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만 지겹게 내려 그다지 여름 같지 않았던 여름을 다 보낸 8월22일 아침 9시 일본 아키타행 비행기에 올랐다. 도쿄나 오사카 같은 대도시가 아니라 한번도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 아키타(秋田). 아마 마쓰다 망가 미술관(增田町まんが美術館)만 없었다면 특별히 찾을 일이 없었을 곳이었다. 산과 산 사이에 있는 작은 공항으로 비행기는 가뿐히 내려섰다. 강원도 아니면 충북 어디쯤을 연상시키는 풍경은 매우 아름다웠다. 공항을 빠져나와 버스로 1시간10여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논과 논 사이 몇채의 작은 집들 사이에 들어앉은 마쓰다 망가 미술관이었다.모두 2층으로 된 지역 문화시설인 ‘푸레아이 플라자’는 500석 규모의 공연장과 5만권의 도서를 소유한 도서관과 회의실, 세미나실과 함께 상설전시관과 기획전시관 및 캐릭터 상품매장을 갖추고 있었다. 다카라즈카시의 데즈카 오사무 박물관이나 미타카시의 지브리 미술관처럼 짜임새 있고 화려지는 않지만 매우 소박하게 지역주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받아내는 공간
마쓰다 망가 미술관,이시노마키 망가탄 박물관 기행기
-
<유키 구라모토 내한공연>9월30일 7시30분(대전 충남대 국제문화회관)10월2일 7시30분부산 문화회관 대강당)10월3일 7시30분(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크레디아/ 02-751-9606
나카무라 유리코 등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인기높은 일본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의 세 번째 내한공연. ‘동양의 조지 윈스턴’으로도 불리는 유키 구라모토는 최근 7집 앨범 <Time for Journey>를 내놓기도 했다. 동양적 서정미가 돋보이는 유키 구라모토는 이번 공연에서 한국에서 인기높은 <로망스> <두 번째 로망스> <세느강의 정경> 등을 연주한다.
유키 구라모토 내한공연(공연)
-
<어바웃 어 보이>닉 혼비 지음문학사상사 펴냄8500원휴 그랜트가 주연을 맡은 로맨틱코미디로 흥행에서도 대박을 터뜨린 영화 <어바웃 어 보이>의 원작소설. 스스로를 ‘섬’이라고 믿는 36살의 ‘애어른’ 윌과 외로운 엄마를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없는 12살의 ‘어른애’ 마커스가 우정이라는 섬 사이의 네트워크를 건설하기까지를 간결하고 위트있는 문장으로 그려냈다. 챕터별로 홀수는 마커스의 시점으로, 짝수는 윌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사건이 진행된다. 번역본에는 원작에 없는 챕터 제목이 들어 있다.<아빠 뭐 해?>권복기 외 15인 지음이프 펴냄육아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모습은 주변에서 흔한 풍경이다. <아빠 뭐 해?>는 이런 현실을 담아 지난 1월에 나온 여성들의 육아보고서 <엄마 없어서 슬펐니?>를 잇는 남자들의 육아보고서, 혹은 체험기다. 육아휴직을 하고 기저귀빨기에 돌입했던 <한겨레> 기자 권복기씨, 돈벌이는 아내에게 맡기고
어바웃 어 보이/아빠 뭐 해?(책)
-
<Diorama> 실버체어EMI코리아 발매이제 얼터너티브의 유물은 사라졌는가. 실버체어 역시 90년대 초 ‘너바나 혁명’의 자장 속에서 활동했던 호주 출신의 3인조 밴드. 현재까지 활동중인 여타 얼터너티브 시대 밴드들처럼 이들 또한 4번째 앨범을 통해 기존의 그런지 사운드를 완전히 벗어난 듯 보인다. 단순한 비트에 대중적이며 화려한 멜로디를 얹은 이 앨범은 얼핏 빌보드 모던록 차트용으로 들리지만, 포크록 향기가 물씬한 <World upon your Shoulders>나 현악 멜로디가 감성을 자극하는 <Tuna in the Brine> 등은 혁신이라 할 만한 곡들이다.<길은정 노래詩集>도레미미디어 발매불굴의 의지로 암과 맞서 싸워 이겨낸 가수 길은정이 자신의 노래와 시낭송을 두장의 음반에 담았다. ‘소중한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부제가 붙은 이 음반에는 자신의 대표곡인 <소중한 사람>을 비롯한 18곡의 노래와 15편의 시낭송이
Diorama/길은정 노래詩集/ VOIXCO 보이스코(음반)
-
-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1991년작 <하이힐> 역시 그의 다른 영화들처럼 일종의 신파극이다. 빨강, 파랑, 노랑, 화려한 색깔의 화면배치처럼 인물들이 표출하는 감정도 적나라하고 화려하다. 그의 신파극은 그런데 일반적인 사회적, 성적 통념들을 지우고 뒤집는 방향으로 심금을 울린다. 그는 동성애, 근친상간, 살인, 질투와 배신 등에서 삶의 다이내믹한 힘을 끌어낸다. 흥미로운 것은 통념상 부정적인 그것들이 나중에는 사랑의 원천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의 영화세계는 성과 속, 높음과 낮음, 고귀함과 천함이 뒤집히며 섞이는 바흐친적 의미에서의 축제의 장이 된다. 그의 영화는 그런 방식으로, 순진하기 이를 데 없으면서도 포스트 모던하다.그의 영화에 쓰이는 음악들도, 특히 <하이힐>에서는 더욱, 신파스럽다. 전통적인 스페인의 가요인 칸시온을 직접 골라 영화에 쓰고 있다. 여가수인 어머니의 노랫소리는 스페인의 명가수 루즈 카살의 목소리이다. 흐느끼는 듯한 격정적인 창법으
<하이힐> O.S.T
-
김석희는 번역계의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다. 독자가 가장 많다는 소설판에서도 ‘베스트’와 ‘스테디’를 겸하기는 힘들고, 드물게 그런 사례가 있다 하더라도 3년 이상의 간격을 두고 작품을 발표해야 ‘약발’이 먹혀드는데, 김석희의 번역 작업은 자그마치 10년치가 밀려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그는 대학 시절 시-소설 부문 무차별로 문학상을 휩쓴 천재문청이었고(아마 시인 이성복-황지우가 조금 밀렸을 게다), 운에 크게 좌우되는 신춘문예 열병을 심하게 앓으며 ‘잡지파’들보다 데뷔가 썩 늦었으나 과연 첨단적인 소설미학의 소유자라는 평을 들었다.번역은 일찌감치 생계수단으로 시작되었을 텐데, 이제는 주업에다, 최소한 10년 동안의 운명으로 되었다. 사람들은 ‘힘들고 돈 안 되는 소설 창작’보다 ‘안전하고 돈 되는’(그는 물론 최고급 대우를 받는다) 번역을 택한 것, 아니 택하게 된 것 아니겠느냐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돈보다는 ‘보람’을 택했다. ‘돈’ 때문이라면 대중소설을 쓰면 되니까(
김석희가 옮긴 <시간박물관>(움베르토 에코 외 지음)
-
이제는 생활의 필수품이 되어버린 인터넷과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자리잡은 영화가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90년대 중반부터 보급되기 시작한 인터넷은 우리의 생활을 바꿔놓았다. 어떤 정보를 찾으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인터넷을 뒤지는 것이고, 취미가 같은 사람들을 만나는 가장 빠른 방법도 인터넷이다. 소멸해가던 편지를 되살린 것은 이메일이나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누는 메신저다. 이제는 인터넷이 없으면 생활의 시스템 자체가 흔들릴 지경이다. 영화에서도 비슷하다. 영화에 접근하는 가장 빠른 경로는 역시 인터넷 접속이다. 영화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은 물론 의견교환이나 영화의 내용과 표현에 대한 항의까지도 인터넷으로 할 수 있다. 인터넷으로 영화 보기가 가능한 건 물론이고 자기가 만든 단편이나 애니메이션을 올릴 수도 있다. 인터넷 마케팅은 영화 홍보의 기본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이 모든 것이 단 몇년간 정착된 일이라고는 차마 믿기 힘들다. 도대체 어떤 경로로 영화와 인터넷이 만났고 영화는
인터넷 칼럼니스트 이철민의 <인터넷 없이는,영화도 없다>
-
최근 다양한 산업적 가치부양 덕분에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사회적 지위가 어느 정도 올라가긴 했지만, 그 전반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대접은 아직도 편협하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2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자국영화의 흥행사를 새로 쓰고 있는 일본조차도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부문을 문화적 반열로 끌어올리기엔 아직도 많은 난관이 남아 있다는 얘기. 그래도 어느 정도 사회적, 문화적 지위를 점유하고 있는 작품이나 작가의 면면을 세고 있다보면 그 길이 그리 멀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지난 8월17일,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 로사에서는 ‘찰스 M 슐츠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슐츠는 국내에서는 ‘스누피’나 ‘찰리 브라운’이라는 캐릭터명으로 더 유명한 만화 <피너츠>의 ‘창조주’. 이 작품은 1950년 처음 선보인 이후 원작자가 병으로 은퇴한 2000년까지 반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75개국, 2600여
스누피의 집으로 오세요,8월17일 개관한 `슐츠 박물관`
-
<…밤의 물고기> 출간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초현실 미스터리 <시오리와 시미코의 밤의 물고기>(시공사)가 나왔다. 시오리와 시미코, 두 여학생이 생활 속에서 만나는 초현실적인 사건들을 그린 연작으로, <살아있는 목> <파란 말> <살육시집>에 이은 네 번째 연작집이다. 두 주인공이 골동품 잡화점에서 각자 가져온 물건들이 살아서 다투게 되는 ‘잡화전쟁’, 커다란 책 속에 들어가 바다 속의 책을 낚는 ‘책 물고기’ 등 모두 8편의 단편들이 담겨 있다. 작품의 색채나 분위기는 호러적인 느낌을 많이 주지만 실제 내용은 유령, 요괴들의 기이한 존재들과 함께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유머러스한 판타지에 가깝다. 조연인 고양이 캐릭터와 더불어 고양이 모양의 지형 등 고양이 마니아들이 좋아할 만한 장치들이 많다는 것도 이채롭다.<남자 이야기>와 <야후>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 남자만화계의 가장 중요한 줄기를 형성하고 있는 두 작품
또 하나의 미스터리
-
얼마나 신비로운가? 심야 만화방에서 컵라면과 과자 몇 봉지를 끼니 삼아 하룻밤에 수십권의 만화책을 읽어치우는 남자들. 1시간에 1권도 읽을까 말까 한 나 같은 작자는 감히 쳐다보기도 힘든 무공이다. 아니 더욱 신기한 것은, 그들을 위해 한달에 서로 다른 6개 테마로 단행본 10권을 뽑아내는 만화가(2002년 7월의 김성모)라고나 할까? 이 창작과 감상, 아니 생산과 소비의 황당함은 그 작품 속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108계단 40단 콤보와 같은 초절의 기술로 우리의 뼈와 살을 분리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만화들을 단순한 유행어 몇 마디와 함께 웃어넘길 수 있을까? 무엇이 그 만화를 보게 할까? 거기에는 남자들을 들뜨게 하는 부정할 수 없는 쾌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황당무계 남성폭력만화의 공고한 전통은 수십년 전 일본에서부터 굳건히 존속되어왔다. 최근 전 34권으로 번역 완결된 미야시타 아키라의 <돌격 남자 훈련소>(대원씨아이)는 그 세계의 비밀을 알려주는 중요한 작
34권으로 완결된 미야시타 아키라의 <돌격 남자 훈련소>
-
사흘 만에 서평을 써달라는 ‘부당한’ 요구와 함께 퀵서비스로 배달된, 무려 520페이지 분량의 소설. 여름마다 심하게 앓는 버릇이 있는 비평가는 고열에 시달리면서 읽기를 시작하지만 마음속에는 이미 후회하는 마음이 싹터 있다. 그러나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함께 몸에 안정을 얻은 비평가의 마음은 판이하게 달라져 있었으니….<열정과 불안>의 작가가 남달랐던 것은 두개의 시선을 함께 취한 데 있다. 그는 한번은 남성의 시각으로(1부) 다른 한번은 여성의 시각으로(2부)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것은 기술적인 시점 처리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렇지 않다. ‘여성주의적’ 시각의 맹점에 휩쓸리지 않겠다는 작가의 문제의식이 이 시점 처리에 응결되어 있다. 1부의 주인공 영준은 우여곡절 끝에 자기가 창업한 벤처기업에 사표를 던지고 ‘눌라치타’라는 먼 유토피아를 찾아 긴 여행을 떠난다. 1990년대 후반기에서 현재까지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벤처열풍이 한편으로는 한국 자본주
조선희 장편소설 <열정과 불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