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일 저녁 8시20분. 시청자는 갑자기 없던 딸이 생긴다. KBS2 일일드라마 <너는 내 운명>의 고아 새벽, 가진 거 하나 없는 그녀가 겪는 모든 고행 앞에 시청자는 기꺼이 새벽의 편이 됐다. 발로 해도 그보다 더 연기를 잘하겠다는 의미로 ‘발호세’라고 명명되는 연기자가 주연을 맡아도, 시어머니와 생모가 똑같이 백혈병에 걸리고 새벽과 골수가 일치한다는 사실과 동떨어진 설정에도, 시청자는 방송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브라운관으로 모여든다. 시청률 40%대로 부동의 1위를 지키는 <너는 내 운명>의 신화는 이제 독한 설정과 캐릭터로 중무장한 괴물드라마 SBS <아내의 유혹>까지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
퀄리티가 낮아질수록 시청률은 올라가는 이상함수. 저렴한 제작비, 익숙한 기획으로 구색 맞추기처럼 제작되던 일일드라마는 이제 드라마 시장을 잠식하는 절대강자로 군림하게 됐다. 한국 드라마의 구조적 후퇴가 낳은 변종 드라마, 이른바 막장드라마로 명명되는 이들
[막장드라마의 모든 것] 막장드라마 전성시대!
-
<작전명 발키리>가 지난해 12월25일 크리스마스에 전미 개봉했다. 첫주 흥행성적은 2952만달러다. 나쁜 성적은 아니지만 톰 크루즈와 브라이언 싱어의 귀환으로는 조금 겸손한 수치다. 모든 비평가들의 환대가 좋은 것도 아니다. 확실히 <작전명 발키리>는 모두의 기대와는 조금 다른 영화다. 감정의 진앙을 뒤흔드는 오스카용 서사극도 아니고 톰 크루즈의 영웅적인 카리스마를 등에 업고 달려가는 스펙터클도 아니다. 하지만 <작전명 발키리>는 <유주얼 서스펙트>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날씬한 스릴러인 동시에 <엑스맨>과 <수퍼맨 리턴즈>를 잇는 또 하나의 브라이언 싱어표 히어로 영화다. 1월22일 개봉을 앞둔 <작전명 발키리>를 사전 시사를 통해 미리 관람했다.
히틀러를 암살하려던 사람들은 많았다. 이를테면 평범한 독일 목수 게오르그 엘저의 케이스. 그는 1939년 수제 시한폭탄을 히틀러가 연설할 예정이었던 연단에 몰
[must see] <작전명 발키리> 히틀러 암살 모의 서스펜스
-
프랑스 누벨 이마주의 신성이었던 뤽 베송은 어느덧 세계 상업영화계의 촉망받는 제작자가 됐다. 나라의 경계를 넘고, 각국 배우들을 뒤섞으며, 홍콩 액션스타일과 익스트림 스포츠 파쿠르를 결합하더니 온전히 그만의 영화제국을 만들었다. 이제 그에게 할리우드와 유럽의 경계란 없다. 더불어 루이 레테리에, 피에르 모렐, 크리스 나흔 등 그가 양성한 후배들은 어느덧 속속 할리우드 메인스트림으로 진입하는 중이다. 저 멀리 <택시> 시리즈부터 이연걸과 제이슨 스타뎀을 경유해 <트랜스포터>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뤽 베송 사단의 화려한 면모를 살펴본다.
<트랜스포터: 라스트미션>에서 프랭크(제이슨 스타뎀)와 발렌티나(나탈리아 루다코바)는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헝가리로 향한다. 여권도 필요없다. 그냥 수백 킬로미터를 마치 서울에서 부산 가듯 일단 떠난다. 흔히 미국 로드무비에서 볼 수 있는 한밤의 모텔도 없다. 그냥 일일생활권처럼 느껴진다. 그 사이 뮌헨까지 100km가
‘뤽 베송 제국’의 태양은 지지 않으리
-
네모칸 속 그림들이 답답한 틀을 벗어버리고 넓은 스크린 위에서 살아 움직인다면? 만화책을 읽으면서 누구나 한번쯤 품어봤을 상상이다. 요시나가 후미의 만화를 토대로 한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에 이어 만화에서 영감을 얻은 영화들이 계속 탄생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화전문지 <팝툰> 기자들이 영화화할 만한 만화들을 추천했다.
한국 히어로만화의 선구자
<트레이스> 고영훈
‘다음 만화속세상’에서 꾸준한 인기를 누리는 웹툰 <트레이스>의 캐치프레이즈는 ‘한국형 히어로만화’다. 30여년 전 갑자기 정체를 알 수 없는 트러블과 트레이스가 나타났다. 때로는 괴물의 모습으로 때로는 인간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트러블은 인간을 무차별 공격하고, ‘트러블의 흔적’이라 불리는 초능력자 트레이스가 유일하게 그들에게 맞설 수 있다. 인간이면서 특수한 능력을 지닌 트레이스는 일종의 돌연변이다. 미국 드라마 <히어로즈> 혹은 영화 <엑스맨&g
[영화화 추천 만화] 네모칸 뚫고 스크린에서 놀자
-
-
영화사 사람들에게서 종종 질문을 받는다. “괜찮은 이야기 없어요? 읽어볼 만한 책 있으면 추천해주세요.” 사람마다 보는 눈은 다르겠지만(보고 싶은 것도 다르겠지만), “영화화를 염두에 둔다면 이 이야기 어떨까” 하는 소설들을 모아보았다.
탐정, 도시의 어둠을 살다
<살인자에게 정의는 없다>
조지 펠레카노스 지음/ 황금가지 펴냄/ 장르 스릴러, 액션
요즘엔 탐정보다 경찰이 주인공인 액션영화가 인기다. 첨단 장비를 활용한 전문적인 수사 기법이 범죄물의 대세가 되면서 더욱 그렇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탐정에게 끌린다. 경찰이 아니면서도 나름의 정의를 위해 악과 싸우는 탐정은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하는 야수 같은 존재다. 위법과 폭력의 경계선을 넘나들어야 하는 기구한 운명의 탐정은 하드보일드의 주인공으로 적격일 수밖에 없다.
조지 펠레카노스가 창조한 워싱턴의 사립탐정 데릭 스트레인지는 중년에다 흑인이니 주류 어디에도 낄 수 없는, 존재 자체가 아웃사이더인 캐릭터다.
[영화화 추천 소설] 제2의 <아내가 결혼했다>를 찾아라
-
왠지 숨가쁠 것 같다. 관객 500만명을 동원한 <추격자>의 감독이 만드는 차기작은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내리 40시간 좁은 골목길을 내달리는 엄중호의 심경만큼이나 절박할 것 같다. 그러나 한창 시나리오 작업에 매진중인 나홍진 감독의 템포는 조금 다르다. ‘천천히, 아직도 구체적인 구상을 모두 마친 상태는 아니’라는 말로 한 발짝 물러선 채, 그는 자신의 차기작 <살인자>(가제)에 대해 조곤조곤 말문을 연다.
<살인자>는 옌볜에 사는 한 조선족의 이야기다. 한국에 밀입국한 부인의 실종 이후, 옌볜에 남아 있던 남자가 밀항을 하고, 굶주림에 지쳐갈 즈음 ‘어떤 사건’(이 사건이 영화를 끌어가는 동기를 제공하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비밀에 붙여둔다)을 맞닥뜨리면서 이내 살인까지 저지른다는 내용.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을 모델로 했던 전작과 달리 이번 작품에는 특정 참고 모델이 없이 온전히 취재에 기인한 창작물이다. 사실 그가 자신의 사정거리에서 한참
[이 감독의 신작이 궁금하다] 나홍진 감독의 <살인자>(가제)
-
김상진 감독이 다시 주유소를 털러 나섰다. 첫 번째 습격 이후로 딱 10년 만이다. 강산도 변할 세월이 지난 작품을 다시 들고 나왔지만, 이만큼 ‘김상진답다’고 할 작품이 있었나 싶기도 하다. 현실에서는 어울리지 않을 사람들이 함께 난장을 벌이고, 그 속에서 권력관계가 역전되는 상황을 드러내는 김상진 식의 코미디는 <주유소 습격사건>을 통해 첫 시작을 알리지 않았던가. 감독도 <주유소 습격사건>이 유독 예쁜 자식이라는 걸 숨기지 않는다. “결과적으로는 아홉 번째 작품이 됐지만, 원래는 열 번째 작품으로 <주유소 습격사건2>를 만들려했던” 계획도 마찬가지 이유였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 한 가지. 10년 전, 주유소를 습격했던 이들과 10년 뒤인 지금 습격을 감행할 이들의 세대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처럼 <주유소 습격사건2>는 김상진 감독이 자신의 영화적 스타일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지난 10년간 바라본 젊음의 변화를
[이 감독의 신작이 궁금하다] 김상진 감독의 <주유소 습격사건2>
-
<인어공주> <사랑해, 말순씨>의 박흥식 감독이 ‘무협영화’를 찍는다. 칼을 든 무사들이 등장하는 진짜 무협영화다. 감독 본인은 이제 “의외라는 시선들에 신경 쓸 시기가 지났다”고 하지만, 그래도 전작 3편에 이어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까지를 봤을 때 박흥식 감독과 ‘무협’의 관계는 의외의 만남이다. 하지만 이 무사들이 여성이라면 어떨까? 이 경우에는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전작들에서 화장품 가방을 든 여자(<사랑해, 말순씨>)와 때밀이 수건을 든 여자(<인어공주>)를 그렸던 박흥식 감독이 이번에는 ‘칼을 든 여자’를 탐구하는 것이다. 제목하여 <협녀>다.
영화의 배경은 중기에서 말기로 접어드는 고려다. 무신정변이 일어나면서 남자라면 누구나 권력의 아귀다툼에 칼을 들이밀던 이때, 변방에 위치한 어느 항구마을에 세 가족이 나타나 찻집을 차린다. 어미로 보이는 50대의 눈먼 여자는 차를 팔고, 누이로 보이는 20대
[이 감독의 신작이 궁금하다] 박흥식 감독의 <협녀>
-
이번엔 세명의 대통령 이야기다. 시국이 하 수상하니, 이게 대체 뭔가 하고 가자미눈을 뜰 수도 있다. 하지만 장진 감독한테 그런 식의 질문을 던져봤자 소용없다. 그의 머릿속에 오랫동안 품고 있던 아이디어들이 얼마나 많으며, 그것이 가시화되는 시점은 외부 상황과 별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신작 <굿모닝 프레지던트> 줄거리를 듣다보니 괜히 걱정스러워진다. “보는 사람이 ‘특정한 그들’을 떠올린다면 그건 그 보는 사람의 자유에 맡길 일이다.”
먼저 나이든 대통령 A가 있다. 어느 파티장에서 다 같이 복권을 구입하는 이벤트가 있었는데, 하필이면 A의 복권이 당첨된 것이다. 그것도 몇백억짜리! 이제 대통령의 진퇴양난이 시작된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다음 받을 연금이라봤자 1억∼2억원 정도인데, 굴러들어온 호박을 체통 때문에 차버릴 것인가 말 것인가? 다음으로 야당 총수였던 B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젊고 잘생기고 야망과 카리스마가 넘치는, 말하자면 존 F. 케네디와
[이 감독의 신작이 궁금하다] 장진 감독의 <굿모닝 프레지던트>
-
‘이창동 프로젝트’ 혹은 <시>라고도 했다. 잘 이해되지 않는 한줄짜리 시놉시스가 인터넷을 떠돌기도 한다. 2007년 그해에 가장 가혹하면서도 끝내 잊혀지지 않았던 영화 <밀양>을 만든 그의 다음 행보는 어디로 향하는 걸까. 그는 지금 삶의 어느 곳을 들여다보며 그 메마름을 염려하는 것일까.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아는 이가 많지 않았다. 그 비밀에 관해 이창동 감독이 본격적으로 운을 뗐다.
-‘시’라는 제목은 가제인가.
=처음부터 제목은 시였다. 그 밖에 다른 걸 생각해봤는데 딱히 떠오르질 않았다. 어디에는 ‘포에트리’라고도 나와 있던데 그건 실은 영문 제목이다. 포엠(한편의 구체적인 시)이 아니라 포에트리(문학 형식으로서의 시)인 거다.
-인터넷에는 <시>의 내용이 “15살 손자를 구하기 위해(혹은 비행청소년인 손자를 구하기 위해) 할머니가 시를 쓴다”는 좀 이해하기 어려운 한줄 설명이 떠돈다.
=누가 그런 소설을 썼는지는 모르겠는데…
[이 감독의 신작이 궁금하다] 이창동 감독의 <시>
-
구경남(김태우)이라는 영화감독이 있다. 그는 두번의 여행을 간다. 한번은 영화제 심사위원 자격으로 제천을 방문하고 12일 뒤에는 특강을 위해 제주도에 간다. 구경남은 제천에서 공연희(엄지원)라는 영화제 프로그래머를 비롯해 몇 사람을 알게 되고 오랫동안 못 만났던 부상용(공형진)이라는 친구를 만나 그의 집까지 초대받아 부상용의 아내(정유미)와 셋이 술도 마신다. 그 자리가 빌미가 되어 나중에는 뭔가 이상해진다. 그 뒤 선배(유준상)의 초빙을 받아 제주도로 특강을 간 구경남은 화백 양천수(문창길)의 아내가 자신이 예전에 좋아했던 고순이(고현정)라는 걸 알게 된다. 이 두번의 여행길에서 우리는 무엇을 알고 무엇을 잘 알지 못하게 되는 걸까.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얼마 전 완성됐고, 그 아리송한 매력을 마침내 2009년 상반기에 확인할 수 있다. 흥미롭기 그지없는 홍상수식 여행에 관해 홍상수 감독이 지금 말한다.
-촬영 때가 늘 중요하다. 이번에는 어떤 걸 생각하며 찍었나
[이 감독의 신작이 궁금하다]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