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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이두용을 기억하는 ‘최후의 증인’들, 감독들의 추모사, 잊히지 않는 명장면
김소미 2024-02-14

<최후의 증인>

“김기영 감독의 <화녀 ’82>와 함께 이두용 감독의 <최후의 증인>과 <피막>이 나로 하여금 한국에서 필름메이커가 되는 일에 용기를 내게 해주었어요.”(박찬욱 감독) 감독들의 감독이라 불러도 좋을 이두용 감독. 그의 영화로 청년기의 취향을 다듬거나 충무로의 영화 현장에서 짧지만 강렬한 접점을 형성했고, 훗날 이두용 영화의 번뜩이는 면면에 대해 소문내길 주저하지 않았던 감독들의 목소리를 새롭게 모았다. 회고와 추모, 잊히지 않는 한순간에 대한 담담하지만 깊은 애호의 말들이다.

강우석 감독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피막> 같은 영화들을 보면서 후배들은 깜짝 놀랐다. 액션영화, 오락영화도 곧잘 찍었지만 사실 그는 어떤 ‘칼’을 숨기고 있는 사람이었다. 영화진흥공사에서 <최후의 증인> 최종편집본 필름 상영을 본 이후에는 그에 대한 완전한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확신했다. 단순히 선배 감독으로 기억되어서는 안된다고 말이다. 그러나 이두용 감독님은 동료들, 후배들에게조차 감춰진 면이 있다. 지금도 <최후의 증인>의 마지막 장면에서 (형사 오병호가 권총으로 자살하는 순간에) 총소리와 함께 새들이 날아가는 장면을 잊지 못한다. 오래된 영화이기에 그 장면만 떼어놓고 보면 이제는 조금 낡아 보일 수도 있지만 드라마를 끝까지 끌고 온 힘으로 인해 엄청나게 강렬한 인상을 안기는 엔딩이다. 이두용 감독 특유의 표현력과 연출력이 그 한 장면 안에 단단히 응집되어 있다.

박찬욱 감독

<최후의 증인>은 어떻게 이런 편집을 밀어붙였을까 생각이 들 만큼 오병호의 걸음을 반복적으로 담는다. 나는 특히 영화 초반에 광각렌즈로 펼쳐지는 무채색의 황량한 풍광을 좋아한다. 벌거벗은 나무들 사이로 부는 바람, 거리의 반공 푯말, 시골길을 지나가는 상여와 죽음의 이미지…. 이제 세월이 지나 연기가 조금 어색하게 다가오거나 대사가 설명적으로 들릴 수는 있어도, 숏에 관한 일관된 목표를 가지고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작가적 고집만큼은 빛바래지 않았고 여전히 존경스럽다. (…) <최후의 증인>에는 없어도 스토리 전개에 지장 없는, 그러나 대단히 공들인 장면들이 많다. 가령 엄 기자가 윤전기 앞에서 전화를 받고 다방에 오병호를 만나기까지의 장면 같은 것. 그러니까 다른 감독이라면 넣지 않았을 장면들을 보여주는 데에서 비로소 한 감독의 독특함이 생기는 것이다. 달리 말해 없어도 무방한 것처럼 보이는 장면을 찍을 때 더 공을 들여야 한다. 대충 찍으면 사라지게 되어 있으니 더더욱 목숨 걸고 찍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최후의 증인>은 스쳐 지나가는 풍경, 장소, 단역 하나하나가 소중하다. (<최후의 증인> 블루레이 오디오 코멘터리 일부 발췌 및 재구성)

<속 돌아온 외다리>

이명세 감독

내가 학교에서 영화를 배울 땐 영화를 잘 찍으려면 이두용의 액션을 배워야 한다고들 했다. 생각해볼수록 맞는 말이다. 숏을 나누고 미장센을 구성하는 데 있어 액션영화는 가장 어려운 경지다. 이것을 깨닫고 나서 꼭 이두용 감독님의 연출부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기회가 없었다. 다행히도 ‘2008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이두용 감독 특별전에서 그분을 만나게 됐다. 행사가 끝난 후, 후배 감독들 모두 어려운 마음에 그분께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용기를 내어 “감독님, 소주 한잔하실래요?”라고 물었다. 감독님은 흔쾌히 낙원상가 뒤쪽 아귀찜 가게로 우리를 데려가 늦은 밤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으셨다. 그게 마지막 만남이었다. 어릴 적 극장에서 <돌아온 외다리>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나는 그의 영화가 지닌 멋에 반했다. <피막>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최후의 증인> 등 걸작으로 불리는 영화뿐 아니라 에로영화처럼 오해된 <> 같은 작품들이 영화적으로 얼마나 뛰어난지, 그의 작품들이 동시대에 더욱 정확히 평가받고 재조명되기를 바란다. 감독님의 부고를 뒤늦게 접하고 혼자 기도했다. 마지막 가시는 자리가 쓸쓸하지 않으셨기만을 빈다.

오승욱 감독

그의 태권영화들을 쫓아다녔다. 이두용 감독님의 영화를 처음 본 것은 1974년 공덕동의 마포극장에서였다. 아저씨들만 꽉 들어찬 극장에 앉은 당시 초등학교 4학년생인 내가 <배신자>의 잊을 수 없는 한 장면을 만난 순간이었다. 뒷골목에 부감으로 뜬 카메라가 대머리 아저씨, 조춘 선생과 차리 셸(한용철)의 뒷모습을 잡고 있었다. “니가 누구냐!” 하니까 “나다!” 그러고 싸움이 붙는다. 차리 셸은 조춘 아저씨를 드럼통에 처박아버리더니 발로 난타하기 시작한다. 킬러를 응징하던 차리 셸이 고갯짓을 하면 한쪽 눈을 덮고 있던 장발의 머리카락이 뒤로 촥 넘어가던 모습도 생생하다. 어린 눈에도 <배신자>는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 뒷골목 냄새, 그 생생함에 약간 쇼크를 받은 것 같다. 컬러도 사운드도 선명했던 당대 홍콩 무협영화에 비해 어딘가 희뿌옇고 품질은 조금 떨어져 보이는, 그러나 무시무시한 활력을 지닌 영화였던 거다. 이소룡의 발차기가 세련된 아트였다면, 왼발을 높게 들어올려 쉴 새 없이 적의 뺨을 후려치는 차리 셸의 발차기는 이두용식 액션영화가 품은 ‘쾌’의 감각 그 자체였다.

<생사의 고백>

류승완 감독

“액션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다.” 이두용 감독의 말을 기억한다. 1970년대에 1년에 몇편씩 양산형 영화를 만들 때를 이두용 감독 스스로도 자조적으로 돌아보곤 했지만, 흥행에 다급해진 극장주와 서슬 퍼런 검열을 동시에 마주하는 와중에 비로소 그만의 독특한 장르 세계가 펼쳐진 것이기도 하다. 숙명적으로 하위 장르, B무비로 나온 영화들을 이제 와 걸작으로 둔갑시키고 싶지는 않지만 그 시대 영화들이 가진 특별함은 있다고 본다. 말도 안되는 저예산으로 영화를 완성해야 했던 조악한 환경에서 액션을 하다보니 사람들이 부딪치면 세트 전체가 흔들리기 일쑤였는데, 그런 것을 보는 재미가 결국 당대 영화를 보는 즐거움이기도 할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만든 영화 <짝패>의 세트 구성 같은 것이 무의식적으로 이두용 감독님 영화의 영향을 품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그의 액션영화 중 단 한편을 꼽으라면 <생사의 고백>을 가장 좋아한다. 한창 감독님의 영화에 빠져 있을 때 한국영상자료원에서 VOD로 찾아 본 기억이 난다. <생사의 고백> 중간에 대단히 강렬한 슬로모션이 튀어나온다. (북에서 넘어온 간첩 피정덕을 연기한) 박근형 배우가 여주인공 용옥(유지인)의 손을 잡고 뛰는 장면에서 난데없이 슬로모션이 시작되는데 그 강렬함이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정성일 감독 ·영화평론가

그해 여름 초저녁 연병장에서 나는 이두용 ‘감독님’을 발견했다. 우리 부대는 주말에 아무도 면회 오지 않는 장병들을 위해서 영화를 한편씩 상영했다. 대부분 시시한 영화들이었다. 그날 <선배>를 상영했다. 나는 홀린 듯이 보았다. 그전에 이 이름을 알고 있었다. 몇편의 영화를 보았다. 하지만 보는 내내 지루했다. 이 영화는 다른 영화였다. 그날 이두용은 내게서 비로소 이두용 ‘감독님’이 되었다. 이 사람의 영화를 모두 보겠다고 결심했다. 어떤 영화는 서울 중심가에서 개봉했지만 어떤 영화는 서울 변두리에서 개봉했다. 나는 단 한번도 망설이지 않고 보러 갔다. 항상 훌륭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항상 잘 찍었다. 어떤 이야기, 어떤 소재, 어떤 시나리오도 잘 찍었다. 게다가 어떤 신은 미칠 듯이 현장이 궁금할 정도로 홀린 듯 진행되었다. 정말 이 장면들의 ‘어떤’ 비밀이 궁금했다. 모두 <최후의 증인>과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만을 이야기하지만 나는 <귀화산장> <해결사> <장남> <> <내시>에서 넋을 잃은 듯이 바라본 순간이 있음을 내 동료들에게 웅변하듯이 말하곤 했다. 아마 언젠가는 이 영화들의 ‘명장면의 순간’에 대해서 장황하게 말할 순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나는 이두용 ‘감독님’을 만나지 못했다. 한참 뒤에, 우연히도, 충무로역 부근 남산골 한옥마을 올라가는 길 오른쪽 이층에 자리한 구식 ‘레스토랑’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계시는 모습과 마주쳤다. 꼭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내 소개를 하기도 전에 나를 보더니 내 이름을 불러주셨다. 용기를 내서 <선배>를 본 이야기를 드렸다. 내 이야기를 듣더니 말없이 빙그레 웃으셨다. 나는 그 미소를 본 다음 갑자기 용기가 나서 약간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내가 좋아했던 장면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단 한번도 내 말을 끊지 않고 들어주셨다. 그리고 말했다. “감독님의 현장을 견학하고 싶습니다.” “그래요, 꼭 오세요. 보여드리고 싶군요.” 하지만 나는 너무 늦게 만났다. 이두용 ‘감독님’의 다음 영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나는 한국영화의 귀중한 ‘비밀의 순간’ 중 하나를 놓쳤다. 정말 안타깝다. 너무 안타깝다. ‘감독님’, 다음 영화가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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