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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아키하바라는 서울의 용산 전자상가와도 자주 비교되곤 하는 ‘전자 제품의 천국’이다. 세계 최첨단의 제품들이 늘어서 있는 화려한 빌딩들을 돌아다니다보면, 누구든 그 이름의 의미를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그러나 상가들 사이의 좁은 골목과 대형 빌딩의 어지러운 계단을 헤집고 들어가다보면, 이곳의 또 다른 이름이 떠오른다. 오타쿠의 파라다이스. 그렇다. 이곳은 지구라는 행성 곳곳에 흩어져 있는 애니메이션, 게임, 만화 마니아들의 예루살렘인 것이다.
동인지 계열의 미소년 캐릭터 소타군은 명랑 쾌활하고 인덕도 좋은 고등학생이다. 친구도 많고, 학교생활도 즐겁게 하고, 예쁜 여자친구도 있다. 그러나 그에게는 모두로부터 숨겨야 할 비밀이 있다. 그것은 그가 초등학생용 애니메이션 캐릭터 ‘빠삐코’에 대한 애호의 감정을 숭배의 수준으로 간직하고 있는 제대로 된 오타쿠라는 사실이다. 아키하바라 전철역에 내리기만 해도 행복감에 빠져드는 소년, 그러나 ‘오타쿠 왕국’이라는 수상한 가게에 들어
미소년 오타쿠의 왕국, <소타군의 아키하바라 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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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부터 프랑스나 미국의 서점에 일본 만화가 그득하다. 일본 만화는 프랑스나 미국 만화의 고유한 출간 형태를 무시하고 일본식으로 출간되어 새로운 서가에 꼽힌다. 인기작들은 몇달의 시차로 소개될 지경이다. 이런 와중에 서구에서 가장 인기를 얻고 있는 작가가 있으니 바로 다니구치 지로다. 우리에게는 낯선 다니구치 지로는 가장 문학적인 만화로 인기를 얻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다니구치 지로의 작품은 2권이다. 시공사의 <K>, 샘터사의 <열네살>. <K>는 절판되었고, <열네살>은 2004년에 출간되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다니구치 지로의 책은 작은 판형에 수십권씩 이어지는 시리즈가 아니라 넉넉한 크기에 한두권으로 끝나는 책들이 대부분이다. 산악 만화인 <K>를 제외하면 <열네살>이나 이번에 출간될 <아버지>(애니북스 펴냄)나 모두 정신없이 일에 몰두하는 일본의 30∼40대가 어느 날 자신을 되
영혼을 움직이는 꽉 찬 만화, 다니구치 지로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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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영웅과 구직활동, 살인병기와 코알라, 필사의 대결과 BGM, 기억조작과 녹차밭…. 이들의 공통점은? 눈을 열개쯤 뜨고 보아도 서로의 공통점이라곤 찾아낼 수 없다는 사실이 공통점이겠지. 그렇지만 SF판타지만화의 한 외곽에는 이러한 모든 것이 공존할 수 있는 세계가 있다. 우주경찰이 일급범죄자를 쫓아다니고 지옥 너머의 괴수가 소환되는 긴박한 상황이지만, 그 열혈의 분위기를 압도하는 것은 구차한 일상의 냄새들이다. <니아 언더 세븐> <아시아라이 저택의 주민들>의 우주물질 나노 청국장이 그리운 분들이라면 <정들면 고향 코스모스장>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엄청난 경제 불황 속에 취업 전선에 나섰다가 낙오된 20살 청년 스즈오는 길거리에서 만난 소녀 우주인으로부터 변신 벨트의 모니터 요원이 되기를 요청받는다. 단지 장난감이라고만 생각한 벨트. 그러나 사실 그것은 은하연방 경찰의 신형 장비 후보인 ‘특수 범용 파워드 슈트 돗코이다’
황당하고 일상적인 나노 청국장의 맛, <정들면 고향 코스모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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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희 감독이 <돌아오지 않는 해병>을 만들 때였다. 한겨울에 제작비가 없어 중단되었던 영화가 우여곡절 끝에 다시 촬영을 시작했지만, 문제는 산등성이를 넘으면서 갑자기 눈이 없어지게 된 것이다. 이만희 감독은 대사 한마디를 넣었다. “이 전쟁터에도 봄이 왔구나.” 1950년대부터 70년대에 걸쳐 우리 영화의 대표적인 편집기사였던 김희수의 증언이다. 한국영상자료원이 출간한 두권의 책 <한국영화를 말한다: 1950년대 한국영화>와 <한국영화사 공부: 1960-1979>는 한국영화사 연구에 봄을 왔음을 알리고 있다.
최근 한국영상자료원은 변하고 있다. 자료원 로고도 변했고, 인터넷 홈페이지도 변신했고, 매달 그저 의무적으로 상영되던 영화들도 “한국영화의 새로운 시선”으로 탈바꿈하여 좀더 다양한 테마전과 기록영화로까지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외적 변화보다 더 중요한 변화는 지난해부터 자료원 내부에 “연구팀”이 신설된 것이다. 이 두권의
한국영화사 재구성, <한국영화를 말한다: 1950년대 한국영화>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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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구조조정이라는 지진 해일급 풍랑에 폐간되고 만 월간지 <오후>를 사서 제일 먼저 찾아 읽는 만화가 있었다. 달랑 4칸으로 이루어진 만화 몇편이지만 4칸이 주는 엑기스의 재미를 주는 만화였다. 말랑말랑한 ‘떡’들이 주인공으로 여러 해프닝을 전달한 만화. 석동연의 <말랑말랑>이 바로 그 문제의 작품이다.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떡’의 캐릭터화를 통해 그 캐릭터에 걸맞은, 예를 들어 꿀떡이 흘리는 콧물이 꿀이고, 시루떡은 부슬부슬 고물이 떨어지며, 하얀 피부에 예쁜 얼굴이지만 네모공주인 백설기 공주, 미끈하게 빠진 외모의 아이돌 스타 가래떡 군이라는 설정과 에피소드를 만들어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그 빈 틈바구니에서 튀어나와 만화가 되어버린, 그래서 만화의 빛나는 상상력을 보여주는 <말랑말랑>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작가 석동연은 대학에서 만화를 전공한 만화전공 1세대 작가. 1998년 <우리는 만화과>로 데뷔하여
4칸으로 완성된 떡들의 세계, 석동연의 <말랑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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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바셀미의 <백설공주>는 그림 형제가 음침하게 묘사한 슈바르츠발트의 컴컴한 숲속 대신 맨해튼의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서 시작된다. 바셀미의 백설공주는 대학에서 여성학을 전공했고 따분하고 산문적인 현실에 진저리를 치는 지식인이고 백설공주와 함께 사는 일곱 난쟁이들은 빌딩 유리창을 닦고 이유식을 만들어 파는 왜소하고 건조한 현실주의자들이다. 이들뿐만 아니라 백설공주를 갈망하는 포고, 못된 새엄마 역의 제인, 백설공주를 구해주는 왕자여야 마땅하지만 야심도 희망도 없는 폴은 모두 그림 동화의 고전적인 세계 대신 1960대 미국 현대사회에 속해 있다. 당연한 일이지만 기계적으로 이들을 한 방향으로 몰아내려는 원작의 그림자도 결말에 이르러서는 통제력을 잃는다.
최근에 유행하는 ‘정치적으로 공정한 동화책’류의 패러디 동화를 기대하고 바셀미의 책을 읽는다면 실망할 것이다. 적어도 그런 책들처럼 쉬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은 아니다. 바셀미의 <백설공주&g
해체적 시각으로 백설공주를 재구성하라, <백설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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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은 편의점, 2층은 노래방, 3층은 탁구장인 어느 빌딩. 지나치게 번화하지도, 그렇다고 한산하지도 않은, 도시 외곽의 평범하기 그지없는 무대다. 주인이 젊은 야쿠자라는 사실도 상식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가 편의점에서 물건을 훔친다든지, 노래방에서 낯뜨거운 짓을 벌인다든지, 쓸데없이 이 구역을 침범하려고 어슬렁거린다든지 할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그때는 3층의 썰렁한 탁구장 창밖으로 가당치도 않은 말이 들려온다. “모든 트러블은 볼과 라켓으로 결정한다.” 그것이 이곳의 규칙이다.
도시의 탁구 무협 드라마. 불을 뿜는 스매싱, 살을 잘라내는 커트, 간교한 이질 러버의 서비스, 돌연 판을 엎어버리는 난동… 같은 것들을 기대할 법한 시작이지만, 다시 한번 만화는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더이상의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말해두자. 이 만화는 탁구를 살짜쿵 매개로 한 청춘물, 혹은 조금 비껴 친 로맨스코미디다.
남학생 히로미는 1년 전 사소한 도둑질로 붙잡힌
탁구를 매개로 한 청춘물, 이누가미 스쿠네의 <러버즈 세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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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영화학자인 프란체스코 카세티는 1945년을 전후로 영화이론과 관련한 새로운 현상들이 목도된다고 말한다. 그런 현상들 가운데에는 이론의 전문화에 따른 그것과 실천 사이의 분리라는 것도 있는데 이에 대해 그는 이렇게 썼다. “이론가들은 존재하지 않는 영화를 꿈꾸며 또 계속해서 그것을 제의했던 데 반해 영화감독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제안들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서 자신이 만들고 싶지 않거나 만들 수 없는 영화들을 만드는, 소통불가의 극장이 출현했다.”
카세티처럼 다소 엄격하게, 따라서 다소 협소하게 영화이론을 정의한다면, 자크 오몽의 은 아마도 지금에 나온 것보다 빈약한 모양새를 갖췄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지 않은 것은 여기서 오몽이 이론에 대해 좀더 ‘느슨하게’ “시네아스트들이 나름대로 갖고 있는 자발적인 철학”의 견지에서 다가가기 때문이다. 이 책은 “스스로의 예술적 의식과 자기 직업에 대한 생각과 목적, 말하자면 사상”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이들로서 영화감독
브레송, 파졸리니의 영화 사상을 듣는다, <영화감독들의 영화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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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심상치 않다. 싸울 때마다 진다는 뜻이다. 18연패와 원정경기 21연패의 기록을 세운 삼미 슈퍼스타즈의 전설 아닌 전설이 떠오른다. 이 책은 물론 일본판 삼미 슈퍼스타즈에 관한 책은 아니다. 2000년 가을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행한 5회의 연속 강의를 바탕으로 한 이 책의 저자 안도 다다오(1941∼)는 세계적인 건축가다. 예일대, 컬럼비아대, 하버드대 객원교수와 도쿄대 교수를 역임한 그는 오사카에서 빈민의 아들로 태어나 고교 졸업 뒤 프로 권투 선수 생활을 했고,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했다.
우리 못지않은 학력 위주 사회인 일본에서 그도 학력 콤플렉스를 겪었지만, 책을 읽고 생각하고 걸어다니면서 건물을 직접 보고 스케치하면서 배웠다. 고전 건축에서 첨단 건물에 이르는 무수한 건물들은 그에게 살아 있는 교과서이자 대학 강의실이었다. 이 책에서도 그는 반드시 과거의 훌륭한 건축을 봐야 한다고, 건축 공간을 직접 체험해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한
창조는 도전 정신에 있다, <연전연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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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나의 등에 날개가 돋았다. 이런 상상에서 <eden>은 출발한다. 그리고 이 상상이 커다란 3절지 260장에 옮겨졌다. 보통 만화 원고의 몇배가 되는 큰 사이즈에 스크린 톤 대신 먹의 농담과 직선적 펜 선 대신 붓의 유려함으로 표현된 흑백의 매력은 열정적인 탐구자인 작가가 일궈낸 성과다. 꽤나 미련스러워 보이는 이 작업을 끝끝내 마무리한 끈기에 박수를 보낸다. 이두호 선생의 말을 빌리자면, 만화는 손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로 그리는 것. 무거운 엉덩이가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한다.
<eden>은 주류만화와 비주류 만화의 미묘한 선상에 있다. 원고가 만들어진 이력이나 출판된 책의 모양새는 비주류지만, 담아낸 이야기는 주류와 닮아 있다. 날개 달린 괴수나 이 괴수에게서 공격을 당한 뒤 날개가 돋게 된다는 설정은 장르만화의 그것처럼 드라마틱하지만, 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주류의 문법에서 벗어난 독특한 모양새를 보여준다. 특히
대안적 만화의 시금석, 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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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을 ‘좀처럼’ 읽지 않는다. TV드라마, 영화, 하다못해(?) 신문 사회면이 소설보다 더 소설 같고 재미있는데 굳이 소설책 붙잡고 있기 싫은 것이다. 그래도 전혀 읽지 않는 건 아니어서 아는 사람이 강력 추천하는 소설을 마지 못해 하는 심정으로 읽을 때가 있다. 술자리에서 작가 김영하가 강력 추천하는 바람에 읽게 된 소설이 바로 오르한 파묵의 이 작품이다.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 있다. 마지막 숨을 쉰 지도 오래되었고 심장은 벌써 멈춰버렸다. 그러나 나를 죽인 그 비열한 살인자 말고는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모른다.” 16세기 말 이스탄불 외곽의 한 우물 밑바닥에 살해돼 버려진 금박세공사 엘레강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엘레강스의 시체의 독백이다. 누가 왜 그를 죽였을까? 사건의 실마리는 책의 속표지를 꾸미거나 본문 내용을 부연하는 이슬람의 전통 장식 미술, 즉 세밀화다.
술탄의 밀서 제작 책임자 에니시테는 베네치아 궁정에서 봤던 초상화에
16세기 이슬람 미술계의 문명충돌 다룬 그림 소설, <내 이름은 빨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