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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외의 커다란 저택에 사는 50대 후반의 웨인 헤인즈(로버트 레드퍼드)는 부족할 것 없는 중산층 가장. 젊은 시절 번듯한 직장을 때려치우고 렌트카 사업에 뛰어들어 돈을 번 그는 업계에선 입지전적 인물. 슬하의 자녀들을 모두 독립시킨 뒤 부인 에일린(헬렌 미렌)과 한가롭고 여유로운 일상을 영위하던 어느 날. 웨인은 출근길에 해고된 다음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장인 집에 얹혀 사는 옛 직장 동료 아놀드(윌렘 데포)에게 납치된다. 원한을 품은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 납치를 하게 됐다면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아놀드에게 웨인은 연민의 감정을 느끼기도 하지만 어떻게든 위기 상황을 모면하려고 애쓴다. 한편, 남편의 승용차가 외진 곳에 방치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에일린은 실종 신고를 하게 되고, FBI가 수사에 나서지만 사건은 뾰족한 단서를 찾지 못한 채 미궁에 빠진다.
은 납치극이라는 거죽을 뒤집어썼지만 비슷한 소재의 영화들이 따르는 궤적을 떠올렸다간 낭패보기 십상이다. 흔히 예상하는 F
‘스릴러’ 코트로 어깨를 가린 멜로드라마, <클리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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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터프 가이즈>는 소박하다. 인물들의 세련된 말발이나 치밀하고 긴장감 넘치는 사건도 없다. 이야기의 구조는 느슨하기 짝이 없고 인물들은 킬러로서의 직업정신이 무색할 정도로 모자라 보인다. 이야기의 단조로움에 더해 촬영마저 촌스럽기 그지없다. 그런데 이 영화가 내세우는 것은 바로 이러한 불완전함인 듯하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엉뚱한 상황과 인물들의 어이없는 대응. 우연한 요소들의 맞물림에서 나오는 불완전함의 미덕이 웃음을 유발한다. 그 웃음은 황당한 낄낄거림에 가깝다.
삼류 킬러로 근근이 살아가는 빠꼬(안토니오 레시네스)는 그 지방 도시의 대부로 불리는 로드리고(마누엘 알렉산드레)의 빚 독촉에 시달린다. 로드리고는 빠꼬에게 돈을 갚는 대신 자신의 조카 알렉스(조르디 빌체스)에게 일을 가르쳐줄 것을 요구한다. 고민 끝에 빠꼬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알렉스가 끌어들인 따띠아나(엘레나 아나야)까지 떠맡게 된다. 빠꼬 일행은 술집에서 만난 한 노인으로부터 억만장자의 상속녀를 납
낭만적인 킬러들의 코믹 버디무비, <투 터프 가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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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National Treasure)의 역사란 모름지기 도둑질의 역사다. 로제타스톤을 보기 위해서는 런던의 대영박물관으로 가야 하고, 밀로의 비너스를 보기 위해서는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으로 가야 한다. 국보의 역사는 제국주의 역사이며 제국주의 역사는 곧 도둑들의 역사다. 이러니 가장 거대한 강도국가이면서도 정작 ‘괴도 뤼팽’적으로 우아한 문화 약탈사를 부러워하는 미국인들의 콤플렉스는 종종 대리만족의 구실들을 찾아 헤맨다. <내셔널 트레져>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비교적’ 단아한 전리품 컬렉션에 대한 미국인들의 보상심리처럼 보이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굳이 불쾌한 팍스 아메리카나의 함의를 찾는 것도 일면 구차하긴 마찬가지일 테다. <내셔널 트레져>는 그같은 보상심리를 이용해 자국 관객의 주머니를 노려보겠다는 알뜰한 기획성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1974년의 워싱턴 DC에서 시작한다. 소년 시절의 벤자민 프랭클린 게이츠(이하 벤)에게
허허실실 <인디아나 존스>식 모험담, <내셔널 트레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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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용기있는 자를 선택한다’는 베르길리우스의 시구를 영화의 첫머리로 택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올리버 스톤 감독뿐 아니라 감독이 설파하는 고대사에 감동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이라면 이 시구는 세 시간에 가까운 대서사시를 열어젖히는 출입문으로는 제격이다. 팍스 로마나의 정점이던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그리스와 로마인의 용기를 칭송하는 것이나,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에 2400년 전 그리스 북부 출신의 정복자의 용기를 1억5천만달러를 들여 되새기는 데는 어떤 역사적 일관성이 관통하는 듯하다. 영화 속에는 통주저음처럼, 세상에 자유를 전파해야 한다는 식의 조지 부시적 이데올로기이자 강박관념이 희미하게 울린다. 알렉산더의 전기를 쓰기도 했으며 알렉산더의 장수 출신으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창시자인 프톨레마이오스(앤서니 홉킨스, 천문학자는 동명이인)가 이 거대한 서사시를 말해줄 변사이다. 권위있는 옥스퍼드식 표준 영어로 흘러나오는 연대기는 알렉산더(콜린 파렐)의 서른셋 짧은 삶을 인간의
부시 시대의 기원전 역사 다시 쓰기, <알렉산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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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이 열리는 자동차’라고도 부르는 컨버터블. 그간 할리우드영화 속 잘 나가는 주인공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폼나는 차다. 그리고 여기, 머리카락을 맞바람에 맡긴 채 한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폼나게 질주하는 이 사람. 그는 당연히 웬만한 외모와 재력, 능력과 자신감을 겸비해야 하고, ‘쭉쭉빵빵’한 동승인까지 있다면 더욱 좋겠다. 그야말로 폼, 나는 광경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누군가 무식하게(?) 반문한다. 영화가 아닌 현실 속에서 그런 지붕없는 자동차를 타는 건, 매캐한 매연 속을 달리는 것에 불과하지 않겠냐고. 머리카락이 온통 바람에 엉켜버리는 바람에 정신도 차릴 수 없을 거라고. 그러느니 안전하고 경제적이며 실속있는 경차를 택하겠다는 호언장담까지. 이것은 폼생폼사, 명품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우리에게 던지는, <신석기 블루스>의 일갈이다.
이를 위해 영화는 동명이인의 신석기를 대비시킨다. 웬만해선 같을 수 없는 이름에 변호사라는 직업, 생일까지 똑같은 두 사람을 설
못생기면 어떻고 폼 안 나면 어떠냐, <신석기 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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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매너리즘의 성(城)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9번째 장편애니메이션은 그가 창조해온 세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기류를 타고 부유하는 날틀, 만물에 영혼을 내리는 애니미즘, 강한 소녀와 지혜로운 할머니, 왈츠가 흐르는 가상의 유럽왕국. <모노노케 히메>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으로 미야자키의 새로운 경지에 열광했던 관객에게 <하울의…>의 의연한 진부함은 과거로의 회귀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작은 실망은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다. 가냘픈 네개의 다리와 증기를 내뿜는 굴뚝, 고철덩어리로 짜깁기한 것 같은 풍채로 안개 속의 산자락을 누비는 하울의 성은 맥박의 떨림이 느껴질 만큼 생생한 상상력의 산물이다. 유럽의 모든 지형들을 모자이크해놓은 듯한 ‘과학과 마법이 공존하는 19세기’는 익숙하지만 여전히 아름답고, 비행의 쾌감은 온전하다. <하울의…>가 매너리즘의 혐의에 의해 업수이 여겨진다면, 그것은 풍요로운 상
지혜롭고 풍요로운 거장의 새로운 악상, <하울의 움직이는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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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말부터 2000년까지 할리우드에는 오랜만에 틴 무비 열풍이 몰아쳤다. 공포영화부터 코미디, 멜로드라마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10대들은 스크린 위를 점령했다(<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 <아메리칸 파이> 등). 겉으로는 미성숙하고 여린 그들의 육체 속에는 성인들보다 한술 더 뜨는 노숙한 영혼이 깃들어 있었고,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사춘기 모습을 대변한다기보다는 세기말의 혼란스러운 미국사회를 반영하는 은유적인 존재들이었다(그때 쏟아져나왔던 화장실 유머들은 당시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지퍼 게이트’ 사건과 맞닿는 미국 전체의 트렌드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올 한해 한국에서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한 틴 무비 시장은 어떤 식으로 볼 수 있을까? 사실 그동안 우리에게 익숙한 하이틴물이라면 <얄개전>부터 <돌려차기>에 이르는 명랑하고 건전한 청소년들의 성장기거나, 부모님과의 갈등 혹은 성적 때문에 고민하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
철없는 여고생들의 백일몽, <여고생 시집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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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부대’한테 크리스마스는 곧 쥐약이다. 견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저 23일 밤에 잠들어 26일 아침에 깨어나는 것뿐. 그래도 눈 뜨고 크리스마스를 맞고 싶다면? 돈을 벌자. 가족도 애인도 돈 주고 사면 된다. <서바이빙 크리스마스>는 바로 이 화끈한(?) 교훈을 전파하는 ‘자본주의 솔로족’을 위한 영화다.
광고회사의 경영진인 드루 래덤(벤 애플렉)은 그야말로 돈이 ‘튀는’ 남자. 크리스마스에 피지로 놀러가자고 애인에게 말 한번 잘못 했다가 책임감 없이 촐랑대는 남자로 찍히면서 그는 졸지에 혼자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생겼다. 괜히 어린 시절 살던 집 앞에 찾아가 불만을 종이에 적어 태우는 이상한 짓을 하던 드루는, 마침내 그 집에 사는 발코(제임스 갠돌피니) 가족에게 25만달러를 줄 테니 크리스마스 동안 가족이 되어달라고 주문한다.
세상에 공짜가 없듯 25만달러 벌기도 쉽지 않은 일. 평생 닭살 돋는 소리 한번 한 적이 없던 발코 가족은 이제 루돌프 티셔츠도 입어
크리스마스에 싱글로 살아남으려면? <서바이빙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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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짝 로버트 저메키스, 톰 행크스가 <포레스트 검프>와 <캐스트 어웨이>에 이어 세 번째로 의기투합하여 선보인 영화는 3D애니메이션 <폴라 익스프레스>다. 제안은 네 아이를 가진 자상한 아버지 톰 행크스의 습관적인 동화책 읽어주기에서 비롯됐고, 합의는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지켜줘야 한다는 두 어른들 사이의 소명의식으로 이뤄졌다. 메마른 어른들조차 현실을 구부러뜨려보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크리스마스 전야, 그날을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동화 <폴라 익스프레스>는 그들에게 더없이 훌륭한 소재로 비쳤을 것이다. 산타를 기다리는 혹은 의심하는 스크린 안팎의 아이들 앞에 로버트 저메키스와 톰 행크스는 북극으로 가는 특급열차를 대령한다.
산타는 가짜다! <폴라 익스프레스>의 주인공 소년은 수집한 자료들을 서랍에서 다시 꺼내 확인하며 아쉽고도 불쾌한 마음으로 크리스마스 전날 저녁 잠자리에 든다. 그때 어디선가 굉음이 들리고, 집 앞에는 난데없
크리스마스 이브에 잠 못 드는 아이들을 위하여, <폴라 익스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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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마릴루 베리)는 자기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포악한 삶 가운데 예술의 위안을 예찬하는 노래를. 그러나 소녀의 평화는 오래가지 못한다. 그녀가 이어폰을 빼자 택시 안의 우악스런 음악이 달려든다. 볼륨을 낮춰달라 부탁해도 택시기사는 막무가내다. 차 안의 권력은 그에게 있다. 결국 기사의 무례를 이기는 것은 소녀의 호소가 아니라, 롤리타의 아버지 에티엔(장 피에르 바크리)의 더 강력한 무례다. <룩 앳 미>는 이렇게 첫 장면부터 이 영화에서 ‘최강의 악당’이 롤리타의 아버지 에티엔임을 분명히 한다. 명성과 부를 누리는 작가이자 파리 문화계의 권력자인 에티엔은, 훌륭한 예술가라고 훌륭한 인격자는 아니라는 속설의 흉한 마스코트다. 그는 남의 이름을 결코 기억하지 않으며, 다른 인간에게서 귀기울일 만한 이야기가 나오리라 믿지 않기에 질문만 던지고 대답을 듣지 않는다. 가학적 농담을 사교의 기술로 착각하는 에티엔은 본인이 가장 연약할 때에도 위로하는 사람을 용케 상처줄 방법을
권력과 관용의 함수관계에 대한 고찰, <룩 앳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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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들이 천장에서 뿜어 내려오는 피로 샤워를 하며 춤을 추는 나이트클럽 장면만으로도 <블레이드 1>은 흥분제라고 부를 만하다. <헬보이>의 기예르모 델 토로가 만든 2편은 1편을 어린애 장난으로 만들 정도로 격렬한 혈관 수축을 부르는 아드레날린 촉진제였다. 테크노 리듬 속에서 뱀파이어를 잿더미로 만드는 스타일 강한 액션은 물론이거니와 아들이 아버지를 물어뜯고 아버지가 딸을 죽음으로 내모는 전도된 관계가 잘 짜인 이야기와 서로 잘 스며들었다. 뱀파이어가 얼마나 무궁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창조적으로 변용될 수 있는가를 보여줬다고 할까. 할 얘기는 끝도 없이 더 이어질 듯했다.
2편에서 에일리언적인 해부적 상상력을 극대화하고 자외선 폭탄 등의 신필살기로 중무장했던 블레이드 웨슬리 스나입스는 3편에선 좀더 담백한 모습을 보여준다. 창조적 변용보다는 맨주먹과 칼 그리고 활로 뱀파이어를 잡는 원초적 무용담을 택했다. 그러나 이야기의 부피도 함께 줄어들면서 뱀파이어가
뱀파이어들의 원초적 무용담, <블레이드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