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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6_그리스의 거장 테오 앙겔로풀로스 회고전
거대한 역사와 작은 개인이 만나 엮는 시
그리스 출신의 영화감독 테오 앙겔로풀로스를 두고서, 그의 오랜 찬미자인 영화학자 데이비드 보드웰은 독창적인 예술가(original)라기보다는 ‘종합하는 예술가’(synthesizer)라고 쓴 적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보드웰이 이야기하는 종합하는 예술가란 이를테면 프로코피예프나 모딜리아니가 동일한 범주에 속할 때처럼 절대로 부정적인 의미를 갖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보드웰은 앙겔로풀로스의 영화세계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와 장 뤽 고다르 같은 모더니스트들로부터 배운 바를 잘 융합해 구축된 것, 그럼으로써 영화 만들기의 전통이 동시대에 새로이 재건될 수 있음을 생생하게 예증하는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런 맥락에서, 앙겔로풀로스야말로 영화적 모더니즘이 여전히 우리의 눈을 열어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감독이라고 보드웰은 정의한다. (그의 또 다른 경배자인 앤드루 호튼이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 총력가이드 [8] - 테오 앙겔로풀로스 회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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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5_다큐멘터리 : 북한의 일상부터 패스트푸드 실험까지 다큐멘터리 추천작 5편
차가운 세상에 대한 따뜻한 관찰
거짓말이 힘을 갖는 세상이라지만 다큐멘터리는 아직 할말이 많다. 보여줄 것이 너무 많다. 여기 이 영화들은 그 가장 원초적인 진실을 믿는 관객을 감동시킬 준비가 되어 있다.
어떤 나라 A State of Mind
감독 대니얼 고든 l 영국 l 2004년 l 93분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조직적인 매스게임을 펼치는 나라로 꼽힌다. 각종 기념일에 맞춰 펼치는 매스게임은 정치적 내용을 차치한다면, 체조와 음악 등 각종 예술의 오묘한 집합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을 것. 평양에 사는 두 여중생이 초대형 매스게임을 준비하는 모습을 담은 다큐 <어떤 나라>가 흥미로운 것은 단지 오묘한 북한의 매스게임 세계를 보여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영화가 우리의 눈길을 붙잡는 진짜 이유는 박현선과 김성연이라는 두 여중생과 그 가족의 일상생활이 별다른 여과없이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 총력가이드 [7] - 다큐멘터리 추천작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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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4_실험영화 : <열대병> <추방된 사람들> 등 실험영화들 10편
‘천국보다 낯선’ 영화들이 온다
이제 이 신선한 형식으로 무장한 감독들의 이름을 외워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를 일이다. 과거의 구태의연함에 지겨워진 관객이라면 눈이 번쩍 뜨일 영화들이 즐비하다!
<열대병> Tropical Malady
감독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l 타이 l 2003년 l 118분
타이의 신성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세 번째 장편영화인 <열대병>은 낯선 영화다. 영화의 절반은 병사와 소년의 수줍은 로맨스에 할애된다. 두 사람은 따사로운 햇살이 가득한 마을을 거닐다가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영화를 보러가고, 가라오케에서 수줍게 노래를 부른다. 부유하는 행복한 이미지들을 뒤로 하고 밤이 찾아온다. 그러자 그 순간 갑자기 화면이 정지한다. 영사사고가 발생한 것은 아닌지 의아해질 무렵, 영화는 별안간 전반부와 전혀 다른 세계 속으로 관객을 데려간다. 병사는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 총력가이드 [6] - 새로운 영화 1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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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들의 혁명 Revolution of Pigs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 총력가이드 [5] - 다채로운 장르영화 15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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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_대중영화 : <에쥬케이터> 등 다채로운 장르영화 15편
로맨스부터 느와르까지, 관객을 부탁해
너무 긴장하지는 말자. 영화가 우리를 잡아먹는 일은 없을 테니까. 솜씨좋은 이야기꾼에서부터 장르의 숙련가들까지 우리를 마냥 즐겁게 해줄 영화들이 이렇게 많지 않은가!
<에쥬케이터> The Edukators
감독 한스 바인가르트너 l 독일 l 2004 l 126분
독일영화로선 7년 만에 올해 칸 경쟁에 초청받았고, 호평받았던 이 영화를 대중영화로 소개한다는 건 어색하지만 틀린 것도 아니다. 다큐멘터리 느낌으로 촬영했지만 픽션이고, 부자들의 세계를 뒤집고 싶어하는 21세기의 젊은이들과 변절한 68세대를 맞세운 이데올로기극이지만 삼각 로맨스의 갈등이 중요한 축을 이룬다. <굿바이 레닌>으로 우리에게 낯을 익힌 다니엘 브륄은 지금 독일에서 정상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단호하면서도 불안한 눈빛의 그가 맡은 얀은 비폭력적 혁명가다. 친구 페터와 함께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 총력가이드 [4] - 다채로운 장르영화 15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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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_리얼리즘 : 바흐만 고바디 감독 등 리얼리즘의 정수만 모은 8편
치열한 삶의 현장을 재구성하다
현실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그것들이 투사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리얼리즘영화는 그만큼 다양할 수밖에 없다. 리얼리즘은 늘 똑같다는 그 오해를 풀어주기에 충분한 영화들이 여기 있다.
죽은 사람들 Los Muertos
감독 리산드로 알론소 l 아르헨티나, 프랑스 l 76분
형제를 죽이고 감옥에 들어온 남자 바르가스는 반백이 되어서야 출소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딸 올가를 만나기로 한다. 늙은 출소자 바르가스는 도시에서 시골로, 시골에서 밀림으로, 그 밀림에서 다시 외딴섬으로 딸이 옮겨간 자리를 찾아다닌다. 그러나 끝내 딸은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죽은 사람들>은 2001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첫 번째 장편영화 <자유>가 초청되면서 아르헨티나의 신예로 주목을 모았던 리산드로 알론소, 그가 만든 두 번째 장편영화이다. 밀림을 헤매는 몽롱하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 총력가이드 [3] - 리얼리즘의 정수 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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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1_거장 : 이름값을 하는 거장의 작품 9편
쿠스투리차와 허우샤오시엔이 떴다!
거장이라는 말은 거북한 표현이긴 하지만 쉽게 버릴 말은 아니다. 세월을 짊어지고 영화 세계사를 새로 써가는 그들의 노정을 여기에서 확인한다면 동의할 수 있을지도.
사회적 학살 A Social Genocide
감독 페르난도 솔라나스 l 아르헨티나 l 120분
<불타는 시간의 연대기>(1968)로 세계 다큐멘터리사에 한획을 그었던 페르난도 솔라나스의 최근작. 영화는 경제공황으로 최악의 상황에 몰린 아르헨티나의 현실을 되짚는다. 2001년 10월에 있었던 아르헨티나 시민들의 시위장면을 보여주면서 영화를 시작한 페르난도 솔라나스는 질문한다. “도대체 아르헨티나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회적 학살>은 요즘 유행하고 있는 마이클 무어식의 다큐멘터리와는 거리가 있다. 이 영화가 선택한 방식은 질문에 철저히 구조적으로 대답해보는 것이다. 각각 “끝없는 빚더미, 경제 모델, 민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 총력가이드 [2] - 거장의 작품 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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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바다에서 발견의 즐거움을!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가 10월7일부터 15일까지 9일간의 영화축제를 연다. 올해 칸영화제 상영 이후 재촬영과 재편집을 거듭하면서 초유의 화제를 모았던 왕가위의 신작 <2046>이 극적인 과정을 거쳐 마침내 개막작으로 선정됐고, 새로운 스타일의 스릴러로 예상되는 변혁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주홍글씨>가 폐막작으로 결정됐다.
누가 뭐래도 영화제의 즐거움은 좋은 영화, 신나는 영화와의 조우이다. 9일간 총 266편의 장·단편이 상영될 이번 영화제는 예년에 못지않은 관람의 즐거움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굵직한 특별전과 회고전이 눈에 띈다. 먼저 그리스의 거장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장편 전작을 상영하는 뜻깊은 회고전이 준비되어 있다. 앙겔로풀로스는 이번 회고전을 맞아 최초로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기도 하다. 한편, 알렉산더 클루거, 폴커 슐뢴도르프 등 뉴저먼 시네마 기수들의 어제와 오늘의 작품을 마주할 수 있는 독일영화 특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 총력가이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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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위성을 거부하는 도발
개인적 감회부터 시작하자. 난니 모레티의 <아들의 방>에 최고의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안기며 막을 내린 지난 2001년 제54회 칸영화제에서 본 40편가량의 영화들 중 내 뇌리에 가장 강력히 머물러 있는 건 아르헨티나가 낳은 미지의 신예가 쓰고 연출한 <자유>(La Libertad)라는 작품이다. 뭐 예의 걸작 내지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빼어나거나 내 취향에 완벽히 조응해서는 아니다. 그럼에도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선보인 영화는, 그간 극히 다양한 영화들을 적잖이 접해온 내게도 단연 주목할 만했다. 한마디로 그것은 특기할 만한 아무런 극적 사건도 벌어지지 않는 영화의 지독한 사례였다.
극저예산으로 만들어진 게 틀림없는 영화는 겨우 70분여 동안 미사엘이라는 한 사내의 하루 일과를 별 다른 인위적 포장이나 설명없이, 아주 느린 호흡으로 보여준다. 딱히 다큐멘터리라고도 극영화라고도 할 수 없을, 달리 말하면 현실과 허구 사이
거장 예감, 세계의 新星 감독 10인 [10] - 리산드로 알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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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피가 흐르는 여자
이 여자의 영화는 건조하다. 이 여자의 눈매는 냉정하다. 이 여자의 유머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루크레시아 마르텔은 최근 최악의 경제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상승세를 타고 있는 아르헨티나영화를 이끄는 실력있는 여성감독이다. 1966년생으로 35살에 데뷔한 이 늦깎이 여성감독은 대학에서 신문학을 전공하면서, 남는 시간으로 시나리오를 만드는 등 차근차근 감독의 길을 닦아왔다. 그녀에게 ‘보수적이고 인종차별이 심한’ 아르헨티나 북부는 그녀가 창조한 세계의 중심에 해당하는 곳이다. 자신의 영화 모두의 배경이 되는 이 마을을 등 뒤로 하고, 그녀는 아르헨티나의 지배 계급인 백인 부르주아의 타락한 이면을 냉혈동물의 온도 감각으로 예리하게 짚어낸다. 물 웅덩이처럼 깊게 고여 있는 수영장에는 술에 절어 사는 어머니와 서로의 몸을 더듬는 형제 자매들의 성마르고 끈기없는 욕망이 켜켜이 침전해 있다. <늪>과 <성스런 소녀>, 이 두편의 영화는 루
거장 예감, 세계의 新星 감독 10인 [9] - 루크레시아 마르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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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송과 포르노의 만남
“1968년 5월, 난 파리에서 나의 첫 번째 포르노영화를 만들었어. 1958년에는 알제리 전쟁이 있었는데, 그때 난 너무 어렸지.” 베르트랑 보넬로(1968년생)의 두 번째 영화 <포르노그래프>(2001)에 등장하는 포르노 영화감독 자크 로랑의 말이다. 흥미롭게도 여기서 자크 역을 맡은 배우는 누벨바그의 아이콘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닐 장 피에르 레오이다. <포르노그래프>는 프랑스 누벨바그의 열정, 실패한 68혁명, 그리고 그것들을 씁쓸하게 반추한 몇몇 개인적인 영화들- 예컨대 장 외스타슈의 <엄마와 창녀>나 필립 가렐의 <사랑의 탄생>- 이 켜켜이 쌓여 이루어진 두터운 층을 파고드는 고고학적 텍스트이다. 영화 엔딩 크레딧 말미에 다음과 같은 파졸리니의 말이 인용된 것도 그 때문이다. “역사란 아버지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아들들의 열정이다.”
자크 로랑은 은퇴한 포르노 감독이지만,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다시
거장 예감, 세계의 新星 감독 10인 [8] - 베르트랑 보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