 자꾸 최진실 생각이 나더라. 함께 거론했던 다른 여배우들은 그냥 예쁘고 아름다웠는데, 최진실은 눈가가 촉촉히 젖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이미지가 멜로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적극 추천했다. 당시 박신양이 떠오르는 신인이었잖나. 그가 촬영할 때는 치열하게 몰입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던 반면 최진실은 무척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아미를 연기했다. 그래서 스탭들끼리 “역시 관록있는 배우”라고들 했다. 그리고 스탭들에게 정말 잘했다. 광릉수목원에서 키스하는 장면을 찍을 때였나. 쉬는 시간에 스탭들 볼에 일일이 뽀뽀를 해주고 있더라. 그걸 보면서 톱스타인데 이런 면도 있네, 하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눈물 흘리는 장면을 하루
[추모! 최진실] 넘치고 넘치는 감수성 -이정국
-
감독 한지승
고 최진실과 함께한 작품: <고스트 맘마>(1996) 연출
최진실은 내가 상상했던 <고스트 맘마>의 여주인공 그 자체였다. 이건 개인적인 취향일 수도 있겠는데, <고스트 맘마>를 준비하면서 우울해 보이는 연기자보다 슬프지만 희망의 여지도 남길 수 있는 여배우를 찾고 있었다. 그런 맥락에서 최진실만큼 딱 맞아떨어지는 배우는 없었기 때문에 당시 매니저였던 김정수씨를 통해 캐스팅했다.
워낙 내가 원했던 캐릭터를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 굳이 어떤 연기를 원한다고 주문한 적은 없었는데, 본인이 알아서 (연기를) 잘했던 기억이 난다. 그녀는 대사나 리액션을 그냥 하는 게 아니라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줄 아는 배우였다. 20대에 아이 있는 엄마 역할을 맡았는데도 나이의 한계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정말 열정적으로 연기를 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한번은 촬영을 한창 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진실과 연기 방향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나도
[추모! 최진실] 자기만의 대사나 리액션을 만들 줄 알더라 -한지승
-
감독 장길수
고 최진실과 함께한 작품: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1991) 연출,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1994) 연출
최진실씨 인기가 한창 좋을 때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을 함께하게 됐다. 그때의 최진실은 <나의 사랑 나의 신부>와 전자제품 광고가 연달아 히트하면서 사랑스러운 새댁 이미지를 강하게 갖고 있었다. 온갖 작품들의 제의가 밀려들었을 텐데 본인도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을 택한 셈이었다. 배우로서 하기 어려운 역할인 건 당연했다. 대사는 한국말이 거의 없이 외국어였고, 그것도 영어도 아닌 스웨덴어였다. 그리고 매우 비극적인, 불행한 여자 이야기였다. 그래도 본인은 ‘난 이런 역할 자신없어’가 아니라 ‘한번 도전해보겠다’라는 생각을 분명히 갖고 있었다. 당시 석달간 스웨덴에 가서 살면서 스웨덴어를 열심히 배웠고, 한글로 발음을 옮겨 쓴 대사들을 열심히 외워서 잘했다. 결과적으로 연기가 좋았다는 평은
[추모! 최진실] 도전, 그리고 또 도전 -장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