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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대륙을 무대로 펼쳐지는 일본 여인 잔혹사, <붉은 달>
김수경 2006-10-10

중국대륙을 무대로 펼쳐지는 일본 여인 잔혹사. 하지만 올드하다.

노장 후루하타 야스오는 기억과 삶의 풍경을 통해 사람의 심경을 잡아낸다. 고향의 설원을 바라보며 삶을 되돌아보는 <엑기>의 형사 미카미, 선로를 보수하며 죽은 자식을 마음에 묻어가는 <철도원>의 오토가 그러하다. 나카니시 레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붉은 달>은 <호타루>의 연장구간이며 <천리주단기>를 향한 정거장이다. 후일 장이모가 연출하고 다카쿠라 겐이 출연한 <천리주단기>에 후루하타 야스오는 고문으로 참여해 20%에 속하는 일본 촬영분을 연출했다. 안타깝게도 <붉은 달>은 <호타루>와 달리 2차대전이라는 격동의 시간보다는 나미코의 개인사에 함몰되면서 이야기의 균형을 잃어버린다. 잔잔하지만 울림이 있던 <호타루>의 반성적 결말과 달리 <붉은 달>은 인물의 감정과 심리를 역사와 사회라는 바탕 위에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다.

1935년 흑룡강성 모란강으로 이주한 모리타 부부는 양조장으로 크게 성공한다. 하지만 남편 모리타(가가와 데루유키)는 사업 성공이 아내 나미코의 첫사랑이었던 관동군 장교 오스기(호테이 도모야스)에 의한 것이라는 자책감에 괴로워한다. 급기야 남편은 자진입대하고, 홀로 남겨진 나미코는 사업을 꾸리며 히무로(이세야 유스케)라는 젊은 남자에게 애정을 느낀다. 보안국 장교 히무라는 나미코의 가정교사 엘레나를 감시하기 위해 몰래 파견됐지만 엘레나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히무로는 상부의 지시로 엘레나의 목을 벤다. 10년이 흘러 일본은 패전하고, 재산과 남편을 잃어버린 나미코와 가족은 일본으로 돌아간다.

일본영화 최초로 중국 올 로케를 시도한 <붉은 달>의 풍광은 인상적이다. 흑백이 아닌 무채색으로 표현된 잿빛 대륙은 건조하고 쓸쓸하다. 하지만 나카니시 레이가 어머니가 겪은 경험담을 토대로 쓴 원작의 방대한 서사를 <붉은 달>은 효과적으로 압축하지 못한다. 나미코의 감정 변화는 욕망으로만 그려지고, 히무로의 고뇌도 진부하고 감정적인 모습으로 드러난다. <사랑한다 말해줘> <뷰티풀 라이프>로 ‘드라마의 여왕’으로 불리는 도키와 다카코는 생기가 넘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감독과 열일곱편의 영화를 만든 다카구라 겐의 무표정이 그리워진다. ‘붉은 달’이 떠오르려면 풍광보다는 설득력있는 이야기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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