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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지 않은 손님의 복수극 <더 킹>
강병진 2008-06-04

등장인물들의 광신도 지수 ★★★★ 매정한 아버지의 떫은 반응 지수 ★★★★ 멜로드라마 지수 ★★

<더 킹>은 이제 막 군복을 벗은 남자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짧은 머리에 러닝 한장을 걸쳐입고 부대를 나온 그의 이름은 엘비스(가엘 가르시아 베르날)다. 사창가를 찾아 서둘러 일을 치르고 텍사스의 어느 마을을 찾아간 엘비스는 그곳의 명망 높은 목사인 데이비드(윌리엄 허트)에게 말을 건넨다. “우리 어머니가 당신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당황한 데이비드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한다. “하필 주일에 찾아오다니… 오늘은 2부예배도 있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엘비스는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실수로 만났던 여자”가 낳았고, 이 죄는 한참 전에 주님이 용서했다. 난생처음 만난 아버지의 냉담한 반응에 상처를 입은 엘비스의 증오는 곧바로 이복동생인 맬러리(펠 제임스)를 향한 애정으로 나타난다. 그러던 어느 날 맬러리의 오빠인 폴(폴 다노)이 그들의 관계를 눈치채고 엘비스를 협박한다. 엘비스는 충동적으로 그를 살해하는데, 폴의 죽음은 엘비스에게 뜻하지 않는 기회로 찾아온다. 아들의 안부를 걱정하며 기도하던 아버지 데이비드는 신이 응답을 주지 않자 폴의 자리에 엘비스를 앉히려 한다.

신(神)을 향한 도발에 왕도는 없을지언정 익숙한 방법은 있다. 기도에 답하지 않는 신을 향해 욕하거나, 신의 자리에 다른 존재를 대체하거나, 신의 자녀라 자칭하는 자들의 위선을 까발리는 등 방법도 여러 가지다. 영화 <더 킹>도 언뜻 그러한 영화들과 같은 목소리를 내는 듯 보인다. 명망 높은 목사 아버지, 그리고 그가 젊은 시절 실수로 잉태한 아들. <더 킹>은 이 초대받지 않은 손님의 복수극이다. 그의 복수는 목사인 아버지를 향하고 있지만, 아버지가 믿는 신을 공격하는 것은 아니다. 종교는 복수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오히려 영화에서 드러나는 건 가족을 찾고 싶은 한 남자의 고뇌와 그가 느끼는 불안이다. 아버지를 향한 복수심을 품고 근친상간의 비극에 놓인 엘비스는 언뜻 셰익스피어의 남자 같다. 사실 그와 비슷한 남자들은 그외에도 여럿 있다. 멀게는 <태양은 가득히>의 재능있는 리플리씨, 가깝게는 <매치포인트>의 크리스가 될 것이다. 재즈음악을 들으며 다른 인물을 연기한 리플리나 도스토예프스키를 탐독하며 상류층에 진입하려는 크리스처럼 엘비스는 종교를 통해 아버지의 인정을 받으려 한다. 폴이 죽은 뒤, 엘비스가 그 자리를 대신하려고 하는 것도 이 남자들과 비슷한 행동이다. 하지만 <더 킹>은 햇빛으로 가득한 바다나 런던의 고급주택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마을에서 일을 벌인다. 무심히 뻗은 풀로 뒤덮인 산과 들이 엘비스의 분노가 드러나는 공간. <더 킹>은 그처럼 불현듯 나타나는 두려움과 불안을 프레임 가득 담아낸다. 목사로서의 권위와 본능적인 욕망에서 갈등하는 윌리엄 허트의 연기도 아슬아슬한 선을 넘나든다.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의 표정과 움직임에서는 비극적인 오페라 한 소절이 어울릴 법도 하다.

Tip/ <데어 윌비 블러드>의 폴 다노를 기억한다면 <더 킹>에 나오는 그의 모습은 너무도 익숙할 것이다. 이 영화에서도 폴 다노는 ‘과하게’ 착실한 신도를 연기한다. 교회에서는 성가를 부르며 흥을 돋우고, 학교에서는 진화론만 가르치려는 방침에 대항하여 창조론 수업을 요구한다. 그러는 한편 엘비스를 향해 저주를 퍼붓는 음산한 모습도 있다. 역시 삐딱한 광신도에 적격인 얼굴과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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