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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토끼>의 괴짜 작가 앤디 라일리의 새로운 거짓말 모듬. 아빠가 아이에게 들려주는 그림을 곁들인 진지한 이야기 묶음처럼 보이지만 모두 해괴망측하고 말도 안 되는 거짓말들뿐이다. 그런데 이 거짓말의 세계는 빠져들면 웃다가 죽을 정도로 무자비하며, 다시 그 이야기를 반복해 듣고 싶을 정도로 지독하게 악마적이다. 라일리의 말투를 흉내내서 말하자면, 사실 우리가 이 책을 읽는 것은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책 안에 강력한 특수자석이 있어서 우리 몸에 있는 쇠붙이를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햄을 썰어서 DVD 안에 넣으면 돼지영화가 나오고, 치즈 조각을 넣으면 젖소영화가 나온다거나, 자기 전에 기도를 하고 창문을 열고 올가미를 걸어놓으면 천사를 붙잡게 된다는 썰렁하기 이를 데 없는 이야기들이 이상하게 진공청소기처럼 우리의 호기심을 빨아들인다. 전에 살던 집에 전화하면 과거의 나와 통화를 할 수 있고, 가끔 집에 잘못 걸려온 전화는 미래의 나한테 온 전화 얘기엔 섬뜩함마저 느껴진다. 정
경고! 웃다가 죽을 수 있는 책, <양치기 아빠의 새빨간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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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용 감독은 낭만적 천재 유형의 작가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는 6·25 전쟁터에서 국방부 소속으로 처음 메가폰을 잡은 이후, 2000년 <침향>까지 40년 동안 109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그동안 ‘한국의 안토니오니’라는 찬사를 들었고, 흥행기록을 새로 썼으며, 홍콩에서 영화를 찍었고, 검열과 싸웠다. 때로 대중의 취향과 조우하고 때로는 대중의 취향을 앞서갔지만 영화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안개>를 찍을 무렵 “한국영화도 스토리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유학파들이 역설했을 때 김수용 감독은 이렇게 속엣말을 했다고 추억한다. “누가 그걸 몰라서 지금처럼 헤맨 줄 아느냐.”
수십권의 일기를 초록으로 삼아 쓰여진 <나의 사랑 씨네마>는 파란만장하다. 반공영화 <고발>을 만들었더니 2년 뒤 주인공 이수근이 위장간첩으로 판명된 촌극, “가위질된 편이 낫다”는 <야행>의 악평을 긴 논문으로 반박한 일화, 상복에 따라 울고 웃었던 기억,
어느 노장의 진귀한 기록, <나의 사랑 씨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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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위의 <중경삼림>의 실연한 경찰 양조위는 비누나 수건 등에게 말을 건다. 다정도 병이라고 하니, 외로움이 병이 되는 건 말할 것도 없는 걸까. <‘그’와의 짧은 동거-장모씨 이야기>의 주인공은 ‘외로움의 도가 지나치’게 느껴지던 어느 날, 좁은 옥탑방에 자기 이외의 또 다른 생명체, 즉 바퀴벌레가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그’와의 동거. 주인공은 바퀴벌레의 온기에 잠시 외로움을 잊지만, 여자친구가 생기면서 인간과 곤충의 동거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된다. 하지만 여자친구도 사실은 교미하기 위해 나온 여왕개미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장경섭의 이 장편은 10년 전 웹진 <화끈>에서 연재를 시작했지만, 연재를 시작한 지 3회 만에 웹진이 문을 닫으면서 무려 10년 만에 겨우 책으로 빛을 보게 된 작품이다. 냉소적이지만 유머가 느껴지는 초반 분위기와는 달리 후반으로 갈 수록 무거운 주제가 도드라지지만 읽기에 답답한 느낌은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그’와의 짧은 동거-장모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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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김수용 감독은 한국영화의 전성기인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왕성하게 현장을 지켜온 분이다. 늘 일기를 쓰는 덕분인지 기억력이 비상하고, 항상 카메라로 사고한 덕분인지 이야기엔 현장을 찍어서 전달하는 듯한 생생함이 있다. 김기덕 감독의 <빈집>에서 받은 감동을, 배우 재희의 연기를 흉내내 전달할 정도로 소년적인 감수성도 책 속에서 반짝인다. 윤정희와 갓 결혼한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촬영현장까지 따라간 일화는 이 책의 성격을 잘 말해준다. 백건우가 남자 역의 이대근에게 정사신을 어떻게 찍을 거냐고 묻자 이대근은 “정사신이요? 마누라 없이 살던 놈처럼 허기지게, 체면없이 무자비하게 해치워야죠” 하고 답한다. 문학적 감수성과 모더니스트적 실험정신을 결합시키며 100편 넘는 연출을 한 노장의 증언은 충무로 역사의 빈 구석을 매우 영화적인 방식으로 메꾼다. 그만큼 시각적이고 흥미로우며 구석구석 리얼하다.
30년 전의 땀 냄새 물씬, <나의 사랑 씨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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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앙드레 바쟁은 프랑스 국립고등사범학교의 강연장에서 장 르누아르의 1946년작 <어느 하녀의 일기>를 상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참석한 (지식인) 관객 가운데 상당수는 르누아르의 그 ‘미국영화’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예컨대 철학자인 모리스 메를로 퐁티는 르누아르의 그 영화가 르네 클레르의 초기 익살극 영화들과 동일한 범주에 속하는 것이면서도 템포나 연출력면에서 클레르의 것들보다 열등하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런 반격에 맞서서 바쟁은 르누아르의 영화가 어떻게 클레르의 것과는 다르며, 좀더 풍요로운지를 열심히 입증해 보였다.
사실 바쟁도 르누아르가 <게임의 규칙>(1939) 이후 미국으로 가서 만든 영화들에 처음부터 완전히 마음을 열어놓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무한한 애정과 통찰의 시선을 동반한 ‘르누아르 다시 읽기’를 거듭 행하고 확장하면서 그는 자신의 실책들을 하나씩 깨닫는 동시에 르누아르의 심오한 세계, 그 진가에
비평의 아름다움을 증거하는 비평, <장 르느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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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그가 나타났다. 여전히 더벅머리에 순한 눈동자. 아직도 열쇠가 잘 맞지 않는 옥탑방에 살고 있으며, 지금도 누군가와 주절대는 버릇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동안 무얼 하고 지냈냐니까 싱긋 웃는다. 변하지 않은 그를 보면서, 변한 우리가 던질 만한 질문이 아니었던 게다. 장경섭도 그의 분신인 <장모씨 이야기>도 그때 그 모습 그대로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가 누군가의 손, 우리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벌레의 손을 잡고 있다는 정도다.
1990년대 중반, 대한민국 만화계에는 언더 혹은 인디라는 젊은 기운이 용솟음친 적이 있다. 그중 <화끈>에 연재된 장경섭의 <장모씨 이야기>는 단연 발군의, 적어도 나의 기준으로는 세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의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화면 안에 절대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수봉이 형과의 독특한 대화법, 작가의 분신인 주인공을 다시 여러 분신으로 나누어 서로 자조하고 위로하게 만드는 복합적인 연출법 등은 ‘장경섭표
아직도 거기 살고 있었네, <‘그’와의 짧은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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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왕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아서 왕 이야기를 제대로 읽은 사람은 많지 않다. 켈트 문화 전문가인 장 마르칼은 40년에 걸친 연구의 결과물로 아서 왕 연대기를, 아서 왕과 그를 둘러싼 켈트의 전설을 흥미진진한 소설로 내놓았다. 8권에 달하는 <아발론 연대기>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책의 만듦새다. 시인이자 교수이며 번역가인 김정란의 번역은 옛날이야기를 듣는 듯 편하게 책을 읽게 해주고, 곳곳에 실린 관련 그림들은 내용의 이해를 돕는다. 주요인물 소개와 권두언(서평과 저자의 말, 편집자의 말 등), 저자가 쓴 권말의 해설 등은 아서 왕 이야기를 신화적으로, 문화적으로 좀더 풍부하게 읽을 수 있는 가이드가 되어준다. 아서 왕 전설은 다른 모든 전설(혹은 신화)이 그렇듯 수많은 예술작품의 원형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다는 예언에서 싹트는 비극이나 근친상간, 국가의 평안을 뒤흔든 연애담과 같은 이야기가 책장을 술술 넘기게 만든다.
아서 왕의 전설 제대로 보기, <아발론 연대기> 1∼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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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적수 위에 앉아서 똥을 싸고, 적수는 죽어가면서 그 똥을 먹고 기뻐 소리치는 경우가 어디 있겠는가? 누가 아무 저항도 못하는 연약한 사람을 매달고 사악한 개처럼 그의 정액을 입으로 받아먹는가? 점잖은 독자들이여, 나는 기꺼이 당신이 이 끔찍한 것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려 했으나, 내 펜이 마치 노수부(老水夫)처럼 자기의 뜻을 세우는구려.” 윌리엄 S. 버로스의 <네이키드 런치>는, 초자아의 장벽이 무너진 인간의 의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독자들의 의식을 발기된 성기처럼 유린한다. 노수부의 최면에 걸려 꼼짝없이 이야기를 듣고 마는 코울리지 시의 청자처럼, 우리, 위선적인 독자들은 버로스의 화려한 언어 향연에 홀려 죽음과 성과 환각을 한데 뒤섞어 시작도 끝도 없이 자아내는 이드(id)의 천일야화를 정신없이 읽어 내려간다. “반문화”의 대표주자이자, 전설적 반항아들의 문파인 “비트 제너레이션”의 일원인 버로스의 매혹은, 언어와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회와 질서를
벌거벗은 글쓰기의 정수, <네이키드 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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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는 사실뿐 아니라, 앞으로도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서 시작된다. 여기에 그 슬픔이 자손들에게 유전된다는 ‘업보’까지 짊어진 자들이 있다.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될 때, 그 자리에 있던 그 사람들이 그렇다. 원폭의 피해는 당사자뿐 아니라 그 자손들에게까지 계속된다.
<저녁뜸의 거리>는 10년 전 원폭을 경험한 히로시마의 한 젊은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단편 <저녁뜸의 거리>와 피폭자 엄마를 둔 아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중편 <벚꽃의 나라>로 구성되어 있다. 멀리 떨어져있는 동생을 만나러 가기 위해 한푼 두푼 알뜰하게 살아가는 히라노는 평범한 아가씨처럼 보이지만, 시체가 떠다니던 강가와 죽은 여인에게서 나막신을 벗겨서 신어야 했던 지옥 같은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저녁뜸의 거리>), 나기오는 단순한 천식도 피폭의 영향이라는 오해를 받으며 엄마가 피폭자이기에 사랑하는 사람도 제대로 만나지 못한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저녁뜸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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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같이 찾아오는 빚쟁이를 퇴치하는 가장 훌륭한 대사는? “사장님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는데요.” 부푼 꿈을 안고 사내 견학을 하고 있는 신입사원들이 가장 듣기 싫은 말은? 인사과장의 “나 로또 당첨됐거든. 뼈빠지게 일해봐요.” 일본에서 온 귀빈 야마도라 상을 접대하기 위해 추천하는 가장 한국적인 음식점은? “욕쟁이 할머니 집.” 몸매 8단, 성질 9단의 쭉빵 과격파 처녀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화제를 불러일으킨 웹 만화 <앙칼 처녀 도전기>가 엠파스에 <앙칼 처녀 시즌2>를 이어가며 우리 인생에 전혀 도움되지 않는 교훈들을 더해가고 있다.
<앙칼 처녀 도전기>의 애초 주인공은 대재벌을 목표로 패션그룹 돈타에 지원하지만 지나치게 튀는 패션에 발끈하는 성질머리로 고난을 겪는 유니, 출중한 실력을 지니고 있지만 필살기를 넣기 전에 쓸데없는 세리머니를 하다 역전패당하기 일쑤인 프로레슬러 진경, 딱 보기에 ‘쾌활한 왕따’인 보모 희경 등 세명의 앙칼진 처녀.
웬만하면 발끈하는 성질파 처녀들, 스바르탄의 <앙칼 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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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시를 처음 본 건 8년 전 모로코에서다. <인샬라> 촬영현장 취재로 찾아간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소국이 알코올을 금해서였을까. 담배 한 보루를 들고 길가를 서성이는 청년들은 해시시도 팔았다. 하필 모두들 말보로 담뱃갑을 들고 섰는데 새빨간 브랜드 무늬가 자꾸 호기심을 자극했다. “담배 말고 해시시?”라고 말문을 열긴 했으나 이빨을 드러내며 씩 웃는 상대방 표정에 왠지 겁먹어버렸다. 같은 대마에서 나오기는 했으나 일반 대마초보다 약용효과가 훨씬 강한 해시시(대마수지)의 거무틱틱한 색깔이 이성의 금지명령을 강하게 불러일으켰다고나 할까. 하물며 대마초조차 절대악의 유혹으로 주입받아온 터에 철통 이성의 규율에 익숙해진 몸이 얼마나 일탈할 수 있을까. <해시시 클럽>의 면면은 이런 조건반사를 무안하게 만든다.
한달에 한번, 파리의 피모당 호텔에 모여 정신의학을 공부한 자크 모로가 반죽해 건네는 해시시로 파티를 열었던 이들 중에 천재과에 가까운 예술가들의 이름을 쉽게
해시시를 아시나요, <해시시 클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