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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배우가 분장을 하고 영화에서 노역을 맡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박해일이 주연한 <은교>는 사정이 좀 다르다. 이 영화의 주제는 늙음과 관련이 있고 적어도 한국의 관객은 아무리 발달한 분장기술의 덕을 봤다고 해도 <은교>의 늙은 소설가 이적요를 영화 속 주인공으로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그가 처음으로 입을 뗄 때 나는 연기 잘하는 배우 박해일도 고전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건 누가 봐도 젊은 박해일이 늙은 이적요를 연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게 잘못됐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것 때문에 영화가 텍스트의 논리를 충실히 따라가는 입장에서 매혹을 준다기보다는 텍스트 바깥의 관객 입장에서 다른 매혹을 준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영화 중반에 늙은 이적요가 환상 속에서 청순하고 풋풋한 소녀 은교와 정사를 나누는 장면이 나올 때 그것은 늙은 이적요의 환상이라기보다 배우 박해일이 본모습으로 나온다는 인상이 더 강했다. 실제로 함께 영
[신전영객잔] 이 육체성, 혹여 관념적이지는 않은가
1. 인정해야겠다. 한두해 전부터 꾸준히 내 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정서는 초조함이다. 쫓기고 있다는 이 감각은, 무선 통신망과 스마트폰으로 활성화된 소셜 미디어의 그물에 내 일상이 포섭됐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매일 밤 나는 오늘 보고 들었어야 마땅하나 미처 따라잡지 못한 뉴스와 지식의 양을 가늠하며 삿포로의 눈 치우는 인부처럼 망연자실하다. 때로는 희미한 자책마저 따른다. 어째서 책망까지 하는 걸까? 문제의 정보가 어디 먼 곳이 아닌 지척에 있으며 아무도 그것을 취하라고 강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좋은 노동자가 못 되어 불안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기회를 충분히 누리고 바람직하게 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애석해하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호강스런 스트레스라고 해도 행복하지 않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자진해서 가입한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가 멤버에게 (은연중에) 요구하는 매너는 동시성과 즉각성이다. 뉴스채널 하단에나 흐르는 줄 알았던 속보의 띠가 머릿속에서 24시간 돌아가고
[신 전영객잔] ‘피로사회’로부터의 도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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