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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20일, 21일 일기에 <루시>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난 뭐 감추고 그러는 거 싫더라.” <프랭크>에서 줄곧 인형 탈을 쓰고 있는 뮤지션으로 분한 마이클 파스빈더의 대사다. 프랭크의 가짜 머리는 묘하게 표현적이다. 창피당하면 홍조가 오르는 듯하고 놀라면 동공이 커져 보이는 착시현상이 일어난다. 지금껏 전신 누드를 포함, 연기할 때 아무것도 가리지 않아온 배우라는 사실이, 파스빈더가 <프랭크>를 선택한 동기를 거꾸로 납득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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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스칼렛 요한슨은 그녀의 몸으로부터 이리저리 탈출하느라 바쁘다. 인공지능으로 분한 <그녀>에서 요한슨은 육신이 아예 없고, <언더 더 스킨>의 몸은 빌려 쓴 껍데기이며, <루시>에서는 육체적 현존을 초월해버린다. 육체의 의미는 각기 다른 경로로 지워진다.
루시는 세명의 캐릭터 중 유일하게 보통의 인간 여성으로 등장하는데도, 관객이 가장 냉담한 심경으로 전말을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루시 인 더 스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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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이 책에 관한 것이다 보니 하루가 멀다 하고 새 책을 만지고 또 하루가 멀다 하고 하루 만에 헌책이 된 새 책을 만난다. 일주일이면 어림잡아 내 허벅지까지 책이 쌓이는 것 같다. 그 중 2/3는 구입을 하고 나머지 1/3이 지인들로부터 도착하는 사인본 정도 되겠다. 여름 지나 아침에 살살했다가 저녁에 쌀쌀한 바람 불기 시작하니 특히나 시집 출간이 느는 모양이다.
내게 뭐라 썼는지 면지에 남긴 시인의 글씨체에 채 흐뭇해지기 전에 또 다른 시인의 시집이 도착한다. 짧은 엽서는커녕 잘 받았다는 인사를 겸한 안부의 메시지마저 자꾸 놓친다. 처음에는 죄책감에 시달렸는데 어느 순간 에라, 모르겠다 너도 내 시집 받고 입 씻지 않았던가, 슬쩍 좋은 게 좋은 거지에 묻어간다. 불량식품도 아닌데 나쁜 습관은 참으로 쉽게 일상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벽돌 사이즈에 두부처럼 하얀 노트 한 덩어리가 내게 왔다. 친하게 지내는 인쇄소 직원이 잘라내고 버린 종이들을 모아 풀칠을 해서는 내 책상 위에
[김민정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날마다 하나씩 줘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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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파선에서 주운 포크로 머리를 빗으며 인간세계를 상상하던 인어 이야기도 옛말. 요즘 인어는 방수팩에 넣은 스마트폰으로 <별에서 온 그대>를 시청하고 트위터 유명인을 팔로한다. 그렇게 인간계의 문물을 즐기던 18번째 인어공주 에이린(조보아)은 미남 셰프 권시경(송재림)에게 반해 한강을 얼쩡거리고, 요트에서 요리 프로그램 촬영 중이던 시경은 참치 꼬리지느러미를 닮은 의문의 지느러미에 놀라 미끄러진다. 에이린은 물에 빠진 시경과 딥키스를 나누는데, 일은 여기서부터 꼬인다. 에이린이 그간 군침만 삼켜왔던 시경의 탱탱한 힙을 주무르는 동안 물에 뛰어들어 그를 건져올린 이는 역시 시경을 노리고 있던 신입사원 윤진아(박지수)다. 에이린의 키스가 시경의 생명연장에 도움이 되었는지는 확실치 않고, 심지어 시경은 생명의 은인에게 식사대접으로 빚을 갚는 현실적인 왕자님이니 동화 속 사랑도 자연히 물음표를 그린다. tvN <잉여공주>는 육지로 올라온 인어가 ‘잉여’가 되는 이야기다.
[유선주의 TVIEW] 성장판 닫힌 세계에서 일과 사랑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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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타짜-신의 손> 정열의 홍단!
[정훈이 만화] <타짜-신의 손> 정열의 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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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은 전주다. 동네 백반집만 가도 12첩 반상이 깔린다는 전설의 고장 전주(옛날엔 전설이 아니라 진짜였다), 전국에 널린 프랜차이즈도 여기에 발만 들였다 하면 미묘하게 맛있어진다는 신비의 고장 전주. 하지만 그곳에도 맛없는 집은 있었으니… 우리 집이다, 우리 집. 내가 20년 가까이 먹고 살았던 우리 집.
친정은 군산이요 시댁은 광양으로서 민어회나 서대회, 김국 같은 진미가 반찬이었던 엄마는 먹던 가락이 있어 장보기는 잘했지만 음식은 못했다. 그래서 갈치조림 대신 갈치구이를, 계란말이 대신 계란찜을, 닭볶음탕 대신 백숙을 만들었다. 한마디로 복잡한 음식은 하지 않았다. 그런 엄마가 유일하게 할 줄 아는 전라도 음식은 불행하게도 콩나물국밥이었다. 우리 집은 일요일 아침마다 삼백집 스타일로 뜨겁게 끓인 콩나물국밥을 먹었다. 스타일만 삼백집. 허영만의 <식객>을 보면 삼백집 콩나물국밥은 국밥 전용으로 담가 2년 이상 숙성한 썰이김치를 넣어야 한다는데, 그런 게 있을 리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그분도 착하게 보이게 만드는 마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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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24일 일기에 <드래곤 길들이기> 1, 2편과 <스타워즈 에피소드5: 제국의 역습>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로빈 윌리엄스가 영화를 두고 세상을 떠났다. <스토커>(One Hour Photo)의 고독한 사진현상소 직원 싸이는, <인썸니아> <스무치에게 죽음을>의 배역과 더불어 윌리엄스의 3대 악역이다. 아무 특징 없는 외모와 흔해빠진 옷, 교과서적인 말투를 통해 로빈 윌리엄스는 싸이를 철저한 ‘노바디’로 연기한다. 그러나 무색무취한 이 남자의 내면에는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로버트 드니로)와 통하는 분노가 도사리고 있다. 에너지를 제어하는 데에 막대한 에너지를 투여한 훌륭한 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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딘 데블로이스 감독은 인터뷰에서 <드래곤 길들이기2>를 <스타워즈> 오리지널 3부작의 2편 <제국의 역습>에 비한 적이 있다. 1편의 주제를 심화하고 새로운 캐릭터의 도입으로 이야기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고통은 체감되길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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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입니다.”
이제는 거의 ‘꺼진 불도 다시 보자’ 같은 화재 경고 표어처럼 흔한 관용구가 되었다. TV드라마와 예능에서도 단골 멘트로 등장한 지 오래됐다. 90년대 이후 새롭게 등장한 이 삶의 구호는 동일성을 강제하는 전체주의적 체제에 대해 존재와 욕망의 다양성을 대립시키는 꽤나 매력적인 선동이기도 했다.
90년대 풍경은 사뭇 도전적이었다. 동성애자와 같은 사회적 소수자들이 ‘차이의 정치학’을 주창하며 존재를 가시화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의 열풍이 모든 동일성의 권위를 조롱했으며, ‘취향의 다양성’이란 구호는 단조로운 삶의 밀도에 활기를 부여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리고 이제 시간이 흘러, 서로 논쟁을 벌이다 간격이 좁혀지지 않으면 쿨한 표정을 지으며 “취존하시죠”라고 말하게 됐다. 취향을 서로 존중해 입을 다물자는 것이다. 더이상 논쟁을 지속하거나 말마디를 얹으면 눈치 없는 꼰대로 치부되기 일쑤다. 어느덧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당의를 입은 채 ‘다
[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취향의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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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연애 이야기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누누이 말해왔지만 마이클 더글러스와 맷 데이먼이 출연한 <쇼를 사랑한 남자>는 모처럼 마음에 든 멜로드라마였다. 70년대 미국의 인기 피아니스트 리버라치와 시골 청년 스콧 토슨이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권태기를 지나 ‘더럽게’ 이별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가 좋았던 가장 큰 이유는 이거였다. 이야기를 굳이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주변인이 오지랖 부리거나 사고 치지 않아서, 출생의 비밀이나 운명의 장난이 끼어들지 않아도 두 사람의 감정과 관계가 변해가는 게 결국 그 둘 때문이라서.
나이를 먹을수록 사랑을 둘러싼 현실의 문제들이 점점 뚜렷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상대에 대한 감정과 관계에 대한 판단 역시 분명해진다는 생각을 한다. 고민할 건 하나다. 나의 사랑으로 무엇을, 혹은 어디까지 감수할 수 있는가. 상대의 싫은 버릇을 참아 넘기고, 사소한 무언가를 포기하고, 자잘한 것들을 양보할 수 있다면 아직은 사랑일 것이다. 그러나 서
[최지은의 TVIEW] 결국 사랑과 이별은 둘 사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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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영웅을 좋아한다. 이게 본질적인 민족성인지 외세와의 밀당 속에서 형성된 역사적 산물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한민족의 핏줄엔 리더십 타령이 이미 흐르고 있다(심지어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슬로건이 나오기 전부터 그랬다).
그렇다면 영화는? 사실 영화와 민족성은 언제나 데칼코마니로 딱 떨어지지는 않는다. 분명히 대중문화는 정치의식의 반영이나 정치의식 자체는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리더십과 영웅은, 삐딱한 시선 속에서, 그러니깐 은유와 풍자로 왜곡된 형태로서만 영화에 출현한다. 이것은 마치, 왜곡된 형태로만 무의식을 증명하는 꿈과 같은 것이다. 꿈은 무의식에 대해서 말하지만, 언제나 빙빙 돌려서, 심지어 언제나 거짓말로만 말하지 않는가. 1970~80년대 한국영화, 즉 소위 “한국 뉴웨이브”에게 영웅들은 “바보”였다. <바보들의 행진>(감독 하길종)의 대학생 무리가 그러했고, <바보선언>(감독 이장호)의 절름발이, 택시 운전사, 창녀 무리가 그러했고, <고
[곡사의 아수라장] 우리 시대 진짜 영웅은 누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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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더 기버: 기억전달자> 진정한 단일 민족 국가
[정훈이 만화] <더 기버: 기억전달자> 진정한 단일 민족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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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짧은 수련회에 갔다. 한 참가자가 내내 시무룩하기에 나는 배려한답시고 “이 주변에 솔방울이 많은데 기분 전환 겸 같이 주우러 가실래요?”라고 제안했다. 물을 머금은 솔방울은 겨울에 천연 가습기 역할을 한다. 지인들에게 선물하면 좋아해서 나는 원래 솔방울을 주우러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가 굳은 얼굴로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제 여자친구가 중학생 때 선생이 산에 솔방울 주우러 가자고 꼬여서 따라갔다가 안 좋은(성폭행) 일이 있어서요. 저도 꺼림칙하네요.”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나는 “아, 여긴 등산 안 해도 돼요. 길거리에 많이 있거든요”라고 말했다. 내가 답답했던지 동료가 나를 불러내어 상황 분석을 해주었다.
평소 ‘젊고 미남’이라는 자부심에 넘치는 그는 팩과 미백 화장품으로 외모 관리에 열성인 ‘메트로 섹슈얼’로, 모든 인간을 외모로 판단한단다. 그러니 ‘뚱뚱한 중년’인 내가 산에서 자신과 ‘썸’을 꿈꾸거나 ‘덮칠’ 것으로 상상하고 거절했다는 것이다. “
[정희진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누구인지가 중요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