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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아홉이 다 산 나이도 아닌데 여기 아파 저기 아파 올봄부터 엄살깨나 부려왔던 나다. 의사들은 하나같이 머리를 가로저으며 특별한 병명이 없는데 왜 이렇게 통증을 호소하는지 모르겠다고 자신들이 무능해서 모르는 건 절대로 아니라는 억울한 표정으로 날 흘겨보고는 했다.
아마 잠을 못 자서 그러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매일매일이 피곤한데 왜 못 자는 걸까요? 이 아줌마야, 당신의 이부자리 잠자리를 왜 내게 와서 펼치고 그러시나… 라고 몹쓸 대거리를 한 의사 선생님은 안 계셨지만 확실히 불면의 원인을 잡아내고 처방전을 내준 의사 선생님 또한 아니 계셨다.
요가를 해. 스쿼시를 해. 발레를 해. 수영을 해. 그런데 말이죠, 요가는 지루해요. 스쿼시는 힘들고요. 발레는 안 어울리던걸요. 수영은 볼륨이 없어가지고요. 운동을 권하는 이들에게 갖가지 핑계를 대던 어느 날 동네에 새로 간판 하나가 걸리는 걸 보았다. 에이스 탁구장. 어라, 탁구? 그래, 탁구로구나!
문득 거실 서랍장 속에
[김민정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아무래도 덜 아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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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해봤지요? 나도 해봤어요.” “부장님이 마약 하자시는데?” 몹시 수상해 뵈는 저 대사는 실은 마약밀매사건을 맡은 검사들의 대화다. 폐쇄적인 조직, 업무 강도와 부담이 큰 직종일수록 내부인 사이에서 통용되는 줄임말과 권위를 절상하거나 절하하는 은어가 많은데, 검사들이 주인공인 MBC 드라마 <오만과 편견>에도 이런 화법이 빈번하다. “내가 총대 메는 덕에 큰 걱정 덜었다고 사장님이 직접 격려까지 해주셨잖아요.” 여기서 사장님은 인사와 예산을 쥐고 있는 법무부 검찰국장을 뜻한다.
<오만과 편견>은 앞서 마약 대화에서 생략된 검사의 ‘수사와 기소’ 과정을 상세하게 풀어가는 드라마다. 증거가 빈약한 사건들, 과중한 업무로 흘려보내기 쉬운 사건들을 집요하게 파헤치는 수습검사 한열무(백진희)와 수석검사 구동치(최진혁)의 모습은 검사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을 기는 현재 시점에서 보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다시피한 검사를 미화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도 있다. 조
[유선주의 TVIEW] 우리 시대 검사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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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나를 찾아줘> 아내가 사라졌다
[정훈이 만화] <나를 찾아줘> 아내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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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소년’ 대니얼 래드클리프는 세상이 해리 포터군을 잊을 때까지 앉아서 기다리느니, ‘머글’스러운 근면성으로 다양한 작품과 인물에 투신하는 편을 선택했다. 그간의 부지런한 여정이 있었기에 <킬 유어 달링>의 1940년대 컬럼비아 대학의 풍경이 환기하는 호그와트의 추억은, 관객에게 실소 대신 감회 어린 미소를 자아낸다. 아이비리그풍으로 차려입고 뿔테 안경을 쓴 래드클리프, 고풍스런 기숙사, 도서관의 금서 구역에 잠입하기 위한 소동, 그리고 무엇보다 동성애와 문학적 이상이라는 마법으로 이루어진 비밀스런 세계까지.
10/16
선댄스영화제에서 공개된 이후 <보이후드>가 일으킨 선풍이 영화 자체의 특별함보다 제작 방식의 희소성에 기대고 있다는 불평은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보이후드>가 ‘태도 점수’를 빼면 남는 게 없는 평이한 드라마라는 감상에는 동조하기 어렵다. 가령 메이슨(엘라 콜트레인) 역에 연령대가 다른 여러 명의 배우를 캐스팅해 통상의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처음은 체험, 두 번째는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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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3학년 때다. 학교가 일제시대 때 지은 목조건물이라 찬바람 드는 계절이면 그 선연한 냉기에 잔뜩 몸을 움츠려야 했다. 교실에 있는 온기라곤 석탄난로 딱 하나. 담임은 우리를 성적순으로 그 난로 옆에 앉혔다. 성적이 안 좋을수록 난로에서 멀어졌고, 급기야 꼴찌는 뒷문쪽에 앉아 젖은 새처럼 몸을 떨어야 했다. 담임의 말을 기억한다. “공부 못하면 불을 쬘 자격이 없어.”
어찌나 끔찍한 기억인지 다른 담임들 이름은 죄 까먹었는데, 3학년 담임 이름은 평생 흉터마냥 마음자락에 각인되어 있다. 아니나 다를까 엊그제, 경북 칠곡초등학교의 급식 뉴스를 접하자마자 단번에 그 기억들이 악몽처럼 되살아난다.
초딩들이 성적순으로 점심 급식을 받는단다. 항상 꼴찌한다는 아이 말이 눈을 찌른다. “전 성적이 안 올라서 1년 내내 꼴찌로 밥을 먹었어요.”
세상은 그렇게 변한 게 없다. 30년 전 난로에서 가장 멀리 앉은 채 불을 쬘 자격을 얻지 못했던 꼴찌와 1년 내내 배고픈 위장을 틀어
[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급식은 성적순이(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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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집에서 나가 살 날이 가까워지자 김치볶음밥과 떡볶이밖에 할 줄 모르는 자식이 걱정된 엄마는 식탁에서 자꾸 ‘오늘의 레시피’를 주입하려 애쓰신다. 시금치는 끓는 물에 너무 오래 데치지 말고 잠깐만 넣었다가 꺼낸 다음 꼭 짜서 깨소금과 참기름을 적당히 넣어 무쳐야 하고, 물김치를 담글 땐 칼로 배추 잎을 길쭉하게 슥슥 쳐낸 다음 살짝 절였다가 고춧가루와 매실 엑기스에 찹쌀 풀을 쑤어서… 네? 풀을 쑤어서? 마치 주기율표만 간신히 외운 학생에게 유기화학 응용문제를 제시하는 듯한 고난도 가르침에 점점 요리가 두려워지던 차, 구미 당기는 레시피를 들었다. “신동엽이랑 성시경 나오는 요리 프로에서 그러는데, 김치찌개 끓일 때 새우젓이랑 깨를 갈아서 돼지고기를 재우면 맛있대.”
40년 가까이 김치찌개를 끓여온 주부가 참고하는 요리 프로그램이라니, 뭔가 엄청난 비법을 가르쳐주는 건가? 그래서 올리브TV의 <오늘 뭐 먹지?>를 보기 시작했는데, 그런 건 아니었다. <오늘
[최지은의 TVIEW] 일단 완성하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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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즐거운 신혼생활
[정훈이 만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즐거운 신혼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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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어린 나이에 에로배우를 만났다(아니, 그런 식으로 만난 게 아니고 인터뷰를 했다). 그때까지 에로비디오 한번 본 적이 없던 나는 맨날 어려운 영화만 빌린다며 나를 감탄의 시선으로 보던 동네 비디오 가게 아저씨의 눈총을 받으면서 에로비디오를 잔뜩 빌렸고(이왕 이렇게 된 거 그동안 궁금했던 <젖소부인 바람났네>도 함께 빌렸다), 열 시간 가까이 벗은 몸을 보며 신음을 듣다가 멀미가 났다. 세상이 온통 살색이었다.
나는 억울했다. 왜 나한테 이런 걸 시키는 걸까, 사무실에서 놀고 있는 남자 선배들 중에는 분명 이걸 다 본 사람도 있을 텐데, 남자 배우는 만나기 싫다 이거지. 배우를 만나기로 한 압구정동 길바닥에 서서 짧은 인생 최대의 회한을 씹고 있던 그 순간이었다. 아우디 한대가 내 앞에 서더니 잘생긴 남자가 창문을 내리고 선글라스를 벗으며 말했다. “타세요.” 오오, 이것이 지금은 전설로만 남은 압구정동 ‘야타족’인가. 그 후 그 에로배우는 나와 동료들 사이에서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크기가 많이 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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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의 바디무비’를 읽고 마음이 괴롭다. “자신도 모르게 자주 쓰는 문구가 있다.… ‘이를테면’, ‘다시 말해서’, ‘그게 아니고’, ‘솔직히 말해서’ 등…. 그렇게 말하게 된 데는 다들 각자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씨네21> 975호)
나도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 많다. 위의 모든 문구에다가 ‘내가 이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내 말 알겠지?’, ‘왜 사니’, ‘미친 거 아냐’, ‘오프 더 레코드, 아니 오프 더 메모리’… 이 지면에 다 옮겨 적지 못할 정도로 많았다. 이 말이 내 일상과 인간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부끄러웠다. “솔직히 말해서” 여기 안 적은 것도 있다. 실은(아, 이 말도 많이 쓴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발길질을 해대며 자학했다. 게다가 나는 강의로 먹고산다. 강의 중에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옆길로 새면서 “오늘의 주제는 아니지만”과 “제 말 전달됐죠?”다. 세상에 이런 비호감이 없다.
나는 왜 이럴까. 정확한 소통의 욕망, 자기과시,
[정희진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콤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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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타니 시노부의 원작 만화 <라이어 게임>은 상대를 속여서 돈을 빼앗는 게임에 휘말린 여대생과 그녀를 돕는 천재 사기꾼 콤비의 이야기로, 2007년 <후지TV>에서 제작한 동명의 드라마 역시 큰 인기를 끌었다. 원작의 게임 룰과 트릭, 반전을 가져오는 ‘필승법’이 사실상 공개된 상황, tvN 드라마 <라이어 게임>은 원작과 다른 성취를 위해 게임이 성립하는 조건을 ‘리메이크’하는 길을 택했다. ‘LGT 사무국’이라는 비밀스런 주최자가 선별한 참가자들이 외부와 차단된 채 게임을 벌이는 원작이 변수가 통제된 실험실이라면, tvN의 리메이크는 거액의 상금을 내건 신생 방송사 주최의 ‘리얼리티 쇼’ 포맷을 취하며 다양한 변수가 개입한다. 참가자들을 따라다니는 카메라, ‘그림이 되는’ 후보를 밀어주라는 방송사 간부의 압력, 쇼에 반응하는 시청자, 기사로 논란을 재생산하는 인터넷 언론, 댓글을 다는 네티즌, 방송사 주식에 투자하는 투자자들까지. 이들은 서로 영
[유선주의 TVIEW] 돈 앞의 자기합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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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너무 궁금했다. 우린 개새끼 소새끼 입에 달고 살지만, 정말 사람과 개새끼의 차이는 무엇일까. 개새끼도 먹고 싸고 교미하는 것처럼, 사람도 먹고 싸고 교미하는데. 심지어 개새끼도 아파하고 사랑한다. 사람도 아파하고 사랑한다. 지금까지 내린 결론 중 하나는, 사람은 웃는데, 개새끼는 못 웃는다는 것이다(물론 개죽이 열외). 하지만 질문은 계속된다. 그러면 왜 사람은 웃을까? 왜 사람만 웃을까? 아직 이 질문에 근본적인 해답은 얻질 못했지만, 어느 정도 근사치에 가까운 깨달음들은 있었노니. 웃음의 핵심은 실수에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개새끼에겐 그럴듯한 실수가 없다. 개새끼가 지랄하고 넘어지는 건, 엄격한 실수는 아니다. 그건 그냥 개짓이다. 하지만 사람이 지랄하고 넘어지면 그건 실수다. 왜냐하면 그건 개나 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나. 개에게는 해야 할 짓과 하지 말아야 할 짓이 따로 없기에, 엄격한 의미에서 실수가 없다. 그러나 인간에겐 따라야 할 규칙체계/
[곡사의 아수라장] 시스템 오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