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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필 배지’로 72회 칸국제영화제에 참석한 경험담… 배지 받는 법부터 주의사항까지 공유합니다

영화인도 언론인도 아닌데 칸국제영화제에서 영화 볼 수 있어요?

초대장을 구하려는 영화 애호가들의 모습.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는 전세계 시네필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최대 규모의 축제이지만, 미디어로만 접할 수 있던 다른 세계의 이야기처럼 늘 거리감이 느껴지는 영화제였다. 영화 관계자는 아니지만 어렵게 시네필 배지를 발급받아 칸영화제에 참석한 사람으로서, 영화를 사랑하는 시네필들 그리고 평범한 학생과 청년들이 칸영화제에 참석하는 방법에 대해 나누고 싶었다.

시네필 우대 극장 라 리코흔 전경.

준비 단계, 2월부터 시네필 배지 신청

언젠가 칸영화제를 꼭 한번 방문해야겠다는 강렬한 열망이 나를 자극했고, 먼저 공식 홈페이지(www.festival-cannes.com)에 들어가 여러 정보를 찾아보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월드 스타들과 거장 감독들의 이미지가 가득한 칸영화제이지만 미래 영화인을 꿈꾸는 영화 관련 전공 학생들에게 시네필 배지 그리고 만 18~28살 청년들에게 3일권 패스가 제공되고 있었다. 칸영화제는 타 영화제와 달리 승인된 배지가 없으면 영화제 참석이 극도로 제한되는데,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 영화제들처럼 표를 구매해 영화를 관람하는 방식이 아니라 오로지 배지를 기준으로 초대권을 발급하고, 상영관 입장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배지 신청은 필수 사항이다. 지난 5월 14일 개막한 제72회 영화제를 기준으로 시네필 배지 신청은 2월부터 약 한달간 진행됐고, 3일 패스는 3월 22일부터 4월 말까지 진행됐다. 지원 서류로 영문 혹은 프랑스어로 된 재학증명서, 자기소개서 그리고 여권 사본이 필요했다. 이중 자기소개서는 ‘내가 왜 칸영화제에 참석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영화제 참석에 대한 강한 의지와 영화에 대한 애정을 담은 글을 A4용지 1장 정도로 작성하면 된다. 영화제쪽 정보에 따르면 매년 시네필 배지는 4천장 중 3천장은 프랑스 학생들에게 나머지 1천장은 타 국가 학생들에게 제공된다고 한다. 선착순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공고가 난 뒤엔 최대한 빨리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승인이 완료되면 칸영화제에 도착하여 지정된 수령처에서 배지를 받으면 된다. 영화제는 5월에 열리지만 이미 많은 숙박과 항공권 예약이 2~3월부터 차기 시작한다. 늦을수록 선택지가 줄어들고, 특히 숙소의 경우 칸영화제 상영관에서 멀면 일찍 끊기는 대중교통으로 인해 야간에 열리는 행사에 참석하기가 어려우니 되록이면 빨리 예약할 것을 권한다. 홀로 숙박을 잡아야 하는 시네필이라면 영화제 소셜 미디어그룹을 통해 동행을 구하는 방법도 추천한다.

배지를 받고 찍은 사진. 이때만 해도 앞으로 닥칠 시련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

가장 큰 시련이었던 칸영화제 배지의 계급

시네필 배지로 칸영화제를 마음껏 즐기겠다고 다짐했지만 슬프게도 그럴 수 없었다. 칸영화제는 철저하게 배지 등급에 따라 입장할 수 있는 상영관과 구역 그리고 권한이 정해져 있다. 시네필은 가장 낮은 등급의 배지이다 보니 장시간의 기다림은 필수이며, 상영관 입장 실패의 경험 또한 자연스레 따라오게 된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사용 권한에 대해 먼저 알아두는 것이 중요했다. 승인 메일과 함께 오는 시네필 관련 내용은 실제 권한과 차이가 있었으며, 4유로에 구매할 수 있는 카탈로그 또한 프랑스어로만 되어 있어서 사용 범위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영화제 첫날 무턱대고 줄을 섰다가 입구에서 입장이 거부되기도 했고, 안내원에게 설명을 요청해도 시네필 관련 정보를 잘 모르거나 영어가 미숙한 경우가 많아서 애로사항이 많았다. 결론적으로 그동안 TV에서 보았던 칸영화제의 화려하고 근사한 행사에 참석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경쟁부문 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뤼미에르 대극장의 경우 시네필은 초대장을 구하거나 오전 8시30분에 상영하는 첫 회차 혹은 밤 10시 이후 마지막 회차만 볼 수 있었다. 이 또한 빈 좌석 수만큼 선착순으로 입장시키는 ‘Last Minute’ 정책에 따라 상영시간보다 2시간은 일찍 줄을 서야만 입장이 가능하다. 영화제 초반부 극도로 제한된 권한에 낙심도 많이 됐지만 시네필을 우대하는 조그마한 현지극장들을 방문한다면 다른 영화를 볼 기회는 많았다.

뤼미에르 대극장의 ‘Last Minute’ 안내판.

총 4개의 시네필 우대 극장이 있었는데, 이곳은 시네필 입장 이후에도 빈자리가 생기면 일반인에게 제공하기 때문에 현지인과 여행객들에게도 칸영화제를 즐길 기회는 열려 있다. 하지만 영화제 내내 여러 상영관의 시간표들을 비교하며 다양한 경우의 수와 계획을 세웠음에도 예상외의 문제들로 인해 차질이 생기곤 했다. 먼저 칸영화제의 주요 극장들은 영어와 프랑스어 자막이 제공됐으나 시네필 우대 극장은 그렇지 않았다. 오로지 프랑스영화에만 영어 자막이 제공됐고, 그외 영화에는 프랑스어 자막만 제공됐다. 또한 레드카펫 행사가 있는 상영 회차의 ‘Last Minute’를 기다리다가 행사가 지연되자 입장을 불허하는 경우도 생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황스러웠던 건 무선 인터넷이었다. 영화제의 주요 건물인 팔레 드 페스티벌의 와이파이는 프레스 배지, 즉 기자들에게만 허용됐고, 다른 배지 보유자들은 ‘부적합한 사용자’(Invalid user)라는 문구와 함께 연결이 거부됐다.

해변 야외 상영 극장 시네마 드 라 플라주.

초대장을 줄 귀인을 찾아서

초대장(Invitation)은 영화 관계자, 감독, 배우들이 사전에 신청하여 받는 티켓으로 사용하지 못할 경우 반드시 반납하거나 양도를 해야 하는 티켓이다. 시네필도 시네필 사무실에서 초대장을 받을 수 있으나 경쟁부문 영화 혹은 화제작들은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즉 경쟁부문 영화를 보려면 초대장을 양도해줄 귀인을 찾아야만 했다. 초대장이 있으면 장시간 대기하지 않아도 되며, 그동안 입장할 수 없었던 구역과 볼 수 없었던 상영도 관람할 수 있으니 정말 매력적이었다. 특히 파란색 초대권은 배지가 없는 일반인도 입장이 가능하므로 여행객들도 노려볼 만했다. 초대장을 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티켓을 구한다는 내용을 종이에 적은 후 사람들이 많은 구역에서 들고 서 있는 것이다.

<어 히든 라이프> 상영 직전의 뤼미에르 대극장 내부.

하지만 확실하게 구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그렇게 티켓을 구한다는 피켓을 들고 서 있으면 다양한 매체들이 촬영이나 인터뷰를 요청해서 민망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꼭 봐야만 하는 영화가 있다면 그 정도쯤은 감내할 수 있었다. 이 방법 외에도 소셜미디어그룹 활용, Last Minute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할 수도 있다. 인상적인 경험이라면 칸에서 만난 한국인 여행객에게 초대장 정보를 알려줬는데, 의지의 한국인답게 새벽같이 나와서 초대장을 구하러 다녔고, 배지가 없음에도 <기생충>을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볼 수 있었다.

초대장을 구하려는 영화 애호가들의 모습.

수많은 시련 끝에 <기생충>을 만나다

세워놓은 계획이 틀어지고 장시간 대기 끝에 입장 거부와 같이 속상한 순간들이 찾아오지만, 그러다가도 훌륭한 영화를 만났을 때나 거장 감독과 월드 스타들을 보았을 때 오는 만족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영화제 첫날, 낙심만 가득 안은 채 하루를 허비했지만, 둘쨋날 처음으로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켄 로치 감독의 <소리 위 미스드 유>를 보고 나왔을 때 그동안 겪었던 모든 시련에 대한 보상을 받은 것처럼 감동했고, 이후에도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은 다채로운 감정 변화를 경험했다.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테렌스 맬릭 감독의 <어 히든 라이프> 초대장을 구한 순간이었다. 맬릭의 오랜 팬으로서 간절하게 보고 싶었고, 2일간에 걸쳐 초대장을 구했다. 약 7~8시간을 밖에 서서 기다렸고 달을 보며 간절하게 기도했지만, 워낙 팬이 많은 거장 감독답게 초대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입장 제한 시간이 다다를 때까지 표를 구하지 못했다. 마음을 정리하고 떠나려던 찰나 한 여성이 초대장을 건네주었는데, 이때의 감격은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강렬했다. 정말 운명같이 귀인을 만나고 거듭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나서 극장에 입장한 순간은, 이번 영화제에서 경험한 최고의 순간이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아름다운 장면으로 가득한 영화에서 오는 경외감과 2일간 간절하게 기다렸던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다양한 종류의 영화제 초대장.

또한 미디어에서만 볼 수 있던 감독과 배우들을 보는 레드카펫 행사도 인상적이었다.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큰 관심을 받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레드카펫 행사에서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브래드 피트 그리고 마고 로비를 보았을 때는 경이로웠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팀이 레드카펫을 밟을 때 그 자리에 모여 있던, 서로 누군지도 모르는 한국 사람들이 함께 응원 구호를 외쳤던 순간도 그야말로 뿌듯했다. 그리고 일정의 마지막 날 <기생충>을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볼 수 있었는데, 영화에서 표현된 계급사회의 풍자가 이번 칸영화제에서 겪은 경험과도 연결되면서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비록 낮은 배지 등급으로 몸도 고생하고, 마음에 상처를 입기도 했지만 칸영화제는 전세계 영화인들의 꿈의 축제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깊은 인상을 남겼다. 거장 감독들의 영화를 보고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며 오랫동안 사랑해온 영화에 더 깊은 애정을 느끼는 순간이었고, 영화를 공부하고 있는 이유와 함께 앞으로 영화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강한 동기 부여가 되는 경험이었다. 특히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수상으로 한국영화 역사 100주년에 기념비적으로 남을 순간에 칸을 방문했다는 것은, 나의 시네필 인생의 클라이맥스로 꼽을 수 있었다. 학생으로서 칸영화제에 참석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나와 비슷한 꿈을 가진 친구들이 한번쯤 도전해보길 바라며, 나 또한 멋진 영화인으로 성장하여 다시 이곳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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