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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북하게 눈쌓인 영등포의 한 공장터. 3천평쯤 되는 이 공간 안에선 한옥이나 유럽의 마을을 꽤 정밀하게 축소한 미니어처 세트 수십개와 괴수의 대가리나 몸통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곳은 바로 “못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안 해서 못하는 것”이라는 말을 통해 한국 SF의 새장을 열겠다는 각오를 보여줬던 심형래 감독의 영구아트무비. 다소 실망감을 줬을 뿐 아니라 다양한 논란까지 불러일으켰던 1999년작 <용가리> 이후 항간에선 “심형래가 주저앉았다”는 소문이 나돌았기에 이곳의 활기찬 분위기는 다소 의외였다. 사무실에서 만난 심형래 감독 역시 1월20일 개봉하는 때문에 다소 피곤해보이긴 했지만, 여러 개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의욕적인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는 <용가리>와 어떻게 다른가.=<용가리>에서 미흡했던 드라마와 CG 등을 대폭 수정했다. 거의 80%를 손봤다고 보면 된다. 특히 개봉 당시 아이들이 좋아했던 마지막 부분 용가리와 사이커가 싸우는
“목표? 황금종려상이 아니라 수출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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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의 마지막인 12월도 어느새 반을 넘긴 지난 12월15일 금요일 밤. 매서운 추위를 무릅쓰고 일단의 무리들이 인적 끊긴 심야의 다운타운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자정을 재촉하는 칠흑같은 어둠을 뚫고 이들이 도착한 곳은 바로 이스트빌리지 남단의 앤솔로지 필름 아카이브. 실험영화의 산실로 오랜 세월 동안 대안적 영상 문화의 창구 역할을 해온 이곳 앤솔로지에서 뉴욕 개봉을 앞둔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Nowhere To Hide)의 특별 시사회가 이루어졌다. 자정이 다 되어서야 시작한 이날 행사는 주말의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보조석과 통로까지 가득 메운 <인정사정…>의 ‘숭배자’들로 인해 시종 열띤 분위기 속에서 진행이 됐다. 밖에서는 상당수의 관객이 표를 구하지 못해 그냥 돌아갔다는 후문이다.
관객의 환호를 받으며 등장한 이명세 감독은 “유서 깊은 앤솔로지 극장에서 이렇게 시사회를 가지게 돼 기쁘다”며 간단히 인사의 말을 전했고, 곧이어 열렬한
이명세 감독에게 듣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뉴욕 개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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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명의 군중이 운집한 호치민의 공연장. 공연이 끝나고도 해산하지 않은 인파 속을 어떻게 뚫고 나갈지, 대기실 안에선 긴급 회의가 열렸다. 장동건의 무대 의상이었던 흰색 양복을 다른 누가 대신 입고 나가고, 팬들의 주의가 흐트러진 사이 빠져나가자는 제안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단 한 사람, 당사자인 장동건이 브레이크를 걸었다. “날 좋아하는 사람들을 속이고 싶지 않다”는 이유. 그러니 인파에 휩쓸려 넘어진 아오자이 차림의 소녀를 직접 일으켜주는 내용의 CF가 턱없는 과대포장은 아닌 셈이다.
베트남으로 귀화하라 거나, 대선에 출마하라는 농담도 인사처럼 듣는 요즈음이지만, 남들이 ‘신드롬’이라 부르는 베트남에서의 인기몰이를, 장동건은 아직도 “놀랍고, 고맙고, 부담스럽다”며 마냥 쑥스러워한다. <마지막 승부> <의가형제> <모델>이 베트남 전파를 타면서 시작된 ‘장동건 열풍’으로, 이제껏 베트남 땅을 두번 밟았는데, 늘 경호원 여러 명이 따라붙어
“지독한 악역 만나고 싶다”, <아나키스트>의 장동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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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 소비노(33)는 금발의 백치미인이 유난히 잘 어울리는 배우다. <마이티 아프로디테>에서도 그랬지만 <노마진 앤 마릴린>에서도 ‘백치미인’ 마릴린 먼로가 그에게 딱이었다. 국내에 지각 개봉한 이 영화에서 그는 마릴린 먼로 특유의 걸음걸이와 어투, 헤픈 미소를 고스란히 재현했으며 텅 빈 얼굴로 자신에게 주어진 가혹한 운명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스파이크 리의 <썸머 오브 샘>의 다이아나 또한, 백치는 아니지만 남편의 외도를 쉽게 눈치채지 못할 만큼 어리숙하고 미련한 여자다. <마이티 아프로디테>의 백치미도 일품이었다. 삐딱거리는 걸음새하며 높은 톤의 목소리와 억양, 번잡스런 옷차림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창녀의 이미지 그대로였다. 하지만 이건 미라 소비노가 만들어낸 이미지들일 뿐이다. 미라 소비노는 대단한 노력과 정교한 연기로 백치의 이미지를 뽑어냈다. <마이티 아프로디테>에서 날아가는 듯한 어투를 얻기
창녀에서 성녀까지, <마이티 아프로디테>의 미라 소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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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저수지를 찾는 낚시꾼들에게 커피와 실지렁이를 팔 듯 몸을 내주는 <섬>의 희진. 그녀의 얇은 갈색치마는 사내들의 배설물에 젖기 일쑤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에선 비린내가 요동한다. 하지만 일시적으로 섬에 정주해서 그녀를 약탈하는 이들은 유약하기 그지없다. 죽기 위해 섬을 찾은 현식도 섬을 지배하는 그녀 앞에서 이내 칭얼대고 결국 뒷걸음질친다. 한치의 오차나 조금의 머뭇거림 없이 자신의 욕망의 관자놀이를 겨누는 그녀 앞에서 그들은 무력하다. 찌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곧바로 먹이를 쳐올리는 그녀의 민첩함은 위협적이다. 푸른 바다 흰 포말 위에서 태어나지도, 아름답기 그지없는 키프로스 섬에서 노닐지도 않지만, 희진 아니 서정(28)은 본능적인 직관과 대담한 의지로 <섬>을 관장하는 여신이다.
깊게 팬 관능적인 여신의 가슴선 뒤로 기다란 삶의 상처를 달고 다니는 희진 역을 맡아 연기한 서정은 잘 알려진 배우는 아니다. 그래서 ‘운좋게’ 거리에서 픽업된 풋내기
충무로의 섬, 독립영화의 대지, <섬>의 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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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풍경은 큰 변화가 없다. 번화가엔 높은 굽의 구두에 카우보이 모자, 헐렁한 루즈삭스를 신은 여고생들이 여전히 거리를 누빈다. 번잡한 시내를 벗어나 호텔 회견장에 들어서니 연애만화 같은 한쌍이 기다리고 있었다.
<4월 이야기>의 이와이 순지 (38) 감독과 배우 마쓰 다카코(松たか子, 22). 배우, 감독이 아니라 오누이 같기도 하고, 진짜 ‘연인’처럼 꼭 어울리는 분위기라 해야 할까. 이와이 순지 감독은 약간 몽롱한 눈동자에 느린 말투로 인터뷰에 응했다. 질문을 던지는 상대방의 시선을 물끄러미 응시하면서. 최근엔 극장용 영화보다 뮤직비디오에 치중하는 느낌이다. 일본을 방문하고 있을 당시 공중파 TV에선 감독이 인기 그룹 Glay의 뮤직비디오를 작업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연예계 뉴스로 다뤄지고 있었다. 마쓰 다카코 역시 승승장구. 지난해에 <선보고 결혼하기>라는 드라마에 출연했는데 방송사에서 연기상을 받는 등 부산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짧은 시간에
<4월 이야기>의 감독 이와이 순지와 배우 마쓰 다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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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평범했다. 하루에 여러 번 길에서 마주치고 스쳐 지나갈 법한,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은 외모. 첫인상이 그렇다는 얘기를 조심스레 건넸다. 튀지 않는 것은 뭐든 평가절하당하는 개성시대니 만큼, 불쾌하게 해석될 여지는 충분했다. “그렇죠.” 김유석의 얼굴에 여린 미소가 떴다. “그 평범함 속에 에너지가 있어요. 조금씩 조금씩 보여주려고요. 한석규 선배나 설경구씨, 다 그런 배우들 아닌가요.” 그는 이제껏 그 평범함 속에 묻어둔 비범한 에너지를 발휘할 기회를 꼭 두번 만났다. 나른하고 권태로운 일상에 날아든 여대생에게서 욕망의 출구를 찾으려던 <강원도의 힘>의 앳된 경찰이었다가, <섬>에선 사랑하는 여자를 죽이고 도망쳐 들어온 저수지에서 또다른 여자를 만나 치명적인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보니, 극단적인 양면성을 지닌 가련한 인간상, 외면할 수 없는 우리의 본질을 담아낸 연기에, 그가 말하는 평범함의 미덕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유학파 배우’라고도 부른다. “
평범함의 힘, <강원도의 힘> <섬>의 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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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 호스의 물줄기를 맞으면서도 무지개 속에 선 듯 빛나는 로리타, 감당할 수 없는 사랑의 그늘로 서른두살의 남자를 끌어들이는 <연인>의 소녀, 혹은 차갑게 푸른 눈동자로 채 자라지 못한 육체를 덮어 버리는 <택시 드라이버>의 어린 창녀 아이리스. 이들은 조금만 무게를 가해도 짓눌려 버릴 것처럼 어려 보이지만, 이 아이들 앞에서 부서지는 쪽은 오히려 어른들이다. 스무살도 되지 않은 이 소녀들에게서 어른들이 얻고 싶어했던 것은 무엇일까. 이들의 무엇이 잊고 있던 욕망을 일으켜세우고 다시 한번 갈증 속에 버려지게 했을까. 놓쳐 버린 시간에 대한 향수라고 쉽게 대답할 수도 있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던 은밀한 저항의 반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메리칸 뷰티>는 다소 다른 의미를 담는다.
<아메리칸 뷰티>의 주인공 레스터 버냄을 연기한 케빈 스페이시는 그 답을 짐작하는 듯하다. 장미꽃잎으로 몸을 감싼 미나 수바리(21). 그 꽃잎들이 하나씩
아, 아메리칸, 아메리칸, <아메리칸 뷰티>의 미나 수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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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아카데미가 캐나다를 화나게 했다면, 그건 <사우스 파크>의 주제가 <블레임 캐나다>가 주제가상 후보에 올랐기 때문이 아니다. 전세계에 중계 방송되는 시상식에서 ‘타도, 캐나다’가 울려 퍼진대도 여유롭게 웃어 넘기던 그들이 정작 참기 힘들었던 건, 그들의 ‘국민감독’ 노만 주이슨(Norman Jewison·73)이 홀대받았다는 사실이라고 한다. 그의 영화 <허리케인 카터>는 남우주연상(덴젤 워싱턴) 후보 한 자리만 배당받았고, 그나마도 수상의 영예를 누리지 못했다. 꼭 그 이상의 상복을 누려야 할 영화는 아니지만, 편견에 희생돼 살인자의 누명을 쓴 흑인 복서의 이야기가 전하는 진한 감동만큼은 ‘국보급’이라는 사실을 캐나다 밖에서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캐나다 토론토 출신인 노만 주이슨 감독은 50년대에 영국 <BBC>, 미국 <CBS>, 캐나다 국영 방송사를 거치며, 방송 작가와 드라마 연출가로 활동했는데, 이때 해리 벨
캐나다 국민감독, <허리케인 카터>의 노만 주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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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한아름에 끌어안기에는 언제나 넘치고, 한곳에 머무르기에는 너무 숨가쁘게 약동하는 무엇이다. 그 영화가 올 봄에는 부산, 부천에 이어 ‘온고을’ 전주에 또 하나의 축제 마당을 열고 우리를 청한다. 달포 앞으로 다가온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는 과연 어디쯤 서서 관객에게 어떤 첫 만남을 제안하고 있을까. 상영작 및 초청 인사 발표 기자회견을 하루 앞둔 3월21일 아침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원장실을 찾아 최민(56) 조직위원장으로부터 대안 영화제를 표방한 전주국제영화제의 자화상과 약속, 근심과 희망에 대해 들어보았다.
-부산과 부천에 이어 세 번째 국제적 영화제를 탄생시키면서 출발점에 관한 고민이 컸을 것 같다.
=전주영화제의 타당성을 둘러싼 이야기가 많았다. 큰 비용 들여 기존의 국제영화제들과 서로 잡아먹는 결과를 빚는 것 아니냐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열광적인 젊은 관객층이 있다. 영화 전문 주간지가 5년 넘게 건재한다는 사실도 그들
4월28일 개막하는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 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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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배우가 로버트 드 니로일 필요는 없다. 드 니로처럼 한 순간 눈빛에 삶의 깊이까지 녹여내지는 못하더라도, 딱 두시간 동안 관객을 즐겁게 해주는 것으로 충분할 수 있으니까. 어쩌면 그것이 배우의 가장 평범하면서도 소중한 미덕일지 모른다. 가벼운 TV시트콤을 주로 거쳐왔지만, 매튜 페리(30)는 그 미덕에 충실한 배우다. 페리의 연기를 지켜보면서 마음속 가장 밑바닥의 기억까지 흔들어놓는 전율을 느끼는 관객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페리에겐 스쳐가는 일상의 세세한 감정을 포착해 웃음으로 내어놓는 능력이 있다. 17명을 살해한 마피아 조직원 지미 튤립(브루스 윌리스)이 옆집에 이사 오고, 돈만 아는 아내는 보험금을 타기 위해 자신을 없애려 하고, 그 와중에 지미 튤립의 아내와 사랑에 빠져버린 치과의사 오즈. 그 난감한 상황에서도 페리는 처량한 표정으로 견딜 수 없는 웃음을 자아낸다. 아담 샌들러처럼 한없이 불쌍해 보이다가도, 톰 행크스처럼 대책없이 느긋하기도 한, 페리는 입장료가 아깝지
“내 재능은 로맨틱 코미디인걸”, <프렌즈>의 매튜 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