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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보일, 할리우드에서 길을 잃고 런던에서 답을 찾아 돌아오다 [1]
권은주 2003-09-18

할리우드에서 길을 잃고, 런던에서 답을 찾다

탕아 대니보일, 를 들고 돌아오다

고향에서 재능을 입증하고 할리우드라는 대처로 나갔다가 태작을 내고 잊혀진 감독들은 적지 않다. 그러나 <트레인스포팅>의 여파를 타고 시도한 2편의 할리우드 프로젝트에서 좌절을 맛본 다음, 모태와 같은 고향의 도시와 장르로 돌아온 에서 페이스를 되찾은- 나아가 성숙의 기미마저 보이고 있는- 대니 보일 감독의 행로는 마치 누군가 써놓은 시나리오처럼 ‘돌아온 탕자’ 내러티브에 들어맞는다. 하지만 이 글은 사악한 할리우드 스튜디오 때문에 고통받은 유럽 예술가의 무용담이 아니다. “객지 나가면 고생”이라는 편견을 확인하거나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교훈을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다만 대니 보일이라는 특정한 장점을 지닌 감독이 할리우드로 떠난 모험길에서 어떤 실수를 범했고 어떻게 만회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 검토다. 편집자

대니 보일은 웬만해선 저지르기 힘든 사건을 두 가지나 저지른 감독이다. 하나는 ‘영국영화 르네상스’이고, 나머지 하나는 <타이타닉> 광풍 직후의 디카프리오를 출연시킨 흥행 실패작이다. 방송계에서 10여년을 일한 대니 보일이 제작자 앤드루 맥도널드, 작가 존 호지를 만나 만든 <쉘로우 그레이브>(1995)가 히트였다면 이듬해 후속작 <트레인스포팅>은 하나의 현상이었다. 화젯거리는 박스오피스 성공만이 아니었다. 실제로 <트레인스포팅>의 영국 흥행수입 1230만파운드는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의 절반에 그쳤다. 사람들에게 ‘진정한’ 영국영화 르네상스를 운운하게 만든 것은 시대의 선두에서 호흡하는 대니 보일 영화의 에너지였다. 당시는 정말 난리도 아니었다. 영국의 주간지 <타임 아웃>은 “<트레인스포팅>은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이야기하는, 우리 모두가 기다려온 영화다”라고 흥분을 요약했다. 이 말에는, <불의 전차>나 <간디> 같은 영국산 오스카 수상작이나 미국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벤치마킹한 ‘브릿팩’영화, 심지어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같은 대박영화도 갖지 못한 파괴력이 대니 보일 영화에 있다는 평가가 포함돼 있다. <트레인스포팅>은 섬나라를 벗어나 거대한 유행의 파도를 탔다. 사람들은 그때까지 배회하던 ‘MTV적 영상미학’이라는 유령이 타란티노와 왕가위, 그리고 대니 보일에 이르러 영화적으로 정착했다고 여기고 축하했다.

그러나 대니 보일의 할리우드 진출작 <이완 맥그리거의 인질>(A Life Less Ordinary)은, 제목의 저주인지 박스오피스에서도 평단에서도 ‘보통만도 못한’ 일생을 마쳤다. <비치>(The Beach)는 관객과 비평가에게 채인 것도 모자라 타이 환경운동 단체가 제기한 스캔들에 휘말려 좌초했다. 폭풍 뒤의 고요가 뒤따랐다. 대니 보일은 로 돌아가 두편의 디지털영화를 만든 다음 2002년 말 묵시록적 분위기의 ‘좀비호러’ 로 스크린에 부활했다. <인질>과 <비치>를 보고 “마틴 스코시즈의 <뉴욕, 뉴욕>(1977) 이후 최대의 실망”이라고 말하며 대니 보일에게 걸었던 기대만큼의 배신감을 토로했던 사람들은 (영국 흥행수입 970만 달러)를 크게 환대했다.

영화 에서 ‘28일 후…’는 영화의 장을 나누는 자막으로도 쓰인다.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실험실에서 동물해방운동가들이 침팬지를 풀어주려다가 공격당하는 프롤로그 직후 영화는 암전되고 ‘28일 후…’라는 자막이 떠오른다. 덕분에 영화는 ‘종말’의 대혼돈을 재현하는 막대한 예산을 절약하고, ‘종말 이후’의 광막한 거리로 곧장 넘어간다. 심판의 날에 벌어진 혼란은 순전히 관객의 상상에 맡겨진다. 는 비슷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감독 대니 보일과 그의 파트너인 제작자 앤드루 맥도널드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도록 충동한다. 대니 보일은 그동안 어떻게 실패했으며 어떻게 실패의 잔재를 추스르고 불씨를 보존했을까?

실패 케이스 1

그는 미국을 몰랐다-<이완 맥그리거의 인질>

<트레인스포팅> 이후 대니 보일에게 대서양 건너편에서 제의가 쏟아져들어온 것은 말하나마나다. 대니 보일이 거절한 콜 가운데에는 블록버스터 <에일리언 리서렉션>도 있었다. 시고니 위버와 위노나 라이더까지 면담했던 보일은 두 가지 이유로 빅 카드를 거절했다. 첫째는 특수효과를 잘 요리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제작사쪽이 대니 보일과 앤드루 맥도널드, 작가 존 호지의 삼총사 중에서 보일하고만 일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완 맥그리거의 인질>

보일로서는 “할리우드에 먹히지 않겠다. 우리 식으로 게임하겠다”고 고집을 세운 것이다. <이완 맥그리거의 인질>(1997)이 언론이 손쉽게 비판했듯 “양키달러에 팔려간 셀링 아웃”은 아니었다. <쉘로우 그레이브> 촬영 중에 존 호지가 시나리오를 쓴 <이완 맥그리거의 인질>에 투입된 제작비는 1200만달러. <트레인스포팅>의 6배에 달하는 돈이었다. 대니 보일과 파트너들은 할리우드의 물적 자원을 활용해 할리우드를 무릎 꿇리는 한방을 날릴 심산이었다. <어느날 밤에 생긴 일> 같은 스크루볼코미디의 공식과 카프라 영화에 나올 법한 해결사 천사를 등장시켜 스토리라인을 구성한 다음, <트레인스포팅>에서 발휘한 반항적 감수성으로 주류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를 전복하겠다는 야심을 품은 것이다. 게다가 <트레인스포팅>이 미국 시장에서 1700만달러라는 다소 실망스런 수입에 그쳤다는 사실은 대니 보일과 앤드루 맥도널드로 하여금 흥행에도 욕심을 내게 만들었다. 그러나 속도는 들쭉날쭉하고 감정의 논리는 빈약한 <인질>은 실패였다. 영화의 불균질한 구조에 흥미를 느낀 컬트적인 팬들을 제외하면 관객은 비슷한 시기에 나온 <트렁크 속의 연인>이나 <낫씽 투 루즈> 같은 인질극코미디 틈바구니에서 <인질>이 갖는 특별함이 무엇인지 납득할 수 없었다.

문제는 ‘유럽적 감수성과 미국적 소재가 빚어낼 불화’ 따위의 고매한 갈등이 아니었다. 대니 보일은 무엇보다 미국을 잘 몰랐다. <인질>에 비친 미국의 풍경은 매우 상투적인 코드로 채워져 있다(그것이 진실이냐 아니냐가 극적 표현의 앙상함을 변명할 수는 없다). 자본은 노동자를 노예 취급하고, 주인공은 마릴린 먼로의 신화에 집착하고, 먼로 같은 헤어스타일을 한 여주인공은 개츠비풍의 저택에 살며 심심풀이로 총질을 한다. 영화를 통해 알고 있는 미국 문화만으로 미국적 장르를 초월할 수 있다는 생각은 교만이었다. 성 역할을 전도시켜서 장르를 뒤집어보려는 계산도 이완 맥그리거와 카메론 디아즈라는 궁합 안 맞는 캐스팅 위에서는 부조화를 강조할 뿐이었다. <비치>로 이어진 대니 보일 감독의 또 다른 실수는 공간감의 결핍. 그 자체로 긴장감 넘치는 미로였던 <쉘로우 그레이브>의 아파트나 글래스고의 담배 공장을 빌려 대부분 세트 촬영을 행한 <트레인스포팅>의 아지트와 달리, 로케이션 촬영을 주로 한 <인질>의 화면은 도리어 답답하고 연극적이다. 고층 빌딩과 쭉 뻗은 고속도로, 유타주의 광활한 하늘과 대지는 달력 그림처럼 그냥 드리워져 있을 뿐, 인물이나 드라마와 좀체로 연결되지 않는다. 에든버러 마약 중독 실업자들의 특수한 하위문화를 그토록 날카롭고 화려하게 전세계 관객에게 공감시켰던 대니 보일은 세상에서 가장 보편적인 연애담을 이해시키는 데에도 로맨틱코미디라는 대중적 장르의 이면을 보여주는 데에도 무기력했다.

▶ 대니보일, 할리우드에서 길을 잃고 런던에서 답을 찾아 돌아오다 [1]

▶ 대니보일, 할리우드에서 길을 잃고 런던에서 답을 찾아 돌아오다 [2]

▶ 대니보일, 할리우드에서 길을 잃고 런던에서 답을 찾아 돌아오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