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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고등학교 옥상. 세명의 남학생이 학교 전설 한 소절에 부르르 몸을 떨고 있다. 전설의 주인공은 일명 ‘세븐 커터’라 불리는 정한수. 그 내용을 볼라치면 ‘비가 퍼붓고 번개가 치는 밤이었다’로 시작하여 ‘20m나 날아올라 각목을 든 수십명을 싹 쓸어버렸다’로 이어진 뒤 ‘커터 칼로 두목의 팔을 정확히 7cm 그었다’로 끝나는 전형적인 ‘학교 짱’ 전설이다.
시간 때우기로 으레 하는 얘긴 줄 알았더니 이 셋에게 그의 존재는 현실이다. 첫 번째 문제는 정한수라는 녀석이 성지고로 전학을 온다는 것이고, 두 번째 문제는 이들이 성지고 짱 백성기(이정)와 그 똘마니들이라는 데 있다. 원조 학교 짱으로서 전학 온 쌈짱과의 대결은 피할 수 없는 법. 잔혹하기 그지없다는 그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성기 일당은 고심천만이다.
하나 학교에 나타난 정한수(안재모)는 소문과 영 다르다. ‘친구 많이 사귀고 싶어요∼’류의 해맑은 인사말을 건네고, 성기가 엉겁결에 맞장 뜰 것을 제안하자 곱게 접은 1만
왕따에 대한 따뜻한 시선, <카리스마 탈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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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은 쉽게 휘발되는 기억이다. 소설가 김연수는 ‘남몰래 흘리는 눈물보다 더 빨리 우리의 기억 속에서 마르는 스무살이 지나가고 나면, 스물한살이 오는 것이 아니라 스무살 이후가 온다’라고 썼다. <나나>는 ‘스무살’의 두 소녀의 만남과 이별, 성장을 과거의 일기장을 꺼내보듯 회고조로 더듬어간다. 고마츠 나나(미야자키 아오이)를 화자로 삼은 <나나>는 오사키 나나(나카시마 미카)와 렌(마쓰다 류헤이)을 통해 과거를 비추고, 고마츠와 쇼우지(히라오카 유타)를 통해 현재를 말한다. 야자와 아이의 원작만화는 순차적으로 두 인물을 대조하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나나>는 플래시백으로 그것을 갈음하려 하지만 시간의 압축은 매끄럽지 못하고 인물의 감정선도 어긋난다.
스무살 동갑인 오사키 나나와 고마츠 나나는 도쿄행 열차에서 우연히 동석한다. 고마츠가 역에 마중나온 남자친구 쇼우지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오사키는 사라진다. 도쿄에서 방을 구하러 갔다가 다시 마주
‘스무살’의 두 소녀의 성장 일기, <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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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카(NASCAR: National Association for stock Car Auto Racing)는 자동자 전용 경기장에서 열리는 미국의 카레이싱으로 메이저리그나 NBA, AFL처럼 미국인들이 열광하는 프로 스포츠 가운데 하나다. CJ CGV가 처음으로 자체 수입·배급하는 3D아이맥스영화인 <카레이싱>은 큰 스크린과 입체 화면으로 시속 320km로 달리는 자동차의 속도감을 극대화하는 다큐멘터리다. 수만명이 모인 경기장에서 출발을 앞둔 운전자의 긴장된 숨소리, 폭발하듯 터지는 엔진의 굉음, 공기 속으로 빨려갈 듯 빠른 속도와 충돌사고의 드라마틱한 스펙터클까지 이 작품은 아이맥스라는 시청각의 스케일을 적절하게 이용한다. 특히 레이싱을 하는 자동차 안으로 들어간 카메라는 속도의 쾌감을 극대화해 말 그대로 관람이 아닌 체험으로서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러나 가끔 자동차가 눈앞으로 돌진하는 듯한 느낌을 제외하면 3D 효과는 입체안경을 쓰고 극장에 들어갈 때의 설렘을 충분
320km 속도의 쾌감을 극대화하는 3D 효과, <카레이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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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나’는 지도에 존재하지 않는 단어다. 워싱턴의 정치가와 중동의 석유재벌, 헤즈볼라 지도자 등을 취재해 <시리아나>의 시나리오를 쓴 감독 스티븐 개건은 이 영화의 제목이 실제 워싱턴의 싱크 탱크가 사용하는 단어라고 말했다. “그들은 언제든지 중동 지역의 국경을 재조정할 수 있다는 은유적인 의미로 그 단어를 썼다.” 그러므로 머나먼 이국 중동과 미국에서 일어난 별개의 사건을 다루는 <시리아나>는 그 두 지역 사이의 보이지 않는 사슬을 폭로하는 영화이기도 할 것이다.
베테랑 CIA 요원 밥 반즈(조지 클루니)는 개혁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중동 산유국의 왕자 나시르(알렉산더 시디그)를 암살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 임무에 실패해 조직으로부터 버림받은 밥은 누가 나시르의 죽음을 원했는지 추적하기 시작한다. 명민하고 지도력이 있는 나시르는 제네바에서 에너지 분석가로 일하는 브라이언 우드먼(맷 데이먼)을 경제고문으로 영입해 석유에서 얻는 부(富)를 늘리고 국민에게 재
냉정한 시선과 충격에 가까운 분노, <시리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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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이 들어 온 국민이 물 대신 수박주스를 마시며 살고 있는 타이베이의 어느 날. 여자(천샹치)는 개천에서 수박 하나를 건져 집에 갖고 가는 도중에 공터에서 잠을 자고 있는 남자(이강생)를 발견한다. 둘의 애정은 그렇게 시작된다. 정황으로 보면 이 둘은 이미 과거에 알고 지내던 사이인 것 같지만, 영화는 그걸 속시원히 알려주지 않고 혹은 몰라도 괜찮다는 투다. 그런데 이 둘 사이에도 모르는 것은 있다. 남자의 직업은 포르노 배우다. 여자는 그 사실을 모른다. 어느 날 여자가 우연히 남자의 직업을 알게 될 때쯤 이미 영화는 종반에 다다랐고, 기묘하게 완성되는 둘 사이의 포르노그래피적 애정 행위는 그 순간 펼쳐진다.
<흔들리는 구름>은 차이밍량의 일곱 번째 장편영화다. 동명의 1960년대 번안대중가요에서 제목을 따왔고, 그 노래는 마지막 장면에서 유유히 흐른다. <흔들리는 구름>에서 두 주인공이 나누는 대화라고는 여자가 남자에게 던지는 한마디뿐이다. 그러나 대
포르노그래피, 뮤지컬과 만나다, <흔들리는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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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미카엘 하네케의 <히든>은 앞서 국내에 소개된 <퍼니게임>과 <피아니스트>만큼 오감과 이성을 후벼대지 않지만, 의문들이 끝까지 지속되는 스릴러 속에 개인적 죄의식과 사회적 죄의식을 동시에 질문하는 틀거리가 여전히 무시무시하다.
TV문학토론 프로그램의 사회자로 대중적 인기가 높은 조르쥬(다니엘 오테이유)는 중산층 주택, 중산층 자동차, 중산층 친구 등을 지닌 지적 부르주아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아내 안느(줄리엣 비노쉬)와 아들 역시 이에 걸맞은 ‘수준’이다. 그들에게 비디오테이프 하나가 배달돼온다. 집 정면을 고정된 카메라로 응시하며 자신들의 출입을 그저 지켜보는 롱테이크가 전부다. ‘당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이 명백한 메시지에 조르쥬와 안느가 불안해하는데, 이어지는 비디오테이프와 그림이 명백한 상징을 띠기 시작한다. 테이프와 그림이 상기하는 건 조르쥬의 40년 전 과거다. 사리 판단이 온전하기 힘든 여섯살의 나이에
무시무시하고 지적이며 예술적인 하네케의 화살, <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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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추억을 나눌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사람들의 죽음은 살아 있는 사람들을 아프게 만든다. 그가 남기고 간 짧은 기억들이 아쉽고, 그 먼 길을 혼자 보낼 수밖에 없었던 산 자들의 무관심이 죄책감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가 버리고 간 무정한 세상을 꿋꿋하게 살아내야 한다. 송일곤의 <마법사들>은 불안한 젊은 날의 꿈과 거기에 얽힌 죽음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남녀 혼성 밴드였던 ‘마법사들’의 멤버들은 기타리스트였던 지은(이승비)을 추모하기 위해 3년 만에 재회한다. 그동안 드러머였던 재성(정웅인)은 강원도 숲속 카페의 주인이 되어 있고, 베이시스트였던 명수(정현성)는 음악과 사랑에 실패하고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계획하고 있다. 그들은 재성의 카페 ‘마법사’에서 옛 기억을 더듬으며, 더이상 노래하지 않게 된 밴드의 보컬
불안한 젊은 날의 꿈과 죽음과 사랑, <마법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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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뤼미에르 형제는 영화라는 위대한 것을 발명했다.” 체육대학 학생 지환(권상우)의 목소리로 영화 <청춘만화>는 시작한다. 성룡을 보며 자란 지환의 꿈은 최고의 액션배우가 되는 것. 사실 그는 아르바이트 삼아, 경험 삼아 겸사겸사 다니는 액션스쿨에서 자잘한 스턴트 역을 맴돈다. 영화는 달래(김하늘)에게도 목소리를 내준다. 거울 앞에서 어설픈 연기를 해보이는 달래는 사실 심장이 콩알만 해서 오디션만 봤다 하면 탈락이다. 그녀와 지환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10년 넘게 우정을 유지해왔다. 늘 티격대면서도 서로를 걱정하는 마음이 각별하다.
<청춘만화>는 서로 비슷한 꿈을 가진 두 남녀의 청춘드라마이자 그들의 오랜 우정이 사랑이었음을 발견해가는 과정을 담은 로맨틱코미디다. 꿈과 사랑, <청춘만화>는 이 두 가지 주제에 모두 방점을 찍고 시작한다. 만화적 상상력을 대담하게 끌어들여 지환과 달래의 꿈을 꼼꼼히 그려내는 초반부를 보고 있으면 사랑은 둘째치
꼭 맞는 캐릭터를 찾아 낸 권상우의 빛나는 재능, <청춘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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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훈(김유석)은 7년째 데뷔작을 기다리는 만년 영화감독 준비생이다. 하지만 그를 응원하는 어린 아들 병국(강산)의 웅변을 빌려 말하자면, 그도 엄연히 영화감독이다. “영화 한편도 안 만든 영화감독이 어디 있느냐”는 친구의 놀림에도 병국은 “수박장수가 하루 종일 수박 한개를 못 팔았다고 수박장수가 아니냐”고 응수하며 아버지를 변호한다. 한편 상훈에게는 아들 병국처럼 힘이 되는 응원 가족이 있는가 하면, 함께 사는 장인처럼 애먹이는 가족도 있다. 치매에 걸려 툭하면 가출하는 장인(이순재)은 시간 많은 상훈이 주로 돌보아야 하는 골치 아픈 보호대상이다. 장인은 젊은 시절 역마살 낀 삶을 살았고, 가무를 낙으로 여기며 살아온 소문난 한량이었고,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 서로 배다른 아들딸을 낳았지만, 지금은 치매로 그들을 구별조차 못하며 막내딸 민경(김호정)의 집에 얹혀산다. 민경, 남편 상훈의 소개에 의하면 그녀는 촉망받는 무용가 지망생이었지만, 지금은 아귀같이 소리지르며 학원생들을 호통치는
서로 사랑하는 개털 인생에 대한 영화, <모두들,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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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희(류연희)는 거리에서 김치를 파는 조선족 여인이다. 남편이 감옥에 가서 고향을 떠나온 그녀는 어린 아들 창호(김박)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애쓰지만, 노점상 허가서조차 받지 못해 생계수단인 자전거를 압수당하고 만다. 파출소 순경 왕위의 호의로 노점상 허가서를 받은 다음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순희와 관계를 맺어온 조선족 김씨(주광현)는 정사 현장이 아내에게 들통나자 그녀가 창녀라고 거짓말을 하고, 파출소에 끌려가도록 방치한다. 성관계를 요구하는 왕위에게 몸을 주고 집으로 돌아온 순희에게는 그보다도 더한 비극이 기다리고 있다.
중국 농민에게 망종은 가장 바쁜 시기 중 하나라고 한다. 보리를 베어내고 볍씨를 뿌리는 절기 망종을 놓치면 보리 이삭이 지나치게 무거워져 쓰러지기 때문이다. 순희는 고향에서나 의미가 있었을 망종을 도시에서 통과하면서 차례로 닥쳐오는 고난을 겪고, 끝내는 세상을 향해 독극물을 살포하기에 이른다. 보리밭을 향해 발길을 재촉하는 순희의 뒷모습은 그 모든 고
무표정하게 가두어둔 침묵과 슬픔의 무게, <망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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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는 전쟁이고, 결혼은 비즈니스다. 그것은 두개의 세계가 만나 상대와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부유하고 잘생겼지만 성격에 문제가 있는 남자와 예쁘거나 총명하지만 집안은 가난한 여자는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 결혼을 고민하고, 그로 인해 얻게 될 이득과 버려야 할 것을 고려하여 선택을 내린다. 영국의 시골 마을에서 평생을 노처녀로 살았던 제인 오스틴은 그러한 상황을 본능적으로 파악한 작가였다. 제인 오스틴이 21살에 완성했던 장편을 개작한 소설 <오만과 편견>은 우리가 사랑 앞에 정정당당할 수 없도록 만드는 두 가지의 나쁜 버릇이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는지를 밝히고, 전쟁과 비즈니스를 좀더 바람직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공들여 고민했다. 그로부터 200여년 뒤. 사랑과 결혼의 달콤함과 비정함을 함께 담는 데 탁월한 능력을 선보였던 워킹 타이틀은, 로맨틱코미디물의 원형으로 남아 있는 원작의 숨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는 만만찮은 과제를 보란 듯이
소박하고 사랑스런 소동을 담은 로맨틱코미디, <오만과 편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